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처럼 외워보렴, 그럴 수도 있지.
엘림아, 드디어 봄이 저만큼 온다.
밖에다가 빨래를 널어야지 싶을 만큼 오늘은 볕이 좋은 날이었어. 봄날의 순한 햇빛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따스한 봄볕 덕에 입고 있던 카디건을 슬쩍 벗어두며 생각해봤어. 늘 봄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순하고 따뜻한 사람, 위로가 되는 그런 사람 말이야.
순하다고 해서 마냥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 되라는 건 아냐.
엄마는 엘림이가 화를 낼 줄 알지만 참아주는 쪽을 택하는, 어떤 충분한 힘을 지녔지만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래, 성경이 말하는 온유(溫柔)한 사람 말이야.
온유라는 단어를 원어로 찾아보면 헬라어 프라우테스 (Greek word; prautes)인데 이 단어는 참 멋진 뜻을 가졌단다. 넓은 벌판을 질주하던 야생마를 길들여 주인의 명령에 잘 순종하고 따르게 되면 그때부터는 이 말을 프라우테스 말이라고 불렀대. 주인을 해하고도 남을 충분한 힘을 가진 야생의 동물이 본능적인 행동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길들여지는 것. 그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지. 이렇게 본능을 이길 수 있을 만큼 잘 훈련된 성품이 바로 온유란다. 우리의 인격도 잘 훈련되어서 유익한 목적을 위해 힘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엘림아, 살다 보면 당신을 참 이해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들이 생길 거야. 그럴 땐 그를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주문처럼 외워보렴. 각자의 사정이란 것은 꽤나 복잡해서 그가 지나온 시간들을 하나하나 헤아려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단다.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란 것이 분명 있었을 텐데 우리가 그 이유까지 알아내기에는 그 사람을 아직 잘 모르는 까닭에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라. 그가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어쩌면 사과를 해야 할지도 모르지. 미안합니다, 내가 당신을 내 방식대로 오해했어요-라고 말이야. '당신은 이렇게 행동해야 합니다'라는 나만의 잣대를 조금만 벗어났다고 해서 오만가지 아픈 말로 뾰족 뾰족 찔러대는 것이야말로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사람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
기다려 주기. 따뜻하게 말해주기.
너에게는 너만의 고유한 상황과 감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주기.
- P.139,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누구도 미워하지 마. 대신 마음속에 사랑의 자리를 넓히자.
그를 미워할 수 있지만 그 대신 참아주고, 기다려주자. 아픈 말로 찔러대기보다는 따뜻하게 말해주자. 네가 그에게 성실하게 보내준 그 사랑은 돌고 돌아 다시 네게로 돌아올 테니. 그 사람의 상황과 감정을 헤아려보자. 사랑으로.
엄마 아빠의 결혼식 주례 말씀이었던 베드로 전서 4장 8절 구절을 남기며 이 편지를 마칠게.
사랑하는 엘림아,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단다. 엄마도 너를 매 순간 사랑으로 이해하며 살게. 오늘도 잘 자렴.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 전서 4장 8절
Above all love each other deeply, because love covers over a multitude of sins. - 1 Peter 4:8
- 2019년 9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