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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야 Apr 06. 2021

한 번쯤 나를 위해

[퇴사 후 인생 2막 아빠 에세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다. 보기 전에 관람평을 살피려고 스마트폰을 열었다. 순간, 여느 날과 달리 관람평이 아니라 관람평 연령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50대까지 밖에 없었다. 50 이후는 그냥 50+ 표시되어 있었다. 궁금해서  온라인 서점 리뷰 연령대란을 살펴 보았다. 여기는 그냥 50+ 아니고 50까지 밖에 없었다. 다른 서점도 살펴보았는데 60대까지가 최고였다. 100 시대라면서. 충격이었다. 보통 인생 계획(Life Plan) 세울  10 단위로 60대까지 세우는데 이제 50, 60대밖에  남은 것이다. 건강하게 뭔가 계획할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여태 의식하지 못했는데, 영화 관람평 연령대가 새삼스럽게 상기시켜주었다. 40 때까지만 해도 반은 남아있었는데. 40, 50, 60. 허망했다. 이제 40  계획은 세우고 싶어도 세울  없었다. 이러다 50 마저 그냥 흘러가는  아닐까.

내 나이 벌써 50, 이제 살아 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고대 인도 브라만교는 인생을 4단계인 4주기로 나누었다. 1단계인 학습기(學習期)에는 스승 밑에서 베다 성전을 학습하는 단계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학교 다니며 배우는 시기이다. 2단계는 가주기(家住期)로 집에서 자녀를 낳고 가정 내의 제식을 주재하는 시기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돈을 벌고, 가정을 이루고 가족을 부양하는 단계이다. 3단계인 임서기(林棲期)는 숲에 은둔해서 수행하는 시기이다. 자식들 다 키우고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나이이다. 4단계는 유랑기(流浪期)이다. 수행이 끝나고 일정한 거주지 없이 걸식하며 돌아다니는 시기이다. 가정과 사회에 대한 책무를 마치고,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단계이다.

40대든 50대든 퇴사나 은퇴 후에는 제2의 인생이 시작된다. 임서기(林棲期)처럼 숲에 은둔해서 수행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는 있다. 이 시기에 스스로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사는가?’‘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내면으로 침잠하여 걷어 올린 답이 삶의 목적이 된다. 삶의 목적에 따라 인생 계획을 세우고 나아가지만 실은 목적이 목적은 아니다. 지금까지 줄곧 목적이 중요하니 목적을 가지라고 해 놓고 이제와서 딴 소리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목적의 역할은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을 원하는 곳까지 끌고 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삶이란 목적이 아니라 그 목적을 향해 가는 하루 하루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루 하루 충실히 살았다면 풍요로운 삶을 산 것이다. 설사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절망할 필요없다. 하루 하루 잘 살았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목적이 없다면 ‘뭐할까?’하다가 순식간에 지나가는 게 인생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쓰고 있는데, 백발의 할아버지 한 분이 옆에 앉으셨다. 뭐 하시나 힐끗 봤더니 의외로 영어 공부를 하고 계셨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배우셔서 언제 써 먹으려고 그러시나?’그러나, 지금은 안다. 꼭 써 먹으려고 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을. 지금 삶에 충실하고 계신 거다. 어영부영하다 후회할 일을 남기지 않고, 남은 생에 못다 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계신 거다. 혹 손주 숙제 대신해 주는 거라면 내가 잘못 짚었지만.

이 세상을 다 준다면 당신과 바꿀 것인가? 그러니 당신은 이 세상보다 소중한 사람이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인생을 살자.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하고 싶지도 않은 일만 하며 마칠 순 없지 않은가? 깨질 때 깨지더라도 한 번쯤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 인생의 마지막 날 돌아볼 때 후회 없지 않겠는가? 목적이 목적은 아니니 못 이룬들 어떠한가? 후회를 남기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죽음을 기억하는 순간, 못 할 일이 없다. 무슨 일이든 상관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자. 한 번쯤 나를 위해.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라. 그것이 신이 네게 준 사명이다!’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빠,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 내가 좋으면, 그게 좋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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