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ienwitch Jan 05. 2018

낮은 자존감, 자신을 위한 감옥

자존감은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아서 끌어다 쓸 수 없다.

여자들을 깎아내리는 어떤 남자 이야기

본 이야기는 특정인에 관한 것일 뿐 불특정 다수에 관한 전반적 의견은 아님을 밝힙니다. 아울러 그로 인해 남자 여자를 벗어나 일반적인 사람으로 확장해 그런 심리를 파악하고자 쓴 글입니다.



"여자 형제?.. 아, 여자 형제 피곤해"

"어차피 뭐, 남자는 상관없는데 여자는 이혼하면 끝난 거고.."

"그런 게임하면 특히 여자들, 승부욕 불타서 독하게 이기려고 하잖아"

"(부적절한 행실에 대한 얘기를 듣고) 여자예요, 남자예요? (여자라고 말해주자) 하하, 아, 여자"


위의 말들은 모두 내가 아는 어떤 남자의 말을 모은 것이다.

참고로 여자 형제는 없다.

두 번째 말을 언급했을 땐 이혼한 여자 형제가 있는 지인과 함께 밥을 먹었을 때이다.(본인도 지인의 여자 형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세 번째 말은 게임에 관해 얘기했을 때인데 남자들 얘기를 했으면 아마 본인의 평가가 달라졌을 것이다.

네 번째는 좋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의 얘기를 들은 첫 반응이다. 항상 그런 식으로 분류하고 여자의 경우는 (안도하는 빛이 보이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신랄하게 비난한다.


옆에서 간접적으로 봤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이런 식의 언급을 했고 그 이유에 대한 의견은 전적으로 내 사견이다.


남들의 시선으로 짓는 감옥

이 사람은 유난히도 키에 관해 민감하다. 한 170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항상 예민하고 방어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

처음 봤을 땐 언급하는 정도가 심했다. 일상적인 이야기, 유명인들 이야기 친척 이야기 등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키 이야기를 꺼냈다.

"가만 보니까 걔도 키가 작더구먼."

"(평균 신장 얘기하다가)아,  됐어, 됐어. 난 평균이야, 우리 세대 평균. 요즘 애들이 큰 거야."


마음속에 항상 자신의 키를 의식해서 대화도 그걸 보완하거나 작은 키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 같았다.

여자들이 남자들의 외모나 돈을 좋아한다는 의견에 대한 믿음도 크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만 유독 그런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에 더 끌리는 게 눈에 띄었다. 자신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실재 불특정의 피해자들과 보이지 않는 연대를 형성할 정도로 억울해했다.

에둘러서 말하긴 했지만 여자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하며 선의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실 외모나 돈이 아니라 남을 깎는 태도에 거부반응을 보일 수 도 있는데 말이다. 어느 누가 자신이 속한 인종, 성별, 지역에 관한 편견 때문에  그 집단에 속한 일원으로써의 위상과 인간으로서 가치가 낮아지는 걸 바라겠는가.


난 연약해! 사실을 깨닫는 게 두려워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면 일단 편하다. 잘못은 내가 한 게 아니니 남을 비난할 수 있고 동조와 이해를 호소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면? 남들이 편협한 사고방식에 거부를 느끼고 방어적으로 피했을 뿐인데 이를 자신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공격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단 남들이 자신을 외모와 돈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면 남들이 속물이고 잘못된 시각으로 사람을 판단하니까 자신은 잘못 또는 결함이 없어진다. 이런 생각을 고수하는 사람(남자 여자 모두)들은 자기반성조차 할 수 없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많다. 왜냐? 외모나 경제력이 아닌 다른 요인, 자신 스스로의 결함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 두 가지 외에 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많다. 성격, 인격, 습관, 매너, 지식, 하물며 위생관념까지 자잘하게.

그런 요인은 외적이 아니라 내적인 요인, 즉 자기 자신의 일부이자  좀처럼 변하지 않는 본질적 요소이다. 돈이나 외모는 가변적이기 쉽고 남들이 속물이라고 비난이라도 하지 내적 요인은 본인의 100% 책임제인 것이다. 어른이라면 더욱더.


그런데 이런 자신의 본질적인 요소가 결함이 있지 않을까 하고 가정해 보자. 글쓴이 조차도 부담스러운 가정이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본인은 부족한 사람이 되고 부족하니까 떳떳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자, 남들은 잘못이 없고 나는 잘못이 있다.  불편하다. 받아들이기 힘들다. 왜냐 그만큼 연약하니까. 그런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가정하는 것도 자신에게는 위험하다. 그런 두려움이 낮은 자존감이다. 그런데 자신감 또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결함에 대해 용감하게 마주한다. 뭔가를 바꾸려고 시도한다.



낮은 자존감 그리고 참극


이런 위기감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려면 여러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1. 모순 -  창과 방패... 하지만 지는 것

위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히 살아가고 본인은 왠지 비교되는 것 같고 또 자존감이 낮아 위축되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위상, 사람으로서 든 남자로 써 든, 나이 든 사람으로서 든 본인의 위상을 지키려 할 때 흔히 유리한 가치관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공유할 사람을 찾고 시대착오적이더라도 본인의 상대적 위상을 올릴 수 있으면 이런 가치관을 고수하는 것이다.


