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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연재 Apr 22. 2024

내 꽃길은 내가 깔러 간다

<소설> 비혼이지만 하고 싶습니다 8화

산악회 다음으로 소연이 찾은 곳은 탱고 클럽이었다. 파트너가 있는 춤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는데 언감생심 꿈도 못 꾸다가 이번에 한번 미친 척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산악회도 다녀왔는데 탱고 클럽을 못 갈 이유가 없었다. 소연은 서울에 있는 탱고강습을 하는 카페와 클럽을 알아봤다.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곳에 탱고 클럽이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 보니, 매니저 연락처가 적혀 있어서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탱고를 배우고 싶은데 초급반 수강이 가능한지? 복장이나 구두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생초보도 배울 수 있는지? 소연은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고, 매니저는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기초반이 있으니 거기서 스텝을 먼저 익히면 되고, 탱고용 구두를 신으면 좋지만, 스텝을 익한 다음에 사도 괜찮다고 했다. 기초반이 석 달 과정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해보라는 매니저의 권유에 소연은 안도했다. 

“그런데 제 나이가 사십 대인데 괜찮겠죠?”

이 말에 매니저는 잠시 침묵했다. 

“저.. 죄송한데.. 45세 이상이면 먼저 개인 레슨을 받으셔야 해요.”

난데없이 개인레슨이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해서 물어보니, 45세 이상부터는 바로 클럽에서 다른 회원들과 호흡을 맞추며 배우는 게 아니라 먼저 강사에게 개인레슨으로 기본기를 익힌 다음에 클럽에서 춤을 출 수 있다는 거였다. 왜 그런지 묻자, 아무래도 배우는 속도가 달라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어진 침묵.. 소연은 얼른 당황한 마음을 감추고 개인 레슨비가 얼마인지 물었다. 10회 기준으로 80만 원. 생각지 못한 금액이었다. 당황해서 알았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은 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의욕이 한풀 꺾여버렸다. 그렇다고 한 번만에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곳을 찾아 전화번호를 누르던 소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나이를 밝혔다. 

‘제가 40대 후반인데 탱고 초보입니다. 배울 수 있을까요?’

그곳은 아예 회원을 45세까지만 받는다고 했다. 

‘여기가 젊은 아이들 가는 클럽도 아니고 왜 나이제한을 두지?’

소연은 옛날 직장 동료가 클럽에 갔다가 문 앞에서 출입금지당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땐 웃으면서 들었는데 지금은 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왜 내 나이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지?’ ‘왜 나이로 거부를 당해야 하지?’ 억울함이 밀려오더니 이내 뭔가 해보려고 해도 되는 게 없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자신이 답답함이 느껴졌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꽃길을 원한다면 내가 꽃길을 만드는 수밖에.      


소연은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인사동 거리를 헤맸다. 지도상으로는 분명   근처인데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폐업한 거 아닌가 싶어서 검색창에 넣어보니, 영업 중이라고 뜬다. 같은 골목을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다가 마침내 소연의 눈에 '이름, 사주 궁합'이라고 쓴 간판이 보였다. 간판 안에 다른 한자들이 많이 쓰여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은 지 30년은 넘었을 법한 건물 3층이었다. 겨우 한 사람이 올라갈 수 있을 만한 폭의 계단을 올라가니 2층에 있던 가게는 철거를 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무슨 찻집이었던 것 같았다. 3층으로 올라가니 유리문에 ‘운수 핀 날’이라고 붙어 있었다. 소연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2시로 예약을 하고 갔는데 앞선 손님이 상담을 받고 있었다. 이런 곳은 처음이어서 좀 긴장이 되었다. 드디어 소연의 차례가 되어 들어갔다.

돋보기 같은 안경을 쓴 노인은 한 70쯤 되었을까. 백발의 노인은 안경을 끼고 하얀 한복을 입고 있었다. 분위기가 어찌 보면 도사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사기꾼 같기도 했다. 이런 곳에 처음 와봐서 그럴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마음 반, 괜히 돈만 뜯기는 것 아닌가 하는 경계심 반. 소연의 마음은 기대와 의심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다. 노인은 안경 너머로 소연을 한번 힐끗 보더니 노트를 꺼냈다. 

“생년월일.”

다짜고짜 반말부터 하는 노인에게 당황하면서 어떨결에 생년월일을 말해주었다. 

“태어난 시.”

“이름. 한자로,”

무언가에 홀린 듯 소연은 술술 대답하고 노인은 노트에 한자와 숫자를 잔뜩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소연은 빤히 보고 있기도 민망해서 애꿎은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이 마침내 입을 뗐다.

“금이 세 개나 붙었어. 이게 이게 정말 센 거야. 옛날 말로 치면 결혼해서 남편 잡아먹는 사주인 거지.” 

