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고 싶은 나
깔끔한 개인 사무실 소파에 한 사람이 드러누워 자기의 고민을 주절주절 말하면 그 옆에서 안경 낀 날카롭게 생긴 사람이 노트에 끄적이며 질문을 하는 장면을 우리는 미국 영화/드라마 속에서 자주 보았다. 이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인데, 미국인들은 자신을 담당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나 심리 치료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도시에 살수록 친구를 만나는 시간보다 자신의 shrink(정신과 전문의)를 만나 상담하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미국인들은 정신과, 심리과 치료에 진심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정신과 전문의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정신과를 찾으면 심각한 정신병이 있다고 생각하던 옛날과 달리, 일반인들의 정신과 상담에 대한 문턱이 낮아진 편이다.
하지만 나는 매번 정신과 치료에 꽤나 냉소적, 회의적이었다. 미국 생활을 한지 십여 년이 지나가면서 단 한 번도 심리 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나 약물에 의존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은 적이 거의 없을 만큼, 힘든 일은 그냥 극복하고 견디자 주의였고, 그나마 주변인들한테 징징대던 것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는 그만두게 되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 한국인 특유의 존버 정신인 것인가? 내 속 마음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성격 탓 인가? '너만 힘드냐? 다들 힘들다.'라는 말을 이해해서 인가...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난 힘들일이 있을 때마다 그냥 버텼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 마음은 자연스럽게 치유되어있었다.
심리 치료의 필요성을 못 느끼던 내가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고자 마음을 먹은 것은 지난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나이 서른 넘고 사람 함부로 믿는 다면 그것은 모자란 사람이라 생각했건만, 나이 불문하고 감정이 앞서 선뜻 사람을 믿기도 하더라. 그럼 그간 인생에 쌓아온 빅데이터가 무색하게 또 그렇게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 믿었던 사람한테 코베이고 뒤통수를 갈겨 맞았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일들이 드라마처럼 다가오던 그 여름. 당시에는 ‘에피소드 하나 건졌네.’하며 ‘인생 안주거리 하나 추가요!’ 웃어넘겼지만 실질적 후폭풍이 온 것은 아마 삼, 사 개월 정도 지나고 나서였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비대면이 일상이던 시기에 혼자 타지에 나와 자취에 재택근무까지 하려니 하루 종일 사람이랑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 날이 꽤 됐다. 사람과의 대면 없이 고립되다 보니 정서가 불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만히 있거나 뭔가에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고 계속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날이 있는가 하면 하루 종일 이유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날이 많았다.
반면 정신은 잠시도 쉴틈 없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갑자기 직장을 잃으면 어쩌지?’, ‘강도를 당하면 어쩌지?’, ‘암에 걸린다면 어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되지도 않는 근거 없는 걱정들이 먹구름같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
주변에 담당 정신과 전문의를 둔 사람들이 있어 리퍼럴(referral: 미국 전문의들 중에는 다른 전문의의 소개나 기존 환자의 소개로만 새로운 환자를 받는 의사들이 꽤 있다. 실력 좋다고 소문난 의사들이 대체로 이러하다.)을 받아 보려 수소문을 해보니 시간당 삼십만 원 이상의 금액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저렴한 옵션을 선택했다. 이른바 버츄얼 상담 웹사이트였는데, 최근 들어 코로나의 영향으로도 정신과 상담을 원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서비스로 온라인으로 상담원을 연결해주고 한 달에 일정 회원비를 받는 형식이다. 웹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의 신상명세와 상담받고 싶은 영역을 설정하면 이에 맞는 전문가를 연결해주고 화상 통화, 일반 전화,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한 수단으로 상담받을 수 있다. 가격은 일주일에 7만 원 정도이며 상담 횟수에는 제한이 없다.
