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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 Mar 09. 2020

뉴요커의 조건

뉴요커가 되는 방법

*이 글은 개인의 경험과 주관을 바탕으로 한 풍자의 글입니다. 이 중에 사실이라고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 도시의 개성을 결정짓는 요소들 중에 시민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성향, 라이프 스타일, 유행에 따라 각각의 도시는 제마다 나름의 다른 색을 갖게 된다. 세계 최고의 도시라 일컫는 뉴욕도 그 예외는 아니다. 도시를 메우는 각종 건축물과 공원이 뉴욕을 대표한다 할 수 있지만 이 곳이 특별한 도시로 자리하는 데는 8백만 뉴욕 시민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뉴요커’가 아니다. 뉴요커가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시험이나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나 혹자는 뉴욕에서 십 년은 넘게 살아야 비로소 진정한 뉴요커가 될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 기준이라면 아직 5년밖에 살지 않는 본인은 앞으로 5년을 뉴욕에서 더 살아야 '진정한 뉴요커'가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아직 진정한 뉴요커가 아니기에 지난 5년간 뉴요커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관찰해 본 뉴요커가 되기 위한 조건은 대충 이렇다.


1. 걸음이 빨라야 한다.

뉴욕, 특히 맨해튼 안에서는 걸을 일이 많다. 일방통행이 보편적인 맨해튼 내에서 차를 타는 것이 걷는 것보다 엄청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도시 면적당 인구 밀도가 높다 보니 자연스레 길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여기에 도시 구경하느라 정신없는 관광객들까지 한몫하면맨해튼금세 인간들로 빼곡히 들어찬 콩나물시루가 된다. (우리나라 아침 8시부터 9 사이의 강남역이나 연말 기간 명동 한복판 정도를 상상하면 되겠다.)


콩나물시루 같은 보도블록을 걸을 때 하염없이 나이스 하게 예의를 지켜가며 앞서 걸어가는 상대방이 길을 비켜줄 때까지 기다린다면 당신은 뉴욕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출퇴근 시간 러시 아워 동안 우리는 회사로 혹은 집으로 바쁘게 향해야 하고 어쩌다가 퇴근 후 해피 아워라도 즐기려고 한다면 또 열심히 근처 술집으로 '걸어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이 목적지까지 약속 시간까지 도착하고 싶다면 맨해튼 내에서는 무조건 빨리 걷는 법을 습득해야 한다.

 

출처: New York Post

사정이 이렇다 보니 5 년 동안 빨리 걷는 스킬이 생겼고, 더불어 멀리 다가오는 사람의 동선을 파악하여 보도블록 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위치 선점을 할 수 있는 혜안까지 생겼다. 단점이라면 천천히 걷는 사람과의 동행에서는 오히려 발걸음을 맞추기가 너무 어려워졌다는 것. 이제는 어쩌면 천천히 걷는 연습이 필요하다.


2. 당당하게 무단 횡단한다.

꽤 오랜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아무리 외국에 오래 나가 있었다 하더라도 돌아오면 마치 어제 떠난 것 같이 대부분 친숙했다. 아무렴 나고 자란 나의 고향이거늘... 그런데 요번 한국에 들어갔을 때 눈에 띄는 특이한 사항이 있었다. 사람들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차가 오지 않는데? 무심결에 옆에 있던 친구에게 물었다. "그냥 건너면 안 돼?" 그러자 친구 왈 "교통법 바뀌어서 무단 횡단하다 치여도 보상 못 받아." 어리둥절한 표정인 나와는 반대로 친구는 심드렁한 표정을 한채 경찰의 벌금 딱지는 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출처: therheeldaze)

뉴요커와 관광객을 구분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건널목에서의 반응을 살피면 알 수 있다. 보행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관광객이고 좌우를 살피며 무작정 무단 횡단을 하는 사람은 99% 뉴요커라 할 수 있다. 뉴요커들이 무단 횡단을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흔히 말하는 '뉴욕 타임'에 맞추어 시간을 아끼고자 무단 횡단을 하는 이유도 있고, 워낙 성미가 급한 사람들이라 무단 횡단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 뭔가 남이 건너니까 나도 덩달아 건너게 되는 이른바 '소셜 프레셔'(Social Pressure: 사회적 압력) 도 작용한다. (실제로 남 따라 무단 횡단하다가 차에 치일 뻔 한 경험이 몇 번 있음.)

맨해튼 내의 건널목들은 길이 좁아 몇 걸음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기다리는 게 의미 없을 때가 있다. 맨해튼 곳곳에서 경찰을 볼 수 있지만 이들도 특히 무단횡단을 단속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경찰차가 오는 길에서 무단 횡단을 하기도... 그렇다고 뉴욕에 오면 꼭 무단횡단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는 마구 하는 것만큼 차들도 사람을 무시하고 마구 달리기도 하니까. 차도에서 주변을 항상 살피고 안전을 항상 우선으로 해야 한다.


3. 옷장의 70%는 검은색이다. 

