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영신 Apr 09. 2021

시간과 자본에 허물어지지 않는 삶의 힘

삶을 위한 멈춤, 여행 _ 양림 골목 비엔날레 2


삶의 축제를 만들어 가는 마을의 힘

양림 골목 비엔날레


도슨트 투어의 출발점이었던 여행자 라운지에 다시 도착해 차를 마시며 찬찬히 걸어온 골목과 라운지를 돌아본다. 10년후 라운지는 여행자 플랫폼뿐 아니라 전시와 아트마켓을 겸하고 있었다. 거기엔 걸으며 만났던 어느새 낯익은 양림의 작가들 작품이 반갑게 놓여있다. 미처 시간이 없어 살피지 못했던 입구에는 로컬의 이야기와 가치, 예술이 담긴 기념품 가게가 반짝반짝 아름답다. 마을을 만나기 전과 후, 질문의 심급이 달라진 여행자들은 다시 만난 이한호 대표에게 골목 비엔날레를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기획한 것인지 걸으며 일었던 궁금증들을 후드득 내려놓는다.

 

"코로나가 터지며 광주는 비엔날레뿐 아니라 다른 전시나 행사도 다 멈추어 섰어요. 여행은 말할 것도 없죠. 게다가 양림동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오며 몇 달을 양림동의 카페나 책방, 식당들은 어려운 시간을 견뎠어요. 하지만 삶은 멈출 수가 없잖아요. 관에서 운영하는 큰 미술관이나 전시관들이 문을 열 수 없다면 늘 열려있는 골목과 가게들에 작품을 걸자. 많은 사람이 모이고 만나는 행사가 어렵다면 한 둘이서, 두 셋이서 찾아오고 만나는 삶의 자리인 카페와 베이커리에서 사람들을 만나자.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자  뜻을 모은 거죠"

10년후 그라운드의 풍경, 사진 이한호

장사하는 사람들이 가게를 닫을 수 없는 것처럼 예술가들은 내려놓을 수 없는 자신의 예술을 들고 삶의 자리로, 골목 한가운데로 나가 삶의 전시를 시작했다. 여행 온 누군가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 은행 달력 자리에 걸려있는 작품을 마주하고, 빵을 고르다 작품 앞에 손과 마음이 멈추는 삶의 전시, 카레를 먹으러 들어가서, 젤라토 카페에서 심지어 청국장 집에서 예술을 선물처럼 만나는 삶의 비엔날레, 그 사람의 온기를 가진 축제를 마을과 예술가들의 힘으로 오롯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 귀하고 소중한 뜻을 이루는 일에 가장 어려웠을 예산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묻자 이 대표는 망설임 없이 답한다.

"외부 지원은 전혀 없어요."


양림 골목 비엔날레 기획자, 10년 후 그라운드 이한호 대표를 만나는 여행자들



시간과 자본에 허물어지지 않는 마을의 삶, 예술의 힘


그러나 그 한 마디로 갈음하기에 65일간 진행되는 골목 비엔날레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이들의 수고와 무게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닐 듯했다.


"돈은 중요하죠. 하지만 돈보다 크고 귀한 힘이 양림이 가진 관계의 힘이라는 걸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16곳의 가게와 식당, 카페 사장님들이 13분의 작가들에게 흔쾌히 전시 공간을 내어 주시고, 이이남, 한희원 같은 선배 예술가들이 주저함 없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 주셨죠.정헌기 대표님같은 기획자들이 함께 뛰어들었구요. 작가들이 골목비엔날레에서 작품이 팔리면 50%는 작가들을 위해, 그리고 나머지 50%는 골목 비엔날레 재정을 위해 쓰기로 뜻을 모아 주셨어요. 어떤 외부의 힘도 의지하지 않고, 마을에 깃든 관계의 힘으로 코로나 속에서 이 비엔날레가 시작되고, 또 관람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오고 있다는 것이 이미 소중한 결과"


