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백화점

서비스직 초보의 백화점 포류기


요즘의 내게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근데 어쩌다 백화점에서 일하게 된 거야?”


이 질문에는, 자신이 아는 나는 백화점과는 무관해 보인다는 의미가 상당 포함되어있다. 나를 오래 본 지인일수록 그런 의아함을 크게 드러낸다.


내 생각에도 백화점에 취직하게 된 것은 내 삶에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는 스물두 살 때부터 지금까지 8년 동안 대부분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두들기는 일만을 해왔으니까. 사무직종에 근무하면서, 어쩌다 어딘가에 전화를 걸거나 누군가를 맞이해 차를 내드리는 정도의 서비스를 해본 적은 있었지만, 그마저도 내부적인 관계에서의 응대였을 뿐 진정한 의미의 서비스라고 보긴 힘들었다. 전문대학에서 항공서비스와 관련한 전문학사 학위를 땄지만 그마저도 책으로 대충 축적한 이론에 불과했고, 졸업 이후 전공을 살려 일해본 적도 거의 없었다. 그런 내게 갑자기 서비스 그 결정체인 백화점 업무는, 내 스스로도 낯설지만 타인이 보기엔 생뚱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을 테다.




내가 백화점에 취직하게 된 경위는 이러했다. 결혼을 준비하며 신혼집을 분당으로 마련한 뒤 나는 쭉 놀고 있었다. 전 직장의 계약이 결혼 준비와 맞물려 시의적절하게 만료된 덕에 실업급여를 받으며 그럭저럭 몇 개월은 지낼 수는 있었지만, 실업급여가 끝나갈 무렵의 나는 돈이 한 푼도 남아있질 않았다. 당황스럽게 맞이한 경제적 공황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무지 다급히 일을 알아보게 됐다.


평생을 바치고 사명과 보람을 얻을만한 지는 전혀 고려할 시간이 없었다. 구직 사이트를 뒤져 급여조건이 충족되고 집에서 가까워 보이는 곳에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다. 뭔가 이상하지만 나의 취업 방식은 늘 이러하다. 한 시라도 빨리 일을 해서 돈을 마련해야 하니, 늘 그랬듯 '그중 먼저 연락이 오는 곳에 가야지' 하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중 제일 먼저 연락 온 곳이 집 근처의 백화점이었던 것이다.



어떤 일이 펼쳐질 지는 모르지만 무엇이든 해야했던 나. (사진출처:핀터레스트)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내가 해 온 종류의 사무직종이 아닐 것이란 정도만 추측했을 뿐. 하지만 상관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 나에게 직장이란, 일을 하고 임금을 받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내게 대단히 중요치도 않았고, 남들이 보기에 업신여길 정도의 일만 아니면 아무래도 괜찮았다. 게다가 무슨 일을 시킨대도 곧잘 적응해서 감정 없이 일하는 게 나의 특성이기도 했다. 그러니 생소한 백화점 업무라고 해서 내게 딱히 무섭게 다가올 리도 없었던 터. 어디 가서 손님을 직접적으로 대면해본 적 없는 나였지만, 나는 "뭐든 하면 하는 거지, 뭐 있겠어"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서른 살의 나이에, 서비스 경험이 전무한 채로 서비스직의 최전선인 백화점에 “어쩌다” 종사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나는 내 예상(?)대로 곧잘 적응해나갔다. 일하게 된 곳의 데스크에는 하루에도 2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갔고,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내 의외의 강점이었을까. 스스로 나의 정체성을 '작가'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이후부터, 나는 글을 쓰는 일 이외의 일에는 큰 무게를 두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돈만 제 때 준다면 어디에서든 잘 적응하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그렇게 설정된 기계처럼 말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나를 보고 신기해하기도 한다. 이런 류의 일을 해본 적이 없는데 괜찮냐, 할만하냐, 힘들지 않냐. 물론 해보지 않은 성격의 일이고, 예상치 못한 일들도 많이 벌어진다. 매우 특이하고 특수한 곳이다. 하지만 이 곳 역시, 경험이 있고 없고 보다 중요한 자질이 '무던하게 적응하기'이더라. 고객과 말 한마디 섞어본 적 없던 '내추럴 본(natural born) 사무직'도, 무던히 지내다 보니 알아서 서비스인이 되더라는 것이다. 생계에 목적을 두면 자질구레한 감정에는 저절로 무디게 되는 모양이다. 어느덧 나는 꽤 그럴듯한 모양의 서비스인을 흉내 내고 있다. 나도 가끔 놀란다.




백화점에 들어와 지낸지도 제법 긴 시간이 지나간다. 새로운 해가 되었고, 나는 서른 하나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나보다 먼저 들어와 일하던 사람들이 나가고, 내 밑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생겼다. 의식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는 사이, 어느새 당연하고 오래된 일터가 되어버린 이 곳 백화점. 수없이 거쳐간 직장들 중 하나일 뿐일 이 곳에 나는 지금 발을 내리고 있고,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글로 쓰고 있으니, 세상 모든 일들은 참 우연이면서도 필연이 아닌가 싶다.


내가 언제까지 이 곳을 다닐지는 나도 알 수 없다. 지금껏 직장 유목민으로 살아온 것처럼, 내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내가 관두고 싶을 때까지 다니겠지. 글을 써서 출판을 하고 언젠가 이름을 알리는 사람이 될 때까지 나의 경제적 버팀이 되는 곳. 그게 내가 생각하는 직장의 개념이다. 그러니 직장은 내게 커다란 의미의 무엇이 될 수는 없으나, 다양한 직장에서 겪는 일들을 엮어 글로 만들 수 있다면 작가로서 나쁘지는 않은 일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다.




실제로 백화점에서는 이전의 직장들에 비해 특히나 더 재밌는 일들이 일어나 반가운 구석이 있다. 이는 답답한 공간에 갇혀 지루하게 흘러가던 사무직종과는 또 다른 매력이며 삶의 환기이다. 매일 수백 명의 사람과 부딪치고, 그러면서 즐거운 일이든 열 받는 일이든 경험해보지 못한 에피소드가 생겨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 곳이 정말 지겹고 심란한 곳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글쟁이인 나에게는 <원미동 사람들> 혹은 시트콤 <논스톱>만큼이나 매회 왁자지껄 웃기는 곳이니, 그럭저럭 재미를 붙이며 지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런 말을 멋지게 내뱉으며 퇴사하는 꿈을 꾼다. "팀장님, 사실은 제가 작가인데요. 제가 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돼서..., 이 일을 이제 못할 것 같습니다" 캬, 얼마나 멋진가. 정말 내가 꿈꾸는 퇴사의 이유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축복과 질투를 받으며 이 곳을 정리하는 일. 그리고 출판 턱을 후하게 쏘며 (이왕이면 메뉴는 참치가 좋겠다)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일. 물론 아직은 풋내 나는 꿈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내 이루고 마리라.


그런 꿈을 간직하며 그 날이 올 때까지, 나는 여기서 묵묵히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겠다. 나에게 직업적 보람을 주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무한한 에피소드와 적절한 월급을 제공해주는 나의 일터에 오늘도 감사함을 느끼며.





해당 글은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에 수록된 글입니다.

[브런치] 책 유도 배너_어쩌다 백화점(770px).jpg
[브런치 씨네랩] 작가 소개(770px).jpg 인스타그램 @woodu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