뉴요커만큼 검은색을 즐겨 입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파리, 런던, 밀라노, 도쿄 등도 패션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뉴요커만큼 검은색을 즐겨 입지는 않는다.


뉴요커들이 유난히 검은색 옷을 즐겨 입는 것은 길거리를 조금만 둘러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본인만 해도 뉴욕으로 이사 온 후 사들인 검은색 아이템이 눈에 띄게 늘었으며 어쩌다 컬러풀한 옷을 입으라 치면 너무 부담스러운 것 같아 다시 검은색으로 갈아입는다. 장례식에 참석하는 사람 같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치장하고 나서야 ‘아 이제 뭔가 여기 사람 같다.’는 기분이 든다.

내가 생각했던 뉴요커들은 패션에 민감한, 개취가 확고한 사람들이었다. 사람들 저마다 패션 철학이 있고 유행에 구애받지 않은 채 과감하게 스타일링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더라. 꽤나 많은 뉴요커들은 유행에 민감하며 비슷한 착장의 뉴요커를 흔히 볼 수 있다.

앞서 가는 여성과 뒤에 걸어가는 커플의 착장이 모두 같다. (사진을 찍은 본인도 같은 착장이었음.)



4. 주변에 이상한 사람이 있어도 쳐다보지 않는다.

뉴요커들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오며 가며 불편할 수 있는 서로 간의 눈빛 교환은 자제하는 편이다. 지하철 안에서도 스마트 폰을 뚫어져라 본다던지 책을 읽는다는 던지 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것은 다 쳐다보기 마련인데도 정작 서로 얼굴을 마주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적은 면적 안에 많은 사람이 있으므로 생겨나는 개인 공간 침해에 대한 뉴요커들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이 좁아 개인의 공간을 침범하더라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므로서 상대를 인식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상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는 것이다.

뉴욕 지하철에 매일 등장하는 이상한 사람들. 관심 없는 뉴요커들. (출처: subwaycreatures)

이런 규칙도 규칙이지만 뉴욕에 오래 살다 보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뎌지게 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한 번은 지하철 플랫폼에서 아래 도릿을 훌렁 벗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던 홈리스 아저씨를 목격한 적이 있다. 그때 당시 너무 쇼킹해서 주변을 돌아보며 나같이 충격을 먹은 사람이 있나 하고 둘러보았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그 아저씨한테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만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린 채 아저씨를 쳐다볼 뿐. 세월은 흘러 어느덧 5년이 되었고 매일 같이 이상한 사람을 봐온 나도 이제는 더 이상 충격 먹을 만큼 나약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또 시작이네...'라고 생각할 뿐.


5. 자부심이 강해야 한다.


뉴욕에서 좀 살았다 하는 자칭/타칭 뉴요커들은 자부심이 엄청 강하다. 본인이 뉴욕에서 살고 있고 수만 관광객들과 차별되는 '뉴요커'라는 것에 대한 뼛속 깊은 자부심이 은연중에 자리한다. 예를 들어 말 끝마다 "오직 뉴욕에서만(Only in New York City)"를 붙인 다던지 미국 내 뉴욕 만한 도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고가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꽤 자주 "New York is the best city in the world."라고 말한다.


서울 출신으로 미국에서 뉴욕과 양대 산맥으로 견줄 수 있는 엘에이에서도 5년을 살았지만 시민들의 도시에 대한 자부심은 뉴요커들에 견줄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런던이나 파리 같은 유럽의 대도시에 살아 본 적이 없어 뉴요커들의 자부심이 런더너들이나 파리지앵들의 자부심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 주제에 관련해서는 유튜브에서 많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름 비슷한 것 같았다.)


뉴요커의 유별난 뉴욕 사랑에 대해 나는 사실 조금 복잡한 심정을 갖고 있다. 일단, 그들이 말하는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에 공감을 하는 가 하면 한편으로는 세계 최고의 도시라고 하기엔 정말 이해 한 가는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 세상에 완벽한 환경을 갖춘 도시는 없을 것이다. 어떠한 도시라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갖고 있기 마련이지만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뉴욕에 대한 찬양이 가끔은 지나친 수준이다 싶어 회의적일 때가 많다. 살인적인 물가도 그렇고 살기 빡빡한 인심도 그렇고... 하지만 화창하게 개인 날씨에 이스트 리버를 건너는 전철 안에서 바라보는 맨해튼의 마천루는 내가 왜 아직도 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만 같은 기회의 땅, 뉴욕... 도시 곳곳에 넘쳐나는 도전의 에너지가 뉴욕을 매력적인 도시로 만드는 건 분명하다.





이 글을 쓰면서 뉴요커에 관한 다양한 서치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 비슷한 내용의 글이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살짝 글을 쓰지 말까 소심해지기도 했지만...) 하지만 나름의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한다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인트로에도 올렸지만 웃자고 쓴 글이다. 외국인이 쓴 서울 사람들 특징이랑 비슷한 맥락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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