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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대신 화분

27번째 결혼기념일

by 김현부

아내는 꽃대신 화분을 사달고 했다.


월요일 학교 출근길, 고속도로 ic 바로 옆에 있는 꽃집 앞에 놓여있는 꽃들을 보며 아내에게 물었다.


"이번엔 어떤 꽃으로 준비할까?"

"응? 무슨 꽃?"

"결혼기념일 꽃 말이야."

"꽃 안 사면 안 돼?"

"그래도 꽃은 있어야지."

특별한 것 해주지 못해 꽃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말했다.


잠시 생각하던 아내는 말했다.

"그럼 화분으로 해줘."

"화분? 꽃이 더 좋지 않을까?"

"꽃대신 화분으로 해줘. 아까 봤던 국화 같은 거 말이야."

나는 좋다고 대답했다. 수요일 수업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화요일이 지나, 수요일 아침 출근하며 꽃집 앞에 놓인, 천정에 걸 수 있는 노란 국화화분들이 보였다.

'노란 국화도 이쁘네.' 속으로 생각했다.


수요일은 수업이 일찍 끝난다.

가방을 챙겨 집으로 출발했다.


별생각 없이 집으로 가다 꽃집을 지나갔다.

하마터면 고속도로를 탈 뻔했다.

급히 차를 돌려 꽃집에 갔다.


국화화분을 사려고 보니 마침 할인을 하고 있다.

20,000원 가격표에 선을 긋고 10,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결혼기념일 꽃치고는 너무 저렴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 밖에 있는 국화꽃 얼마나 가나요?"

"지금 너무 펴서 며칠 못 갈 거예요."

"집 안에서 키울 건데, 그래도 며칠 못 가나요?"

"집 안에서는 못 키워요. 그리고 너무 활짝 펴서 3일 정도 지나면 다 질 거예요."

"다 지면 죽는 건가요?"

"죽지는 않는데, 관리하기가 힘들 거예요. 다른 거 보세요. 집에서 키우려고요?"

"예, 집에서 키우려고요. 어떤 게 좋을까요?"


사장님은 그렇게 말하며, 이 꽃, 저 꽃을 보여 주셨다.

난 식물을 잘 모르지만, 집에 있는 꽃나무도 제법 보였다.

장미처럼 생긴 꽃나무가 보였다.


"사장님, 이거 장미예요?"

"하하, 장미 아니구요. 베고니아예요."

"이쁘네요."

"이쁘죠."

"관리하기 어렵나요?"

"어렵지 않아요."

"물은 언제 주면 돼요?"

"2주에 한번 정도 줘야 하는데, 얘는 댁에 가셔서 물 주면 되겠네요."

화분의 흙을 만지며 사장님이 말했다.


"얘는 분갈이해야 하나요? 집에 남는 화분이 있기는 한데..."

"그럼 분갈이하시고 물 주면 되겠네요."


사장님은 내가 사려고 마음을 먹은 지 어떻게 아시고 시든 잎을 떼어내고 계셨다.

이러면 사는 수밖에 없다.


"얼마예요?"

"팔천 원요."


결혼기념일 꽃, 팔천 원.

이건 날로 먹는 건데...


"선물할 건가요? 선물하려면 포장을 하구요."

"선물 이기는 한데, 집에 가서 분갈이하려구요."

"아, 그랬지!"

사장님은 꽃을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주셨다.


집에 도착해 라면을 끓여 먹고, 분갈이를 했다.

사각형 하얀 화분에 흙을 채우고 조심히 화분에서 꽃나무를 들어 새 화분에 옮겼다.

모양을 잡고 물을 주었다.

물이 흘러내리지 않아서 조금 더 주었다.

물이 흘러내렸다. 충분히 물을 준 듯하다.


화분을 깨끗하게 씻었다.

화분받침이 마땅찮아 이것도 대보고 저것도 대보았다.

찬장에 있던 하얀 접시 위에 화분을 올려놓았다.

그나마 이게 제일 괜찮은 듯했다.


왜 이 접시를 썼냐고 타박을 받을터이지만, 그래도 구색은 갖추는 편이 좋다.


식탁에 꽃나무를 올려놓았다.

제법 이쁘다.


화분을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보기 좋자고 잘려진 꽃을 사는 게, 그리고 그동안 사 왔던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랬나?

아내는 꽃대신 화분을 사달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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