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백화점. 항상 과도할 정도로 친절을 베푸는 직원들과, 늘 반듯하게 진열된 물건들. 언제 봐도 새롭고 화려한 것들로만 점철된 곳. 고객으로서 방문했던 백화점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굴러가는 듯 보이는 그곳에는 아무런 허물도 없는 줄 알았다. 어쩌면 영원히 고객이 그런 느낌을 받고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백화점의 의무이기도 할 테다.
내가 살던 곳 대전에서는 백화점이 딱 세 군데 있었다. 그마저도 규모가 소박하여 (대전에 살 때는 그 규모가 소박한 것인 줄 몰랐지만), 결혼해 분당으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커다란 백화점을 볼 일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경기-서울권의 백화점을 가보게 되면서 나는 그 압도적인 규모의 백화점에 일종의 충격을 받았더랬다.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괴물같이 크기만 해서 삭막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너무나 다양한 볼거리에 매료되어 찬양을 하게 되기도 하는 빅 사이즈 백화점. 갈 때마다 화려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에 대해 나는 일종의 신앙심을 품게 되었고 그곳은 점차 내 소비패턴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됐다.
하지만 그 어떤 완벽한 장소도 어지럽혀지기 마련이고, 쓸고 닦아야지만 그 모습이 유지되는 것임을 나는 왜 몰랐던가. 직원으로 백화점을 다니게 되면서 나는 백화점에 품었던 그 로망이 찬찬히 하나씩 부서져 가나는 것을 경험하게 됐다. 세상에 허물없는 것은 없으며, 완벽해 ‘보이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진짜로 완벽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은 불편한 경험인 동시에 유익한 경험이기도 했다.
백화점의 오픈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백화점 직원들은 그보다 보통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한다. 출근도 고객이 다니는 정식 출입구가 아닌, 샛길에 비밀스럽게 난 통로로 이루어진다. 그곳은 당연히 고객이 다니는 공간처럼 새하얗고 뽀드득한 길이 아니다. 퀴퀴하고 어두침침한 터널 같은 공간이다. 그리로 비밀요원처럼 출근을 하고 나면,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오픈 전까지 열심히 매장을 정돈한다. 전날 밤 마감을 하며 집어넣었던 여러 물건들을 끄집어내 제자리에 놓고, 컴퓨터와 태블릿 등의 시스템들을 부팅하며 응대 준비를 하면 끝!
나는 이 시간대가 유독 흥미롭게 느껴져서 많은 매장을 관찰하곤 했다.
주얼리, 명품 등의 고가 매장들은 장갑을 끼고 먼지 한 톨이 있을세라 굉장히 섬세하게 진열대를 청소한다. 의류매장 직원들은 아침부터 창고에서 분주히 재고를 체크해 옷이 든 박스들을 옮겨 나른다.
내가 일하는 지하 1층 식품관의 여사님들은 제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식품관의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야채와 과일들. 그녀들은 자신이 맡은 매대의 물건들을 심미적으로 진열하는데 열을 올리곤 한다. 음식을 직접 판매하는 점포의 직원들은 또 어떤가. 땡, 하고 오픈하자마자 판매할 수 있게끔 분주히 음식을 빚고 만들고 부치기에 여념이 없다. 모두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최선의 과정들이다.
그렇게 고객의 발이 아직 닿지 않은 시간의 백화점 풍경은 어수선하면서도 부지런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오픈에 집중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참으로 한결같다. 누구 하나 게으름을 피우는 법이 없다. 어떻게든 오픈 전에 영업 준비를 마치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한 이 공간, 그리고 직원들의 얼굴과 몸짓. 그 모습이 내게는 참 생경하게 다가오곤 했다. 고객의 입장에서 방문할 때면 원래 그 자리에 완벽하게 있었던 양 보였던 풍경들이, 사실은 직원들이 몇십 분 전에 다람쥐처럼 열심히 세팅해놓은 공간이라는 걸 미리 들여다보는 그 묘한 기분이란.
그렇게 열심히 오픈 준비를 하다 보면, 정확히 10시 29분에 백화점의 오픈을 알리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고객맞이 준비를 내부적으로 얼추 마무리 짓는다. 그때는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다. 그러면 잠시 뒤 방문할 고객들 눈에는 '원래부터 완벽하게' 이루어진 듯한 눈부신 공간들이 눈앞에 펼쳐져있겠지. 페스츄리 집에는 방금 전까지 텅 비어있던 매대가 형형색색 페스츄리로 가득 채워져 있고 (당연히 오픈 전에 부지런히 구워서 채워 넣었다), 화장품 매장의 매대는 진공상태마냥 먼지 한 톨 묻어있지 않은 마법. (당연히 간밤에 내려앉은 먼지를 아침에 닦아냈다)
이런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직원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공간을 얼마나 쓸고 어루만지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오픈 시간을 지켜보면 존경심 반 연민 반으로 묘하게 마음이 울렁거리는 것이었다.
덕분에 이제 나는 영영 백화점을 '원래부터 완벽하고 차질 없는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게 됐다. 아마 이 곳을 퇴사한 이후에도 오래 지속될지 모를 감정이다. 동시에, 어쩌다 허술한 뭔가를 목도하게 되더라도 고래고래 따지지 못할 것 같은, 백화점에 대한 이해심을 얻었다. 왜냐하면 이 곳은 원래부터 완벽한 공간이 아니란 것을 이제 누구보다 잘 아니까.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들의 바지런함이 만들어낸 완벽함이란 걸 깊이 이해하니까.
한 공간에 대한 사람의 경험이 이리도 겹겹이 다를 수가 있을까.
결혼을 하기 전 내게 백화점은 그저 만남의 장소였었다. 백화점 입구에서 친구를 만나 백화점 밖의 다른 곳에서 소비를 했고, 깔끔한 백화점에서는 화장실이나 푸드코트 등을 잠시 이용하는 정도가 전부였던 기억. 그곳은 내게 진정한 소비를 허락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어쩐지 나와 걸맞지 않은 격이 높은 공간, 쉽사리 매장을 돌아보기엔 왠지 내가 초라해지는 위압적인 공간이었다.
백화점에 취직을 하면서 내부자가 된 지금의 내게 백화점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나의 일터이자 쉼터가 된 이곳은 '좋은 의미'에서 완벽한 공간이 아니다. 이렇게 세련된 공간에 당신처럼 누추한 사람은 오면 안 된다는 위압의 감정을 심어주는 공간이 아니다. 내부를 들여다보고 나면 깨닫게 된다. 그저, 보다 큰 규모의 공간에 만물을 모아놓고 극진한 서비스를 베푸는 공간이며, 재래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할머니들과 우리 직원의 정성은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걸. 한 때는 오해했지만 백화점도 여느 곳과 다를 것 없이, 그 날의 장사를 위해 걸레와 행주로 매장을 쓸고 닦으며 매일같이 물건을 부지런히 공수하고 진열하는, 조금 큰 가게일 뿐이란 걸.
오늘도 내일도 백화점은 완벽할 것이다. 아니, 완벽함을 추구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객들이 보기 전에 매일매일 그 공간을 쓸고 닦는 직원들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그러니 세상에 원래부터 완벽은 없으며, 완벽을 기하는 그 노력이야말로 참 대단한 게 아닌가 싶다.
해당 글은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