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부 Jun 11. 2024

혀를 내밀고 '이~~'하세요.

지나면 '희극'인 하루

"혀를 손으로 잡아 빼고 '이~~~'소리를 내세요."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아내는 자기 손으로 자신의 혀를 잡아 최선을 다해 잡아 빼고 할 수 있는 한 길게 '이~~~~'소리를 내었다.


이틀 전 손두부집 저녁 찬으로 나온 조기를 먹고 난 후 아내는 연신 헛기침을 했다. 목에 가시가 박힌 것 같다고 했다. 목이 울리게 '음!'하고 숨을 뱉어 보았지만, 가시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이럴 때 남편이 할 수 있는 질문수준이 참으로 하등하다.


"괜찮아?"

목에 가시가 걸려 캑캑거리는데 괜찮겠는가? 이런 한심한 질문에 지혜로운 아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가시가 잘 안 빠지네. 어떡하지?"


"자연스럽게 빠지겠지, 뭐. 일단 조금 기다려보자."

아내는 알았다고 했다.


집에 도착해 간식을 먹으면서도 가시가 계속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 빠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했다. 그러면서도 일단 하루 정도는 지켜보자고 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커피와 빵, 그리고 계란 후라이 아침을 함께 먹고 나는 출근을 했고 큰 딸과 아내는 저녁에 연남동 나들이를 갈 거라고 했다. 연남동에 졸업한 제자가 하는 와인바로 서울 마실을 간다고 했다. 재미나게 놀아라는 말을 하고 나는 집을 나섰다.


퇴근 시간이 되어 시간을 보니 아내와 큰 딸이 연남동에 도착할 시간이 얼추 되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연남동 공기는 어때? 잘 도착했어?"

"아니, 나 오늘... 죽을 뻔했어."


아내는 웬만하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가슴이 철렁 떨어졌다.


"아니, 왜? 무슨 일이야?"


2년 전 아내 자전거 사고가 남긴 트라우마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를 진정시키며 아내는 말을 이어나갔다.


"목에 가시가 안 빠져서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었는데, 선생님이 내시경으로 목 안을 보더니 혼자서 조용히 '큰일 났다'이러는 거야"

"왜? 그래서?"

"생선가시가 너무 깊이 박혀 있다고 큰 병원, 대학병원 가서 빼야 할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

"나 참,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아주대병원이야?"

"가시가 너무 깊은 곳에 박혀 있어 자기네 병원에는 도구가 없고, 대학병원 가서 빼야 할 것 같은데, 아마도 전신마취하고 진행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아내의 말끝이 흐려져 다시 한번 더 심장을 철렁했다. 정말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그럼, 지금 아내는 어디에 있는 거지?' '병원인가?' '입원했나?' '왜 빨리 오라고 전화를 안 한 거지?'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미안한데, 결론부터 말해주면 안 돼?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어디야?"

불안한 마음은 커져갔고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내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시는 뺐어."


"아이고 다행이다."

일단 한숨은 돌렸다. 그런데 아내는 '가시는. 뺐어'라고 말했는데, 가시는 뺐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가시는 뺐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아니 잘 뺐어. 문제없어."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내는 동네 이비인후과 이후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무지막지한 진단을 받은 아내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하얘졌다고 했다.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하지만 아내는 가늘어져 가는 정신줄을 간신히 붙잡고 생각을 했다고 했다.


'지금 응급실로 바로 간다 해도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있으리라는 보장도, 바로 처치를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을 것이다. 그럼 응급실에서 밤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아내는 생각했다.


'2년 전 응급실에 갔을 때도 머리부터 아스팔트 바닥으로 곤두박질해서 얼굴은 엉망이 되고 어지러워 토하는 나에게 더 급한 환자 먼저 치료해야 할 수도 있으니 언제 순서가 될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어떡하지?' 아내의 추리력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럼 일단 동네 이비인후과에 전화해서 근처 병원 중 처치나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있는지 물어보자. 그리고 그다음은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 생각한 아내는 처음 갔던 동네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전화를 받았다.


