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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na Sep 04. 2019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어

주문처럼 외워보렴, 그럴 수도 있지. 

엘림아, 드디어 봄이 저만큼 온다. 

밖에다가 빨래를 널어야지 싶을 만큼 오늘은 볕이 좋은 날이었어. 봄날의 순한 햇빛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따스한 봄볕 덕에 입고 있던 카디건을 슬쩍 벗어두며 생각해봤어. 늘 봄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순하고 따뜻한 사람, 위로가 되는 그런 사람 말이야.


순하다고 해서 마냥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 되라는 건 아냐.

엄마는 엘림이가 화를 낼 줄 알지만 참아주는 쪽을 택하는, 어떤 충분한 힘을 지녔지만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래, 성경이 말하는 온유(溫柔)한 사람 말이야. 


온유라는 단어를 원어로 찾아보면 헬라어 프라우테스 (Greek word; prautes)인데 이 단어는 참 멋진 뜻을 가졌단다. 넓은 벌판을 질주하던 야생마를 길들여 주인의 명령에 잘 순종하고 따르게 되면 그때부터는 이 말을 프라우테스 말이라고 불렀대. 주인을 해하고도 남을 충분한 힘을 가진 야생의 동물이 본능적인 행동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길들여지는 것. 그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지. 이렇게 본능을 이길 수 있을 만큼 잘 훈련된 성품이 바로 온유란다. 우리의 인격도 잘 훈련되어서 유익한 목적을 위해 힘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엘림아, 살다 보면 당신을 참 이해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들이 생길 거야. 그럴 땐 그를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주문처럼 외워보렴. 각자의 사정이란 것은 꽤나 복잡해서 그가 지나온 시간들을 하나하나 헤아려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단다.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란 것이 분명 있었을 텐데 우리가 그 이유까지 알아내기에는 그 사람을 아직 잘 모르는 까닭에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라. 그가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어쩌면 사과를 해야 할지도 모르지. 미안합니다, 내가 당신을 내 방식대로 오해했어요-라고 말이야. '당신은 이렇게 행동해야 합니다'라는 나만의 잣대를 조금만 벗어났다고 해서 오만가지 아픈 말로 뾰족 뾰족 찔러대는 것이야말로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사람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 

기다려 주기. 따뜻하게 말해주기.
너에게는 너만의 고유한 상황과 감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주기.
- P.139,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누구도 미워하지 마. 대신 마음속에 사랑의 자리를 넓히자. 

그를 미워할 수 있지만 그 대신 참아주고, 기다려주자. 아픈 말로 찔러대기보다는 따뜻하게 말해주자. 네가 그에게 성실하게 보내준 그 사랑은 돌고 돌아 다시 네게로 돌아올 테니. 그 사람의 상황과 감정을 헤아려보자. 사랑으로.


엄마 아빠의 결혼식 주례 말씀이었던 베드로 전서 4장 8절 구절을 남기며 이 편지를 마칠게. 

사랑하는 엘림아,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단다. 엄마도 너를 매 순간 사랑으로 이해하며 살게. 오늘도 잘 자렴.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 전서 4장 8절
Above all love each other deeply, because love covers over a multitude of sins.  - 1 Peter 4:8


- 2019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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