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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야 Apr 02. 2021

아빠, 가족과 잘 지내려면

[퇴사 후 인생 2막 아빠 에세이]

어느 토요일 점심 무렵, 글이 술술  풀려 오전 내내 기분 좋게 글을 쓰고 집으로 왔다. 엉뚱하게 식탁 위에  대신 요가책이 놓여 있었다. 순간 식겁했다. ‘어떻게 찾았지?’ 요가 시작  요가에 관해서 공부하려고 샀던 책이었다. 아내가 알면 당연히  사게  테니 몰래 사서 보고  보이게  사이에 꽂아 두었었다. (사실 필요한 것만 보고   봤다.) 드디어  것이 왔다. 역시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내가  쓰는데 필요한  사는  뭐라고   있어? (  있다. 그것도 기억  하냐, 쓸데없는   기억하면서.) 요가책을  샀어? 그거  시간에 요가하는   나은  아니야? (? 그건 그렇네.  말이 없었다.) 말해 .  말이 없어?” 그리곤 냉장고에서 내가  먹고 귀찮아 그냥 넣어둔  김치통을 꺼내 흔들며 말했다.   좋은 일은 한꺼번에 닥치는 걸까. “ 먹었으면 설거지통에 넣어야지  다시 냉장고에 넣어. 그렇게 뚜껑 닫아 놓으면 내가 김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잖아!” “그러게….”  딴엔 어차피 김치 다시 담을 건데 어떠냐 싶어 그랬다. 귀찮기도 했지만. 남은 국물 버리기도 아깝고. 아내 생각은 남편과 많이 다른가 보다. 기분 좋게 왔다가 아내의 잔소리에 기분을 망쳤다. 맞는 말을 기분 나쁘게 하니,  말은 없는데 기분은 나빴다. 들이받을까 하다가 참았다. 뭐로 봐도 승산이 없었다. 며칠 전에도 잔소리에 큰 맘먹고 대들었다가 상처만 남았었다. “그러려면 마음공부는 뭐하러 다녀?”라는 공격에 이제 마음공부도 마음대로  다닐  같아 바로 꼬리를 내렸었다. 이번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젠장….

안 대들고 잘 참았단 생각이 들었다. 책장에 보니 사다만 놓고 안 본 온라인 마케팅 책이 족히 열 권은 되었다. 그중 서너 권 정도만 보았다. 나머진 나중에 보려고…. 그러니 맨날 깨지는 거다. 남편은 자기가 한 짓도 금방 잊어버리고, 아내는 자기가 하지 않은 짓도 10년 전거까지 다 기억하니 게임이 되겠는가? 다 근거가 있었다. 아내들은. 비슷한 상황이 되면 태곳적 기억도 끄집어내 잔소리를 퍼붓는 거다. 자기가 한 짓을 까맣게 잊은 남편은 ‘왜 또 갑자기! 내가 뭘 잘못했는데?’ 하며 발끈하고. 반복된다. 부부 싸움의 이유는 이렇게 기억의 차이에 기반한다. 남편은 그렇게 말해줘도 다 까먹고, 아내는 쓸데없는 거까지 다 기억하니 차이가 생길 수밖에. 승산 없는 싸움에서 남편이 살아남는 길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다. ‘내가 뭘 또 잘못했구나. 지금은 도대체 모르겠지만 10년 전쯤 분명 잘못한 게 있을 거야. 암, 그렇고말고. 아내들은 남편들이 잘못한 건 절대 안 잊어버리니 틀림없어. 난 어차피 기억 못 하니 이번에도 아내가 맞겠지. 박박 긁는 소리만 좀 참으면 돼’하고 수행한다 생각하자. 나의 경우, 순간 화를 들여다보고 마음이 가라앉자 이걸 글감으로 쓰면 참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글감을 제공해 주는 아내가 고마운 존재로 변했다. 안 그래도 쓸 콘텐츠가 없었는데, 끊임없이 콘텐츠를 제공해 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사실, 안 대든 건 다른 이유도 있었다. 얼마 전 주말 둘이서 술 한잔하며 대화를 나눌 때였다. 아내가 요리 얘기를 하며 굉장히 신나 하는 게 아닌가. 고양이 얘기할 때도 엄청 신난 표정이었다. 내 얘기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 예전에도 요리 얘기, 고양이 얘기를 했었는데 이렇게 신나 하는 줄 몰랐었다. 그날,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때 문득, ‘아, 나는 내 얘기만 하고 있었구나’하는 깨달음이 왔다. 지금까지 줄곧 나는 내 얘기만 해왔다. 장사 이야기, 책 쓰는 이야기. 가족 먹여 살리는 일이라는 핑계로 주야장천 내 얘기만 해왔다. 아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요리 얘기를 하면 저렇게 신나 하는데, 고양이 얘기를 하면 저렇게 좋아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쭈욱….

