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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 Mar 25. 2020

유령 도시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린 뉴욕

2020년 3월 21일 토요일, 뉴욕주는 본격적인 격리(Quarantine)에 들어갔다. Social-Distancing 즉,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극 장려하였지만 시민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낌새를 인지하고 내린 결단이었다. 이른바 'Stay-at-home'이라 불리는 이 명령은 뉴욕주 전체의 주민들에게 집에 있을 것을 명령하는 것으로 정말 필요해서 외출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에서 있으라는 명령이다. 이로 인해 생존을 위한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판단되는 모든 비즈니스는 임시 휴업에 들어가고 직장, 학교는 재택, 온라인으로 대체하였다.

일시 중단 상태의 뉴욕주


지난 1월 한국을 방문했다. 그때 뉴스에서 이미 많이 접했던지라 중국에서 코로나가 대충 어떤 수준으로 전염되는지, 그로 인한 사회적 공포감이 어느 정도 조성되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2주의 방문을 마치고 돌아올 때 인천 공항에 99%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사태가 많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JFK에 도착했을 때, 마스크를 1도 착용하지 않은 입국 심사관이나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 따위는 없어 보이는 해맑은 미국인들을 보고 살짝 놀랐다. 그래서 나는 뉴욕이 괜찮을 줄 알았다.



2020년 2월

2월이 되고서도 일상은 순조로웠다. 2월 초 화제는 슈퍼보울(Superbowl)이었다. 마이애미에서의 슈퍼보울은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미국인들은 중국에서 발발한 바이러스 따위 보다 슈퍼보울 파이널에 한 번도 가지 못한 캔자스 시티의 쾌거에 열광하고 있었다. 그렇게 2020년은 2019년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2월 말 한국에서 신천지로 인해 대구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랴부랴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안부를 묻고 도대체 신천지가 뭐하는 집단인지 어떤 일로 이렇게 갑자기 핫이슈 검색어가 된 것인지 물었다. "감염자가 이단 신도인데 집단 집회에 가서 전파시켰데."라며 동생은 심드렁하게 설명해주었다. 대구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나서 한국이 난리통이었을 때도 미국은 옆집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였다. 물론 초기에 중국 직항 기를 제한한다던지 하는 대책은 정부에서 시행했지만 실질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시민들에게 심각성을 불러일으킬만한 분위기는 없었다. 그저 손 잘 씻고 아프면 집에서 쉬라 고만했다. 어디서 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 어디에 보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 정보는 중구 남방이었다.

꽤나 허접한 공고문, 딱히 쓸만한 정보는 없음


2020년 3월

그런데 갑자기 중국, 한국, 이란을 선두로 이탈리아까지 바이러스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미국이 긴장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3월 첫째 주 다우 존스를 비롯한 모든 주식들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러일으킨 공포심에 모든 기업들이 움츠러든 것이라고 했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이후 최악의 지수라며 뉴스는 연이어 보도했다.


바닥을 쳤구나라고 생각했을 때, 사실 그것은 바닥이 아니었다는 것을 3월 둘째 주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주가 폭락으로 조성되는 장기 불황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인간이 감히 컨트롤할 수 없는 바이러스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길거리에 마스크를 하나둘씩 쓰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영상 20도가 되는 날에도 장갑을 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공공장소에서 기침을 하면 모두 하나같이 죽일 듯이 기침한 사람을 쏘아보았고 마스크를 끼고 가던 동양인이 길거리에서 이유 없이 구타를 당했다는 소식이 간간히 들렸다. 뉴욕시가 슬슬 패닉 하기 시작했다.


3월 둘째 주가 되었을 때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장려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개념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내 손은 너무 자주 씻어 따가울 정도로 건조해져 있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주변이 좀 어수선하네. 뭐 다음 주면 괜찮아지겠지.'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불안하지만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스포츠 시즌 경기가 취소되거나 무한 연기되었다. 관중이 몰리는 모든 행사는 자제하는 것이었다. 연이어 뉴욕시의 모든 박물관이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사람 많은 데만 안 가면 되지 라고 생각했다.


재택근무에 신나 하며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고 있을 때 뉴욕시를 셧다운 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때 뉴욕주지사 쿠오모는 그럴 일은 없다며 안심하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슈퍼마켓을 가기 위해 긴 줄을 서고 화장지를 사재기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패닉 하기 시작했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공포심이 가까운 지인들에게 까지  퍼진 것이다.

휴지를 비롯한 생필품이 동나고 있는 상황


아직도 3월?

재택근무를 한 지 2 주째 접어들었고 도시의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은 뉴욕은 황량하다. 평범한 뉴욕은 길거리에 차고 넘치는 사람들로 항상 북새통을 이루며 항상 바쁘게 돌아가고 24시간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코로나가 휩쓸고 있는 (이게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더 무섭다.) 이 도시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도시가 되었다.

사람이 없는 타임 스퀘어(출처: NYT)
한 번에 20명 이상 쇼핑을 할 수 없게 한 홀푸드, 밖에서 장을 보기 위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줄 서있는 사람들
저녁 7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길거리에 사람이 없다.


자가 격리에 들어간 지 2 주차. 하루에 30분 정도 조깅하는 것과 길 건너 슈퍼에 가는 것 말고는 집에서 나가지 않고 있다. 워낙 집순이인지라 자가 격리가 힘들지는 않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고서도 행여나 경기가 불황으로 치닫지는 않을지, 가게들이 폐업을 하지는 않을지 하는 걱정이 든다. 매일 대형 마켓이나 온라인에 휴지 재고가 입고 되었는지 확인하지만 입고되는데 이주는 더 걸릴 듯싶다.


언젠가 한번 직장 동료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2월은 날짜가 적어서 빨리 가는데 난 3월은 항상 늦게 가더라."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여태껏 살았던 3월 중 최고 긴 3월을 보내고 있다. 애초에 3월 말 정도로 예상했던 '뉴욕의 정상화'는 현재로써는 조금 무리 같아 보인다. 매일 확진자가 초고속으로 늘어나며 미국이 이탈리아를 따라잡고 있는 데다가 미국 확진자의 절반 이상이 뉴욕주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쿼런틴(Quarantine)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가 격리로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만 있다면 이깟 자가 격리쯤이야.


세상이 모두 정지해버린 것 같은 나날들에 얻어가는 것도 많다.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천성이 게을러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홈트라는 것을 해 보았고, 해보니 오히려 좋은 점도 있더라는 것도 배웠고, 요리 실력도 매일 느는 것 같고, 잠을 많이 잘 수 있어서 좋고, 면역력 개선에 신경 쓰다 보니 영양제도 꼬박 챙겨 먹고 사실 코로나 덕에 더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코로나 때문에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2 주간 세상이 모두 정지해버린 데서 오는 불편함은 가고 싶은 커피숖을 못 가는 것과 헬스장의 사우나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아직 이 모든 불편함은 별거 아니지만 그래도 빨리 이 모든 시국이 정리되어서 예전의 뉴욕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P.S.: 한국만큼 코로나를 잘 이겨내고 있는 나라가 없는 것 같아 자랑스럽다. 특히, 뉴욕시의 셧다운을 경험하고 있자니, 마스크를 써서 불편하긴 하지만 시민들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낸 시민 의식에 감동한다. 나는 젊고 건강하니까 상관없다며 단체로 여행을 떠나고 파티를 해대는 미국의 20대를 보며 이 나라의 미래가 심히 걱정되었다. 대한 민국이 대단한 이유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 서로 돕는 상부상조가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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