아내의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을 들은 간호사 선생님은 아내의 의견에 500% 공감하며 잠시 생각을 한 뒤 근처 영통에 있는 더웰병원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내는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바로 더웰병원으로 전화를 했고 다행스럽게 담당전문의가 근무하는 날이라며 지금 오라고 했다.


아내와 큰딸은 연남동 대신 영통 더웰병원으로 달려갔다. 내시경으로 아내의 가시를 확인한 의사는 진료실에 있는 집게는 너무 짧다며 수술실에 있는 제일 긴 집게를 가져와 달라고 간호사분께 요청하며 아내의 목에 국소 마취제를 뿌렸으니 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나는 생각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며 마취제로 인해 목의 감각이 서서히 사라질 때쯤 간호사 선생님의 손에는 아주 긴 집게가 들려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팔뚝만큼 길었다고 아내는 말했다.


기겁을 해야 정상이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이라, 팔뚝만큼 긴 집게 정도는 되어야 목구멍 깊이 박힌 가시를 뺄 수 있으리라 싶었다고 했다. 문제는 왼손에는 내시경, 오른손에는 팔뚝만큼 긴 집게를 양손에 든 비장한 모습의 의사 선생님의 요청이었다.


목구멍 깊숙이 박힌 가시를 빼려면 먼저 내시경과 집게를 식도에 넣고 빼야 하는데, 가시가 박힌 위치는 식도가 옆으로 확장해야 하는데, 식도가 옆으로 확장하려면 혀는 가능한 입 밖으로 길게 빠져나와야 하고 이~~ 하는 소리를 내어야 가능하다고 의사 선생님이 친절히 하지만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아내의 설명을 들은 나는 이 장면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아내의 심경은 오죽했겠는가? 그래야 빠진다니 그렇게 할 수밖에.


불쌍한 아내는 의사 선생님의 요청대로 혀를 잡아 있는 대로 잡아 빼고 가능한 길게 이~~~~ 소리를 내었고 형미 못지않게 불쌍한 의사 선생님은 낑낑거리며 내시경과 집게를 좁은 식도에서 이리저리 돌리면 가시를 잡으려 애를 썼다고 했다.


생사가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 생존과 치료를 위한 숭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누가 말했던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상상해 보라. 입에 내시경과 집게를 물고 혀를 잡아 빼며 이~~~ 소리를 내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하는 아내와 내시경과 집게를 양손에 들고 환자 치료를 위해 낑낑거리는 의사 선생님의 모습은 가히 코메디 그 자체였다. 아내는 이 광경을 묘사하며 낄낄거렸고 듣는 나도 눈에 눈물이 고일만큼 웃었다.


그렇게 몇 번의 이~~~ 와 낑낑의 시간이 교차하였는데 갑자기 낑낑거림이 멈추었고 집게에 잡힌 가시가 툭하고 빠졌다고 했다. 목에서 빼낸 가시는 5cm가 넘었는데 동네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 왜 '큰일 났다' 말했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고 했다. 우리의 웃음은 잠시 멈추었다.


"진짜 큰일 날 뻔했구먼. 가시 뺀다고 의사 선생님 고생이 많았구만"

"그러게, 진짜 큰 일 날 뻔했어. 젊은 의사라서 패기로 뺀 것 같아."

"그러게 참말로 고맙구만. 자기도 고생했어."

"진짜 다행이야."

"뽑은 생선 가시 가져오지 그랬어. 액자에 걸어두게."

"ㅎㅎ 그러게 정신이 없어서"


의사 선생님들, 간호사 선생님들 덕분에 가시를 빼었으니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또 감사한지 모른다. '생선을 먹지 않고 살기는 어려울 테니, 앞으로 생선 뼈는 내가 잘 발라줘야겠다.' 속으로 생각했다. 말은 하지 않았다.


지나면 '희극'인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