그러니 아이들과의 대화도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하라고 했다. 공부  해도 된다고. 한참 뛰어놀아야  나이에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한다는   쓰러워서. 그러면서 내심 ‘ 좋은 아빠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큰아이가 자기는 하고 싶은 일이 공부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원 보내 달라고 했다. 역시, 자식은 마음대로  되었다. 사교육  시키려고 여행 대안학교 보내려던 것도, 수능  봐도 먹고살  있다고 하고 싶은  하라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공부  해도 된다고 주말마다 여행 데리고 다니니 애가 불안했나 보다. 알아서 공부하더니 성적이  나오고, 성적이  나오니 학원 보내 달라고 하고, 수능  거니 일반 학교  거라고 했다. 공부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어쩔 건가. 내가 뱉은 말인데. 하고 싶은  하라고! 지금 공부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공부를 해야 한다. 누가 아는가, 아빠  닮아서 공부로 성공할지.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원하던 공부를 해봤으니 공부에 미련 없이 하고 싶은  찾아 나설  있게 된다. 나는 아이를 위한다고 했지만 정작 아이가 원하는  다른 거였다. 그러던 어느 , 어떡하다 축구 얘기가 나왔는데, 애들 눈이 반짝반짝하는  아닌가.  아빠한테 먼저 말도 걸고. 아하, 역시 아이들에게도  얘기만 하고 있었구나. 아무리 좋은 얘기도 아이들이 듣고 싶고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라면 소용없다는  느꼈다.


아빠가 개한테 밀리는 이유를   같았다. 소통할  모르는 거다. 아빠도 아빠에게 소통을 배운 적이 없으니 어떻게   모른다. 맨날, ‘남잔 울면  !’ 이런 소리만 들었으니. 자신은 대화라고 생각하는데 자식에겐 훈계가 되는 거다. 그러니 아이가 아빠하고 대화하고 싶겠는가.  취해서 애들 붙잡고 훈계하지 말고, 그냥 아빠도 힘들 때가 있다, 외로울 때가 있다, 그래서 가족과 대화하고 싶다고 솔직히 말해보는  어떨까. 그럼, 최소한  먹고  잔소리한다는 말은  들을 거다.  취해서 아내한테 시비 걸고 소리 지르지 말고, 그냥 오늘 힘들어서 그런다고 속마음을 터놓는 거다. 나도 가족과 대화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그럼, 최소한 맨날 술이야란 말은  들을지 모른다. 가족에게 훈계하고 소리 지르고 미안한 마음에 ‘옜다, 먹어라하고 치킨만 사다 주지 말고, 말하는 거다. 아빠가 미안하다고. 힘들어서 그랬다고.  쑥스러우면 문자로 보내면 된다. 예전 아빠들은 그럴 수도 없었다. 지금은 표현하기에 좋은 시절 아닌가. 카카오톡도 있고. 아내와 자식이 남편을, 아빠를 불편해하는  사랑을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표현해야 사랑이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남편, 아빠, 가장으로 희생한다고 생각할 때 가족과 멀어진다. 밖에서 가족을 위해 이렇게 고생하는데, 개만도 못한 대접받는다고 섭섭하게 생각하고, 대접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남편을 벗은 나, 아빠를 벗은 나, 가장을 벗은 나. 벗고 벗으면 무엇이 남는가. 벌거벗은 나, 진정한 나만 남는다. 오직, 나뿐이다. 아빠가 나로 살 때 아빠가 행복하다. ‘가족이 나의 행복이야’ 하면 가족도 부담스럽다. (사실이지만 속으로만 생각하자.) 아빠가 행복하면 가정이 평화롭다. 가정이 평화로우면 가족이 행복하다. 우리에겐 벌거벗은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아빠가 변화하고, 소통하고, 표현하면 가족과 잘 지낼 수 있다. 개보다 사랑받을 수 있다.

이럴 때 꼭 ‘그럼 당신은?’하고 묻는 사람이 있다. 내가 완벽하면 아직도 허구한 날 깨지겠는가? 나도 노력 중이다. 아내 지적 사항 리스트를 만들어 스마트 폰 메모장에 기록한다. 오늘은 두 가지를 지적받았다. 하나는 쓸데없는 책 사지 말기. 또 하나는 다 먹은 김치통 냉장고에 다시 넣지 말기. 날짜와 지적 사항 그리고 개선 여부 란을 만들어 개선되었는지 체크한다. 한 번이라도 덜 깨지려고. 아이들 좋아하는 축구팀 정보 리스트도 만들었다. 외국팀이라 이름 외우기도 힘들다. 자꾸 까먹는다. 아이들과 대화 바로 직전 꺼내 보고 기억해서 대화한다. 아이들은 모른다. 그런데, 좋아한다.

아빠, 가족과 잘 지내려면 자신을 마주하여 변화하고, 아내와 자식들 언어로 소통하고, 아빠의 사랑을 표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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