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휴무는 꿀이어라

주말에 연연하지 않게 된 이유


백화점에 서른일곱 살 언니 한 명이 새로 들어왔다. 갸름한 체형에 수줍어하는 모습이 싱글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무려 6년 전에 결혼을 했다고 했다. 같은 유부녀로서 갑자기 동질감이 팍 밀려들어, 인사치레로 "주말에 남편분이랑 데이트 못해서 어떻게 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거의 모든 주말에 일해야 한다는 사실까지는 몰랐다며 난감한 기색을 표했다. 그녀가 전에 일했던 L백화점에서는 주말 근무자가 따로 있어서 그녀는 평일에만 일했다는 것이었다. (좋은 백화점이다.)


우리 데스크는 요즘 오래된 공석으로 사람이 급한지라 하루에도 두세 명씩 면접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한 달에 주말은 금 토 일 이렇게 딱 3일만 쉴 수 있으며, 주말에 마감 근무가 걸리면 저녁 아홉 시까지 근무해야 한다는 아주 중대한 사실을, 새로 온 그녀에게 고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계속된 면접으로 지친 사무실의 실수였다.



사무직종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돌이켜보건대, 일반적으로 주말에 늘상 쉬던 직종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주말에 출근을 한다는 것이 사실 굉장한 핸디캡이다. 게다가 주말에 일하는 것도 억울한데 마감 근무 때는 아홉 시까지 일해야 된다고 하면 기함을 토할 일이다. 나도 맨 처음 백화점에서 면접을 볼 때 그런 반응이었었던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거의 이십 대 평생을 아홉 시 출근 - 여섯 시 퇴근에, 무조건 평일에만 근무했던 나에게도, 분명 이런 질서를 거스르는 백화점의 스케줄이 충격이긴 했을 터다.


하지만 인간의 무서운 적응력이란.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주말에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을 하고, 투덜대면서도 아홉 시까지 성실하게 데스크 마감을 지키는 충직한 직원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그러니 주말을 빼앗겨야 한다는 생각에 당황해하는 새로운 직원을 보며, 그 당혹감이 어떤 크기 일지 새삼 뒤늦게야 이해가 됐다.




오후쯤 되어, 우리 기존 직원들은 하나같이 걱정을 했다. 오랜 각고 끝에 뽑힌 직원이 주말과 마감 근무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만둬버리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일머리도 있고 센스도 있어 보이는, 다분히 장점이 많은 언니 같았는데. 며칠 만에 또 직원이 나가버린다면 그 공허함은 고스란히 남겨진 직원들의 몫이 될 터다.


이럴 땐 공감대가 있는, 같은 유부녀가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됐다. 나는 새로 온 언니에게 넌지시 말했다. "언니, 평일에 쉬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에요"라고. 그러자 그녀는 '엥, 그게 대체 무슨 소리?'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찬찬히 설명했다. 나도 원래는 주말에만 쉬어 본 사람이라 주말에 남편이랑 같이 못 쉬는 걸 걱정했는데, 막상 지내보니 평일에 남편이 출근한 집에서 혼자 편히 쉬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 그녀는 ‘정말 그래요? 설마요’라는 얼굴이었지만, 사실 난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서 지어내는 게 아니라 정말로 평일에 쉬는 지금이 너무 흡족한 사람이었다.



남편이 출근한 평일 낮,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의 즐거움.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사실 연애를 하는 어린 싱글 친구들에게는 주말근무가 독이 될 수가 있다. 서로 각자의 집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만 겨우 같이 붙어있을 수 있는 연인 사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하지만 유부녀는 또 다르지 않은가. 우리는 상시 남편과 붙어있다. 좋든 싫든 저녁엔 집에서 만나서 같이 밥을 먹고 티브이를 보고 같이 잠든다. 그렇게 매일을 붙어지내다보면 굳이 주말까지 같이 하루 종일 붙어있어야 한다는 강박은 무뎌지게 마련이다.


좋아하고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그 감정과는 별개로 사람에겐 분명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나면, 데이트를 하고 각자 헤어져 집에 돌아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아니라 쭉 함께인 상태니까. 월화수목금토일이 모두 풀가동 데이트인 셈이다. 그러니 정말로 '나 혼자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되려 그립고 필요해진다는 것. 실제로 나에겐 남편과 함께 쉬는 주말이 한 달에 딱 3일 주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더라.


그런 나에게 이제 평일 휴무는 백화점을 다니는 커다란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평일 쉬는 날에 남편이 출근을 하면, 나는 대-충 느지막이 일어나 혼자 커피를 내려마시고 식빵을 구워 먹는다. 티브이도 내 맘대로, 밥도 내 맘대로, 모든 게 내 맘대로다. 뿐만인가. 예쁨은 포기한 채, 목 늘어난 티셔츠에 머리를 대충 올려 묶고 쉴 수 있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편한 남편이라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집에 있으면 혼자 있을 때보단 의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게 사람인지라.




오늘도 나는 머리를 질끈 올려 묶고 세상 편한 옷차림에 방귀도 내 맘대로 뿡뿡 뀌어대며, 나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음에 어찌나 행복한지 모른다. 하지만 이 평일 휴무의 장점을 아직 경험해본 적 없을 새로운 언니가 내일이라도 당장 그만두어버릴까 싶어, 나는 같은 유부녀로서 오히려 평일 휴무는 굉장히 좋을 거라고,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느냐며 강하게 어필했던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며 그녀는 나의 말을 경청해주었지만, 글쎄, 계속 다닐지 말지는 그녀의 판단일 것이다.


백화점은 이제 내게 로마가 되었고 나는 로마의 법에 완전히 스며들었다. 이제 나는 거꾸로, 주말에만 쉬는 직장에는 다시 다니지 못할지도 모른다. 모든 경험은 결국 경험해본 사람만이 온전히 알 수 있는 걸까. 백화점을 다니기 전엔 남편이 일할 때 혼자 누리는 나만의 휴식이 뭔지를 몰랐고, 그래서 막연히 주말근무를 그리도 두려워했었는데. 막상 누려보고 나니 웬걸, 이건 오히려 특권에 가깝다.



목요일 평일 쉬는 날인 오늘도 나는 남편 없는 집에서 혼자 맘껏 놀고 글을 쓰는 중이다. 주말에 남편과 하루 종일 함께 있을 때면 또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지만, 이상하게 나는 남편이 옆에 있을 땐 놀기는 잘 놀아도 글은 쓰지 못한다. 그러니 글을 쓸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는 평일의 여유가 나에게는 더욱 단비처럼 느껴지는지도.


오늘은 글을 쓴 다음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를 볼 거다. 주말에 남편한테 같이 보자고 하면 난색을 표할만한 영화도 평일엔 맘 편히 혼자 볼 수 있다. 이 또한 장점이다. 즐겁고 여유로운 목요일이다.






해당 글은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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