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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야 Feb 10. 2021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퇴사 후 인생 2막 아빠 에세이]


“어디까지 가세요? 가는 길에 내려 드릴게요.”
장사 끝나고 집으로 가는 새벽녘이면 버스 정거장도 없는 어두운 국도변 한 길가에 희미한 그림자가 서 있곤 했다. 대리 기사였다. 대리 기사를 태워주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술 처마신 날, 대리해주시던 기사님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온도를 보니 2.8도였다. 아직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가다가 차를 세워, 대리 기사를 대리했다. “많이 추우시죠?” 한참을 떨었는지 차에 타서도 연신 손바닥을 비볐다. “아, 괜찮습니다. 춥긴 하지만 한 겨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조금만 가다가 고가 앞에 내려주시면 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하며 2천 원을 건넸다. 셔틀버스값이었다. 물론 받지 않았다.

요즘 밤거리에 나가보면 휴대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서성이는 중년 남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리 기사님들이다. 이미 일상이 된 풍경이다. 콜이 뜰 때 바로 잡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린다. 아다리(택시 운전할 때 알게 된 운수업계 은어다)가 맞는 방향을 잽싸게 잡아야 그날 돈 좀 가져간다. 아니면 그날 벌어야 할 돈을 못 번다. 그러니 한시도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한때 그들도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다. 사장님 소리 듣던 분들이었다. 힘들게 공부해서 어렵게 취직에 성공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때론 힘들지만 계속 회사 다니며 집도 장만하고 아이들 교육도 시킬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나가라고 했다.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있는데. 버텨볼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목돈으로 퇴직금을 준다고 할 때 퇴사했다.  열심히 달렸는데. 상사 비위 맞춰가며, 후배 다독거려 가며, 때론 아내 눈치 보며, 주말 근무도 불사하며 열심히 일했었다. 허망했지만 다시 털고 일어서야 했다. 가족이 있는데,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뭐라도 해서 먹고살아야 했다.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퇴사해도 먹고살 길은 막막했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재취업하기도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 사업을 하거나 장사에 뛰어들었다. 먹고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퇴직금으로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차렸다.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길이었다.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다들 비슷한 마음으로 시작하니 치킨집이 넘쳐났다. 한 집 걸러 한 집이 치킨집이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인건비 아끼려고 배달도 직접 했다. 회사 다닐 땐 시켜 먹기만 했었는데, 경비 아저씨 눈치 보며 배달 다니는 내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한때 나도 잘 나갔었는데.  한 푼이라도 더 벌려면 주말에도 일해야 했다.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렸지만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해 미안했다. 남들처럼 주말에 아빠, 엄마하고 놀러 가고 싶을 텐데.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도 달려야 했다. 안 그러면 가족 굶기니까. 치킨을 배달하며 열심히 달려야 했다.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결국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한강 다리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아내 볼 면목이 없었지만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부모님도 생각났다. 결국,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대리운전이라도 해야 했다. 대부분의 대리 기사님 스토리이다. 스토리의 세부적인 차이는 있어도 큰 줄기는 같다. 대리운전을 자주 이용하다 보니, 수많은 기사님과 대화를 나누다 알게 된 사실이었다. 가끔 여자 기사님도 있었지만 거의 모두 아빠였다. 한 가정을 책임지는 아빠.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아빠가 직장에서 달리고, 가게에서 달리고, 차 안에서 달리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받으세요.”
한사코 말렸는데도 계속 셔틀비를 주려고 했다. 나도 결사적으로 받지 않았다.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이거 받으면 불법이라고. 그제야 주는 걸 포기했다. 그러면서 연실 또 감사하다고 했다. 사실, 오늘 손님이 너무 없어 허탕치고 일찍 들어가는 길이라 했다. 요즘 경기가 안 좋으니 대리 기사도 손님이 없다고 했다. 길가에 세워 드렸다. 또 길가였다. 한참을 더 걸어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집 근처까지 태워드린다 해도 연거푸 손을 내저었다. 여기까지 태워주신 것도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덕분에 오늘은 편히 갈 수 있게 되었다고. 내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리고 아련해졌다. 다음에 또 대리 기사님을 대리해 드려야지 다짐했다. 남 같지 않아서였다. 대부분 한 가정의 아빠였다. 이 기사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길을 걸어왔으리라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대리 기사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가족 모두 잠든 이 춥고 어두운 새벽길,
아빠 홀로 걷고 있다는 것을.

말 안 해도 안다. 그동안 혼자 힘들었을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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