그 말에 소연은 웃음이 나왔다. TV 막장 드라마 같은 데서 며느리를 괴롭히는 시어머니가 자기 아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튀어나오는 단골 대사 아니던가. 드라마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자신이 현실에서 듣고 있다는 게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남편 하고 사이좋아?”

노인이 안경 너머로 소연을 보며 물었다. 소연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답하자, 그 말에 노인은 목소리에 자신감이 좀 붙었는지 큰소리로 “결혼을 일찍 했으면 오래 못 살았을 거야. 스물여섯에 결혼 수가 한번 있었네. 그때 안 하길 잘했어. 백퍼 이혼했지”한다. 그 순간, 소연은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스물여섯 즈음을 떠올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땐 사귀는 사람도 없었고, 일하느라 새벽에 출근해 밤에 퇴근할 때였다. 마지못해 “그래요?”라고 하니 ‘사주에 남자가 없진 않은데.. ’라고 노인은 다 들리는 혼잣말을 했다.  

“이 강한 기운을 눌러줘야 해. 보니까 이름에도 금이 붙었어. 고독하고 뒤를 돌아봤을 때 허망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조금 전까지 돌파리라고 생각했던 의심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당황스럽게 눈물이 나왔다. 혼자서도 잘 지내왔고 지금도 잘 지내고 있지만, 요즘 들어 소연은 사는 게 힘겹다 느끼는 순간이 예전보다 자주 찾아왔다. 힘겨울 때마다 고독감이 밀려왔다. 누군가와 함께 짐을 지고 나눠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손가락 사이로 모든 게 빠져나가는 것처럼 허망했는데, 딱 그 지점을 건드린 것이다. 

‘이 사람 용하네~’ 소연은 속으로 생각하며 주책맞게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틀어막았다. 이런 데서 우는 거 너무 쪽팔린 일이야.

“이름을 바꿔.”

선생님의 진단은 개명이었다. 

“타고난 사주가 7,80이라면 이름은 20프로는 돼. 안 좋은 거는 이름을 좋은 걸로 바꿔서 상쇄시키는 거야.”

그 순간, 소연의 마음속에서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이 사람, 이름 지어서 돈 벌려는 거 아냐?’

하지만 말을 안 들었으면 모를까 이름이 그렇게 안 좋다는데 그 이름으로 계속 살기엔 찝찝할 것 같았다. 

“이름을 짓는 데 얼마예요?”

“30만 원.”

이름을 바꾼다는 게 즉석라면처럼 바로 해치울 수는 없는 거여서 소연은 좀 더 생각해 보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고 나왔다. 집에 오는 길. 소연의 마음은 80프로는 이름을 바꾸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순간, 고등학교동창 승령이가 30대 초반에 이름을 바꿨다면서 그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던 일이 생각났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너 그때 이름 바꿨잖아. 왜 바꾼 거야?”

“하도 일이 안 풀리니까 보러 간 거지. 근데 같이 간 친구는 이름이 너무 좋다고 했는데 나는 바를 정자가 들어간 게 너무 단순해서 안 좋대. 순탄하지 않다고. 그래서 바꿨지.”

바꾸고 나서 진짜 나아졌는지가 궁금했다. 승령은 “괜찮아졌으니까 잊어먹고 살았겠지?”하면서 가볍게 말했다. 소연이 작명소에서 들은 이야기를 승령에게 전하면서 바꾸고 싶다고 말하자 “심리적인 것도 있으니까 바꿔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으면 바꿔 봐.”하면서 소연을 응원해 주었다. 


사실 소연은 그런 말을 듣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너 맞아. 그러니까 그냥 해도 돼”같은 말. 혼자 살면서 가장 외로울 때를 꼽으라면 무언가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였다.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가야 하는지 멈춰야 하는지, 이 건지 저 건지 무수한 선택 앞에서 혼자 모든 걸 결정해야 하는 게 무겁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확신이 들지 않아서 누군가와 의논하고 싶거나 누군가 대신 결정해 주었으면 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때로는 그런 선택의 무게에 눌려서 친구가 “내일 뭐 먹을까?”라고 말할 때 화를 버럭 낸 적이 있었다. 선택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네가 맞다는 말. 너 선택이 맞다는 말이 이런 때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적어도 그 순간의 지지는 힘이 된다. 누군가 옆에 있더라도 어차피 선택은 혼자 해야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지만 말이다. 승령의 지지 덕분에 소연은 홀가분하게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작명소에 전화해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노인은 3일 뒤에 이름 후보를 세 개 정도 정해서 보내준다고 했다. 그리고 도착한 이름은 재화. 이름이 바뀌었다고 인생이 종이 뒤집듯 달라질 리 만무하지만, 헤어 스타일을 바꾸면 일주일은 기분이 산뜻하듯 이름도 그랬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 좋은 느낌.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 아니 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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