결국, 20대 젊은 사람들과 똑같이 평가되고 싶고 젊은 층에서 자신의 입지는 굳히고 싶어서 본인이 젊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네, 그럼요!" 하고 그 반대되는 생각의 여지를 스스로 지우려고 방어적으로 대답하는 동시에, 요즘 '젊은 얘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특히 본인 세대였을 때 여자들이 누리지 못한 문화를 요즘에 누리는 것을 보고 경계하는 시선으로 비꼬는 것이다. 뭐가 됐든 간에 특정 나이, 특정 성별이 누리는 것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것을 '차등적 권력'의 상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흡연문제가 있다. 여성의 흡연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의학적, 생리적 문제로 반대할 것이다. 이것은 인정할 만한 이다. 문제는 위의 언급한 사람들에게는 젊은 세대, 또는 여자들이 누리는 권리의 속성이 여자들에게 특히 부적절한가 적절한가의 논란 같은 건 문제가 안된다. 문제는 내가 속한 집단이 누리던걸 다른 집단이 누리기 시작한 데서 오는 '상징적 위상의 상실'이다. 한편으로는 보수적인 사람들을 비판하고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같은 또래 또는 성별에 속한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진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위의 언급한 비꼬면서 하는  "어차피 뭐, 남자는 상관없는데 여자는 이혼하면 끝난 거고.."라는 말에서 상대적으로 좀 더 위상을 높이고 싶어 하는 게 너무 눈에 띄었다. 조금이라도 차등을 둬야 본인의 위상과 자존감이 안전하니까 말이다. 옆에 있었던 지인의 기분은 어땠을까. 이혼한 여자 형제가 생각나지 않았을까? 결국 한 특정 집단을 공격한다고 해서 그 집단만 피해 보는 것은 아니다. 성별이 뭐건 나이가 뭐건 주의 사람도 모멸감을 느낀다.


2. 시간은 잘못을 희석하지 않는다. 단지 쌓을 뿐.

놀랍게도 저런 몇몇 사람들은  말수가  적지 않다.

과묵하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기술이 없을 것 같지만 내가 본 사람은 첫인상은 쾌활하다고 할 정도로 밝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대화하면서 보이는 가치관이나 자존감이 위에 언급한 상태였다.


막상 밝아 보여도 내가 보기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상대에 관한 무례한 행동의 작고 큼을 떠나 유감의 표현을 하지 않는다. 불쾌감을 일으켰다고 본인도 알만한 상황에서 눈치 보며 일단 침묵으로 움츠러들어서 시간이 가길 기다린다.


사과하는 행위 자체가 상대에게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거고 잠시나마 발목이 잡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침묵으로 일관하면 잘못한 사실도 표면화하지 않으니까 무마되는 거고 본인은 불안을 느끼느니 자존심 상하지 않아도 되고.


남을 존중하지 않는 가해자들은 이런 생각이 유리하다. 그래야 편하니까. 하지만 피해자들은? 무마되는 것도 시간에 희석되는 것도 없다. 그저 녹지 않고 쌓일 뿐.


내가 본 그 남자는 '무안함의 주기'가 끝난다 싶으면  또다시 여자들을 경멸하기 시작했다. 더 참을 수 없는건 쾌활함으로 연막을 쓰면 말하는 내용의 끔찍한 정도가 무디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폄하하는데도 말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내가 그렇게 매번 오랜 시간 느끼고 겪었다. 나 혼자 겪은 시간도 있었고 옆에 또 다른 여자와 같이 겪었던 적도 있다.


3. 실패할 때의 실망감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인간관계에 적극적이지 않다.

이런 사람은 이성관계에서도 소극적으로 행동하거나 제한적으로 노력한다. 물론 이성관계에서 이성에게 거절당하면 물론 실망하게 된다. 자존심도 상하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라면 다른 이성을 찾거나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하지만 위의 언급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위축되다 못해 이성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기 시작한다. 가만 보면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데 남자의 경우 여성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동시에 원하는 감정이 상충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남의 기회가 생기면 일단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길 기다린다. 본인이 먼저 다가갔다가 거절당하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상대가 있으면 여자가 적극적으로 다가온다고 무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 추즉인데 관계를 이어나갈 자신도 아직 없고 서로 발전된 관계가 되었을 때 복잡한 감정싸움은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지 대면하는 용기는 부족한) 또 무엇보다 본인이 남의 호감을 받아주는 '갑'의 입장이 되었으니 권력을 가져서 좋긴 하고. 이런 경우도 고착화시킨다. 남이 나를 원하는 상태,   그 상태를 그냥 유지하고 싶은 거다.



사람들 각자에게 자존감은 정신과 영혼을 유지하는 샘과 같다. 하지만 남의 자존감은 오히려 짜디짠 바닷물이 된다.

자신의 자존감이 낮다고 남에게 상처를 내서 자존감을 계속 끌어다 쓰면 뭐하겠는가. 결국 내 그릇으로 옮겨 담는 순간 바닷물이 되고 아무리 마셔봤자 더 고통스러운 갈증만 생길 텐데.

작가의 이전글 자, 떠나자, 고래를 잡으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