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인생 2막 아빠 에세이]
알칸사 국제 공항 활주로에 비행기 한 대가 미끄러져 내렸다. 꼬리 부분에 성조기가 그려져 있었다.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 포스 원이었다. 경호원에 둘러싸인 채 클린턴 대통령이 내렸다. 환영하는 인파에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기회를 노렸다. 키 큰 미국인들 뒷줄에 있던 나는 뭔가를 밟고 불쑥 튀어 올라 펭귄같이 짧은 팔을 안간힘을 다해 쭉 내밀었다. 순간 긴장한 경호원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쏠렸다. 총 맞을 뻔했다. 클린턴도 급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를 쓰고 악수 한 번 하려는 헤프닝인 줄 알고 나서야 따뜻한 미소로 기꺼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 순간 클린턴과 눈이 마주쳤다. 난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생전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 ‘난 너에게 굉장히 관심이 많다’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눈빛만으로 그런 생각이 들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여자들이 다 넘어갔나 보다. 모니카 르윈스키도…. 나는 남잔데 왜 그랬을까. 남자인데도 아직 그 그윽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 정도로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다.
나중에 클린턴 자서전을 보고 나서야 그 눈빛의 비밀을 짐작할 수 있었다. 노력의 결과였다. 타고난 것도 있지만. ‘마이 라이프(My Life)’라는 클린턴의 자서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신이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의 핵심은 단기, 중기, 장기 인생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그 중요도에 따라 A, B, C 그룹으로 나누어 각 목표 아래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정한 가장 중요한 A 리스트에는 ‘성공적인 정치 인생’이라는 목표가 있었는데, 이 목표를 위해 그는 자기 전에 반드시 그날 만난 사람들의 이름과 기억해야 할 사실들을 꼭 정리했다고 한다. 성공적인 정치 인생을 위해선 대인관계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바로 인생의 목표가 확실했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든 허투루 만나지 않았고, 그런 태도가 습관이 되어 스치듯 잠깐 만난 나에게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눈빛을 던지지 않았나, 그런 식으로 여자든 남자든 끌어당기지 않았나, 그래서 대통령까지 되지 않았나 싶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생 목표 설정’의 중요성만큼은 간과해선 안 된다.
내 마음속 내비게이션을 켜자. 그리고 멈춰서 스스로 질문하여 찾은 하고 싶은 일, 인생 목표를 목적지로 입력하자. 일단, 입력해 보자. 얼마 못 가 바로 이런 멘트가 나올 지도 모른다.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목적지를 입력하고 다른 길로 가면 경로 이탈을 알려주는 안내 멘트가 나온다. 그러면 다시 경로를 수정하여 목적지로 가면 된다. 그런데 만약 목적지를 입력하지 않는다면? 그렇다.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러면 그냥 정처 없이 떠도는 거다. 기름이 다 떨어질 때까지. 기름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멈춘다. 그래서 목적지를 입력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목적지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바뀔 때 바뀌더라도 목적지는 늘 입력해 둬야 한다. 당장은 먹고사는 게 급해 하기 싫은 일을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 인생 목표가 있으면 기회가 왔을 때 경로를 수정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해내는 힘은 동기부여다. 동기부여는 바로 목표에서 나온다. 장사 시작 전 10년 후 책을 쓰겠다는 목표가 없었더라면 책을 쓸 수 없었다. 10년 전 일을 어떻게 다 기억할 수 있었겠나? 책을 쓰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장사하다가도 술 마시다가도 책 쓸 거리가 떠오르면 메모해 두었다. 처음엔 약속한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책 쓰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 싶어 100일 금주 명상을 했고, 덕분에 의욕이 생겨 책을 쓸 수 있었다. 이 또한 결과적으로는 책을 쓰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을 쓰고 난 후에도 끝난 건 아니었다. 수많은 출판사에 투고했지만 계속 거절당했다. 한때 낙심했으나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든 한 권의 책을 보고 ‘여기다’ 싶어 그 출판사에 투고했고, 마침내 출간되었다. 책 출간이라는 목표가 없었다면 그냥 보고 다시 꽂아 두고 말았을 것이다. 책이 출간되고 난 후에는 강연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4주 간헐적 단식으로 10kg을 뺄 수 있었다. 10여 년 동안 실패만 했던 다이어트였다. 역시 목표가 있으니 동기부여가 생기고, 동기부여가 생기니 해낼 수 있었다. 의지가 약해 매번 실패만 했던 나도.
한 번 가는 인생길, 정처 없이 떠돌기만 할 것인가? 인생의 목적지를 입력하라. 내 마음속 내비게이션이 그 길을 안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