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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김 May 23. 2024

행운

알고 보니 운수 좋은 날이었다.


자유롭게 널브러져 있던 오전이었다. 시간을 허투루 쓴 건 아닐까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모든 시간을 꽉 채울 수는 없으니까'라며 자신을 위안한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조급함을 내려놓는 방법을 몸에 새기고 있다.



몸을 일으켜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가기로 했다. 더웠던 날씨 탓에 꽤 긴 거리를 땀 흘리며 카페 앞에 도착했다. 조용한 분위기에 설마 하며 다가갔더니 커피 머신 고장으로 오늘 급작스레 휴무를 결정하게 되었다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카페 내부를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비좁고 답답한 공간에 차라리 잘됐다 생각했다.


급하게 5분 거리에 있는 다른 카페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도 불이 꺼져있다. 분명 한창 영업 중인 시간인데 무슨 사정인지 휴무인 듯했다.


대체 무슨 일일까? 덥디 더운 날씨, 여러 카페를 다 다녀봐도 모두 휴무이거나 영업시간 오픈까지 1시간 넘게 남아있어 당장 갈 곳이 없었다. 온몸에 열기가 올라오고 땀이 주룩 흐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헤매던 중 저 멀리 영업 중인 한 작은 카페가 눈에 띄었다. 더위를 참지 못해 일단 무작정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작은 카페 내부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좋은 기운이 충만했다. 친절한 인사를 건네는 사장님, 그리고 그런 사장님의 개성이 여기저기에 드러나는 물건들.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오가며 인사를 건넨다. 이 모든 것이 좋았다.



'텀블러에 담아 가시니까 얼음을 조금 더 넣어드릴게요.'

'말씀하신 메뉴는 없는데, 제가 그냥 만들어 드릴까요?'


라고 따뜻하게 웃으며 말하는 사장님을 보니 내 마음도 행복해진다. 그런 사장님에 수줍지만 환한 미소로 답하는 손님들도 좋았다. 사실은 제일 운수 좋은 날이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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