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택트> (2016)
* 이 글은 영화 <컨택트>에 대한 리뷰이며,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어쩌다 어른>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조승연 작가가 이야기했던, 절대 방향만을 기억하는 부족에 대한 것이었다. 오른쪽, 왼쪽이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상대 방향에 대한 개념이 없고, 그저 동서남북이라는 절대 방향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언뜻 듣기에는 그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인 것 같고 초능력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사방을 알기 위해 나침반이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흔한 전자레인지 사용법을 익히지 못한다. '다이얼을 오른쪽으로 돌린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치가 바뀌면 그들은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다이얼을 돌려야 하는 전자레인지의 작동원리를 무엇보다 어렵게 느끼는 것이다.
언어는 과연 사람의 어디까지 지배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것인가.
<컨택트>라는 제목을 들으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있다. 모두 그렇듯 나 역시 <콘택트>를 먼저 떠올렸다. 왜 굳이 같은 장르에서 다른 영화가 했던 제목을 가져다 붙였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나쁘지 않은 제목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헵타 포드와 루이스가 경계벽을 사이에 두고 최초로 손을 마주하는 장면은 놀라울 정도로 제목에 충실하지 않은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기대했던 것은 외계인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그 외계인과의 단순한 만남에서 벌어지는 일의 파장이었으나, 영화는 그저 그것만 주지는 않았다. 언어라는 것의 놀라움. 언어가 인간의 시간에 관여하며 어디까지 놀라움을 줄 수 있는가. 시간을 뛰어넘으며 과거와 미래가 겹쳐지는 현재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는 장면은 나를 감탄하게 하였다. 어째서 외계인을 처음 만나러 가는 자리에 언어학자가 존재해야 하는지, 잠시나마 품었던 의문은 오히려 어떻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지로 변화했다.
헵타 포드의 언어는 마치 먹을 묻힌 붓으로 그린 원처럼, 시작과 끝이 서로 꼬리잡기를 하고 있다. 우리의 말은 지금 내가 적고 있는 것처럼, 시작과 끝이 있고 어디선가 시작해서 어디론가 선으로 이어진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나라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흘러가는 시간처럼 한 방향으로 흐른다. 하지만 헵타 포드의 말은 달랐다. 시작과 끝이 하나로 이어져, 말의 마지막이 그 시작과 함께하는 놀라운 언어였다. 외계인과 우주선, 그런 과학을 기대하며 보았던 SF 영화에서 나는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감성적인 무언가를 보았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논제로섬 게임을 떠올리는 장면이었다.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세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딸과 했던 미래의 대화에서 현재의 일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는 것은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개념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루이스가 헵타 포드 언어를 습득하면서 얻은 시간의 개념으로 경험한 놀라운 일이다.
이 영화는 과학적이며 SF 영화로서의 대단함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우리에게 삶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내 미래를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그저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생각했다. 나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슬픈 일을 겪는다면, 그 일이 벌어지는 것을 그대로 둘 것인가. 어떠한 일로 인해 겪을 기쁨을 그에 준하는 슬픔과 함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