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전반기를
안식년으로 정하고
카카오톡 프로필을
호기롭게 변경해 두었다.
"가고 싶은 곳만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하고 싶은 일만 합니다."
해야 하는 일의 시간에서 몇 걸음 물러서서
삶의 기준을 여행의 시간처럼
다른 질문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인가?"
"가고 싶은 곳인가?"
"만나고 싶은 사람인가?"
적어도 세 번을 묻고서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해외로 떠나지 못해 밀봉되지 않은 삶은 중력의 영향을 피하지 못한 채 겹쳐진 시간 속을 걷게 된다.
종종 강연도 하고, 회의도 하고, 마을의 일들도 있지만 저 세 가지 질문을 늘 마음의 중심에 둔다.
가고 싶은 도시였다면, 아무리 멀어도 가기로 결정을 한다. 강연이 끝나고도 그곳에 깃들어
사람과 마을을 만나기 위해 시간의 여백을 둔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비록 '회의'일 망정 앞뒤를 둘러싼 시간을 비워두고 만남이 발화할 틈을 예비한다. 여행을 마친 후에도 성급히 다음 여정으로 나아가지 않고 돌아보고 숙고하며 삶의 걸음들을 기록해 나간다.
그러나 "해야만 하는 일의 시간"에도 삶의 일부를 투여하는 일을 영 피하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나 마을에서의 시간이란 찾아오는 사람을 마중하고 맞이하는 일.. 시의 부서에서 여러 이름의 센터까지 온갖 의미 있는 일에 자문과 기여를 요청한다.
그러나 왜, 그 일에 내 삶이 쓰여야 하는지,
당신의 일이 왜 우리의 일이 되어야 하는지 되묻기 시작하면 쉬이 답하지 못한다.
타인의 마음을, 삶의 일부를 얻는 일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길을 찾는 질문의 시간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자리를 견뎌본 이들만이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새로운 도시와 삶을 위한 논의의 장에 초대받아 7시간에 달하는 긴 시간을 쓰고 돌아온 날, 내려놓았으나 스며들지 못한 언어들이 밤새 꿈결 속을 맴돌았다. 많은 말들이 오갔으나 공명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부유하고 있었다.
경청과 공명 없는 언어는 어떤 만남도 발화시켜내지 못한다. 그것에 왜 내 삶의 시간을 투여해야 하는지 묻고 답하며 길을 찾을 수 없는 일에 삶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투여할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만다.
"헛도는 말, 겉도는 삶"
삶의 가장 귀한 시간들을 뭉텅뭉텅 가져가는 것들을 뒤로하고 다시 여행의 질문들로 삶의 방향키를 조정해 본다.
여행가방을 꾸릴 때처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물건들을 먼저 덜어내고
필요할 것 같았던 것들도 덜어내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서도
대체가 가능한 것들이라면 또 덜어낸다.
비우고 덜어내 빈 구석이 있는 가방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그 가방은 결국 짐이 되고, 여행을 주저앉히는 덫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현지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것들을, 만남을,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올 틈이 없는 여행이 되고 만다.
다시, 여행으로 나아가는 삶
작고 소박한 가방 하나를 꾸리며
길 위에 삶의 기준점을 두어 본다.
"살고 싶은 곳을 여행하듯
살고 싶은 시간을 선택한다"
선택할 수 없는 시간도
선택해야 하는 삶을
묵묵히 감당해 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