골목비엔날레를 함께 기획한 양림의 예술가와 기획자들 _ 사진 이한호


여전히 작품이 얼마나 팔릴지, 그것으로 필요한 예산이 충당될 수 있을지 그것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양림 골목 비엔날레의 모든 홍보물에는 이미 '1회'라는 숫자가 약속처럼 선명하다. 가장 어려운 시절, 가난한 주머니 털어 있는 것은 보태고 없는 것은 비워두며 만들어 온 여정이니  걸음 안에  '다음'은 이미 다시 올 봄처럼 깃들어 있는 것이다.  

두번의 개막식, 한번은 마을과 함께, 한번은 손님을 위해
양림 골목 비엔날레를 함께 기획하고 주제전과 개막식의 미디어 파사드_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 / 사진 이한호 

 

"개막식도 주민들과 상인들, 작가님들과 함께 조촐하게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시청에서 시장님 의원들이 오신다는 거예요. 그럼 또 불필요한 의전을 해야 하고 그분들께 마이크를 드려야 하잖아요. 결국 뜻을 모아 개막식을 두 번 했어요. 한 번은 마을을 위해, 다시 한번은 마을을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돌아보던 작품 중 하나에 이미 팔렸다는 표시인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다. 누가 샀을지 궁금해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제가 샀어요. 제 목표가 양림의 작가들 작품을 한 점씩 다 소장하는 것이거든요"


코로나를 건너는 문화기획자에게 작품 한 점을 산다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이었일까.. 예향 광주에서 삶이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에 마음의 뜻을 두고 양림으로 삶의 뿌리를 옮긴 지 어느새 8년째, 흔들리고 넘어지면서도 그가 건너온 시간과 진심의 무게가 묵근히 전해진다.


예술도시란, 결국 예술가들이 삶의 뿌리를 두고 살아갈 수 있는 도시, 그 예술가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그 예술의 공간과 길을 열어가는 도시가 아니던가. 외부의 지원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삶에 뿌리를 둔 예술과 축제를 만들어 가는 힘, 그것이 우리가 맑은 햇빛 속을 걸으며 마주한 양림의 길들이 시간과 자본에 허물어지지 않고 아름답게 지켜질 수 있는 근원 아니었을까..



양림 골목 비엔날레가 끝나기 전에  양림에 다시 한번 와야겠다고 마음 갈피에 조용히 적어둔다. 그것이 내가 이 마을에서 펼쳐지는 삶의 축제를 향해 보낼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이기 때문이다.


 며칠을 머물다 가는 여행자일 뿐이지만 양림에 오면 길을 가다 마주치는 작가와 이웃들, 세탁소와 식당들, 카페와 빵집에 오랜 이웃 인양 연결의 마음들을 켜켜이 쌓아간다. 몇번의 10월을 보낸 이스탄불의 바람과 냄새를 가을마다 떠올리듯, 요르단 홍차 노점상에서 설탕을 조금 넣는 내 취향을 기억해 주던 배려를  홍차를 마실 때마다 기억하듯 우리가 어딘가에 머문다는 것은 그곳에 삶의 일부를 두고 오는 일이다. 머무는 여행자가 된다는 일은 머무는 삶의 시간 동안 그곳의 바람과 습기, 사건과 이야기들, 공간과 사람을 만나고 관계 맺는 기억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머문 시간의 깊이만큼 존재의 일부를 양림에 두고 가는 여행자들은 기꺼이 양림의 이웃이 되어 삶을 지키는 여행, 마을을 지키는 예술을 응원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다음 편 _ 생명의 위로, 이이남 아트센터



양림 골목 비엔날레  https://alleybiennale.modoo.at/




*베엔날레 사진 출처 : 양림골목 비엔날레홈, 10년후 그라운드페이스북




작가의 이전글 마을이 된 미술관, 골목에 깃든 삶의비엔날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