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츤데레

오늘 새로 배운 단어

by 김현부

오늘 뒝빠랑지에게 새로 배운 단어는 츤데레이다. 뒝빠랑지는 작은 딸의 애칭인데 나만 애칭이라 생각하고 작은 딸은 별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명보다는 애칭이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면에서 더 나을 것이라 작은 딸과 연관된 이야기를 할 때는 애칭 뒝빠랑지를 사용하기로 혼자 결정했다. 뒝빠랑지는 모른다.


오늘 아침 내가 가지고 있는 볼펜 중에 상당히 괜찮은 놈이지만 내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볼펜을 골라 아내에게 건네며 말했다.


"볼펜 필요해? 주운 건데 필요하면 써!"

"나 볼펜 필요 없는데, 나 볼펜 많은데"

"그래? 좋은 건데, 안 필요해?"


옆에서 듣고 있던 뒝빠랑지가 한마디 했다.


"츤데레야?"

"응? @@?"

"츤데레냐고?"

"응? 츤 뭐?"


뒝빠랑지가 한 말은 분명 한국말 같은데 한국말이라고 하기엔 태어나 생전 처음 듣는 말 같이 들렸다. '40 몇 년을 한국사람으로 살면 웬만한 한국말은 다 아는데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이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난 계속 그게 무슨 말인지, 왜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했다.


"뭐?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 뭐라고 그런 거야?"

"일부러 그러는 거지? 츤데레 몰라? 츤데레?"


뒝빠랑지는 답답해 미칠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지만 진짜 당황스러운 것은 나였다. '한국말 중에 '츤'으로 시작하는 말이 있었나?' '뒝빠랑지가 말을 빨리해서 그런가?' 당황스럽게도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뇌는 순간 연산을 멈추고 정지했다. 난 뒝빠랑지에게 공손히 물었다.


"미안한데, 뭐라고 말했는지, 다시 한번 천천히 말해줄래?"

"진짜 몰라?"

"응"

"츤! 데! 레!"

"응? 츤데레? 그런 말이 있어? 츤데레?"

"진짜 몰라?"

"응, 진짜 몰라"

"헐"

"츤 맞아? 츤?"

"헐"

"츤으로 시작하는 말이 있어? 헐"

"헐"


아직도 내가 모르는 한국말이 있다니 신기했다. 네이버를 찾아보았다. '츤데레: 쌀쌀맞고 인정없이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이르는 말로 일본어의 새침하고 퉁명스러운 모습을 나타내는 츤츤(つんつん)과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데레데레(でれでれ)가 합성된 단어'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 일본어였구만! 하하' 다행이었다. 뭐가 다행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츤데레라는 미지의 단어에서 오는 신선한 충격은 이전 텔레비전 광고에서 '따봉'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과 흡사했다.


이 신선한 충격은 잠시 뒤 가라앉았고 난 츤데레의 뜻을 생각해 보았다. '츤데레'라는 단어는 나의 뇌를 정지시킬 만큼 생소한 단어였지만 그 뜻은 너무나 익숙했다. 까칠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 멋쩍어 남사스러워 잘 표현하지 못하지만 정이 많은 사람,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물론 뒝빠랑지는 이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아는 대한민국 남자의 몇은 행동도 까칠하고 마음도 그에 못지않게 까칠하거나 행동도 차갑고 마음은 행동보다 더 차가워 '이 인간에게 마음이란 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못된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츤데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못해 아내와 아이들에게 무뚝뚝한 사람이라 무시를 당해도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묵묵히 일하며 가족에게 항상 좋을 것을 챙기는 한국 남자, 실컷 남 욕을 하다가도 그 사람이 병에 걸렸다거나 실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구, 걔 이제 어떡하냐? 괜찮아야 할 텐데..." 걱정하는 한국 남자,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츤데레였다.


친구에게서 '힘내라, 다 괜찮을 거다' 문자가 온다면 그놈은 분명 내 욕을 하고 있던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츤데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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