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일 시덥지 않은 이야기
오늘, 닭갈비를 만들자.
어젯밤 올림픽 펜싱 남자 단체전 준결승을 보다 말고 아내가 물었다.
“내일은 뭘 만들어 줄 거야?”
“…”
눈을 마주치거나 대답을 하면 뭐라도 만들어야 하기에 고개를 돌리지도,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머리는 무조건 반사적으로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생각했다. 엊그제 마트에서 장을 잔뜩 보고 온 터라, 재료가 없다는 핑계를 대기는 글렀다. 뼈 없는 닭다리살 생각이 났다.
“닭갈비나 할까?” 미룬 대답을 했다.
”좋지“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내일 먹거리가 해결되어 마음이 편해졌는지 아내는 금세 잠이 들었다. 펜싱 결승을 보고 싶었지만, 쏟아지는 졸음에 나도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 여전히 덥고 여전히 습했다. 작은 딸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깨워도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침으로 찐 호박, 찐 비트, 생당근 그리고 사과를 커피와 함께 먹었다. 덥고 습하기는 해도 선풍기를 틀면 그나마 참을 만하다. 어제 못 본 펜싱 결승 동영상을 보면서 커피를 마셨다. 제주에 있는 큰 딸에게 facetime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은 잘 잤냐? 아침은 먹었냐? 뭐 먹었냐? 어제는 뭐 했냐? 운전은 할 만했냐? 재미있었냐? 무섭지는 않냐? 운전은 조심해서 해야 한다. 오늘은 뭐 할 거냐? 고양이도 잘 지내고 있고 우리도 잘 지내고 있다. 좀 심심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덥다. 거기도 많이 덥냐?
그리고 침대 밑에서 자고 있던 고양이 다리를 잡아 꺼내와서 큰 딸에게 보여주었다. 잠이 들 깬 고양이를 보며 큰 딸은 귀여워했다. 늦게나마 일어난 작은 딸은 배가 고프다고 했다.
재료준비를 해야 하지만, 급하게 정리할 다른 일이 있어 잠시 처리를 하고 와서 보니 이미 아내는 재료를 다 준비해 두었다. 고마웠다. 하지만 너무 크게 썰린 양배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간장, 설탕, 맛술, 식초, 참치액젓, 카레가루 그리고 물을 넣고 섞어 닭갈비 양념을 만들고 포크 구멍을 낸 닭고기를 양념에 재웠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댕기로 웍에 기름을 넉넉히 둘렀다. 대파가 없어 쪽파를 볶았다. 파향은 언제나 옳다. 양배추를 넣고 숨을 죽이고 있는데 너무 크게 썰린 양배추가 걸리적거렸다. 양배추가 너무 크다고 와이프에게 투정을 부렸다. 와이프는 알았다며 양배추를 조금 작게 다시 썰었다.
양배추가 조금 투명해서 야채를 한쪽으로 몰고 양념에 재워 둔 닭고기를 넣었다. 칙~ 하고 고기 굽는 소리가 났다. 파향과 양념 볶는 향이 주방에 퍼졌다. 씻고 나온 작은 딸은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나와 주방 식탁에 앉아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책을 읽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화장을 하면서 책을 읽고 있었을 수도 있고 그것마저 아니면 책을 읽으면서 화장을 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작은 딸은 식탁에 앉아 밥을 기다렸다.
점심을 먹으며 내가 몇 마디를 했는데 작은 딸은 정말로 재미가 없다며 제발 좀 그만하라고 했다.
”아, 정말 재미없거든. 그만 좀 하지! “
”쪼금만 더하고 그만할 거거든! “
”정말 끈질기구만!“
”끈기 있다는 거지?! 땡큐! “
그렇게 점심을 먹고 딸은 학원으로 갔다. 이제는 나만의 시간이다.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뉴스를 보았다. 요즘 한참 재미난 뉴스는 빵을 좋아하는 방송통신위원장 청문회인데, 영국 스타일의 블랙 코미디라 생각하고 보면 너무나 재미있지만, 진지하게 보면 열받아 속이 부글부글 끓다 끝내 속 터져 죽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비스듬히 누워 정치블랙코미디를 보고 있는데 아내가 옆으로 와서 앉았다. 뭐라도 해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눈길을 주지 않았다. 눈을 마주쳤다가는 청소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옆에 한참을 앉아 있는 아내가 덥다며 시원한 커피라도 마시러 가자고 했다. 사실 난 이렇게 소파에 앉아 있다 낮잠이 드는 게 오늘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었지만, 아내의 단호한 요청에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다.
샤워를 하고 얼굴에 로션도 바르고 머리를 적당히 말리고 왁스까지 발랐다. 입고 나갈 옷을 골랐다. 어제 쿠팡으로 주문한 1+1+1 반바지 3개, 검은색, 어두운 회색, 그리고 밝은 회색 중 오늘 날씨에 어울리는 밝은 회색으로 골라 입었다. 티셔츠는 반바지와 비슷한 아이보리 회색 라운드넥으로 입었다. 너무 과하게 차려입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별다방에 가는데 이 정도는 입어줘야겠지?
별다방에서 나는 엑소프레소 프라푸치노 그랑데, 아내는 뜨아와 과자를 주문했다. 선물 받은 쿠폰과 kt 멤버십 포인트 그리고 현금 1,300원을 결제하고 2층 자리를 잡았다. 아내는 아내의 일을 하고 나는 책을 조금 읽었다. 실내는 참으로 시원했다. 시원한 건 좋은데 단점은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난 비스듬히 누워있는 게 좋은데… 계속 앉아 있으니 약간은 쌀쌀함도 느껴졌다. 아내는 챙겨 온 겉옷을 입었다. 당분간 여기에 더 있을 것이라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나는 겉옷을 가져오지 않았다.
책을 조금 더 읽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저녁으로 뭘 먹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남은 닭갈비에 파스타면을 넣어도 좋지 않을까? 치즈도 조금 뿌리고? 스스로 뿌듯했다. 올림픽 경기를 보며 닭갈비파스타에 맥주를 곁들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닭갈비를 만들었다. 하루가 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