사람 소비 심리가 이렇다. 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이용료에서 그 금액이 몇 십만 원으로 줄어들자 뭔가 싸 보였다. 그래서 덜컥 사 주 치를 끊었다. (약 삼십만 원 정도)
이것저것 신상 정보를 입력하니 두 명의 상담원 후보를 보내주었다. 정말 단순히 남녀 차별적인 사고에서 비롯한 '남자가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에 근거하여 텍사스에 살고 있는 70대 남자 선생님을 선택하였다.
세션은 삼십 분 단위이고 선생님의 스케줄에 따라 오픈되어 있는 시간을 예약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60불 내고 무제한으로 이용한다지만 대부분의 전문가 스케줄은 일주일에 가능한 시간이 하나에서 세 개 정도의 타임이 전부였다. 결국 일주일에 한 번 약 삼십 분 동안 만날 수 있는 꼴이 되었다.
예약한 시간이 되었고 화상 통화 연결을 하였다. 예정된 시간보다 약 5분 늦게 입장한 선생님은 앞 선 사람이 이야기를 도무지 끝낼 기미가 보이지 않아 시간이 늦어졌다며 양해를 구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나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말하기 시작했다. 기업 면접을 볼 때 하는 자기소개와 매우 비슷했다... 갑분 고해성사하는 분위기라는 것 빼고는...
초반 20분 간 나는 전문가(사실은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 내 상태가 왜 이런 것인가 하는 나의 추측과 나의 하루 종일의 상태가 어떤지, 하루 동안 내가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하는 지를 설명했다. 나를 설명하면서 내 생각이 정리되는 듯한 느낌을 살짝 받았지만 내가 필요한 것은 생각의 정리가 아닌 전문가의 조언이었다. 나의 심리를 빨리 분석하고 원인을 찾아내란 말이다!!! 당신은 전문가가 아닌가? 하지만 그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20분도 채 되지 않아 조급해졌다. 하지만 처음이니까 오늘 고작 20분 대화한 것뿐이니까... 하며 스스로 느긋해지려 노력했다.
5분 늦게 시작했으니 응당 5분을 더 해서 30분을 채우리라 생각했건만 그 전문가는 예정된 시간이 되자 다음 시간에 예약된 이를 위해 세션을 종료해야 한다며 그렇게 어색하게 첫 번째 세션을 마무리했다.
세션이 끝나고 뭔가 허탈한 마음에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원래 이런가?' 하며 주변인에게 물어보았더니 나한테 맞는 상담원 찾기가 쉽지 않단다. 한 친구는 연애할 상대 찾는 것만큼 자기와 잘 맞는 전문가 찾기가 힘들다 했다. 그렇다면 내가 만난 선생님은 소개팅 이후 두 번 다시 안 볼 상대와 같았다. 하지만 나는 내 안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해결하는 것에 진심이었고 인내심을 갖고 한번 더 만나볼 의향이었다. 심리 상담 초짜인 내가 무엇을 알겠나 하면서...
두 번째 상담 예약은 약 일주일 정도 뒤였다. 정해진 시간에 접속하여 대기하고 있는데 5분이 지나도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고 15분이 되어서야 자신의 인터넷 연결 상태가 이상하다며 영상 대신 전화를 걸어온다. 그렇게 30분에서 15분을 까먹고 들어온 그는 지난 시간 내가 했던 이야기의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 채 첫 번째 상담에서 했던 질문을 반복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15분의 상담을 끝내고 해당 웹사이트에 환불을 요청한 뒤 서비스를 탈퇴했다. 역시 싼 게 비지떡인가 싶으면서 한편으로 이렇게라도 경험해보고 아닌 거 알았으니 괜찮다 싶었다.
사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알아주리라는 기대를 한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전문 가니까 딱 보고 알겠지 기대한 것도 없지 않아 있다. 난 위로의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일까? 따끔한 충고가 듣고 싶었던 것일까? 그냥 사람이랑 대화하고 싶었던 것일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고 내 안의 문제는 나의 몫이었다. 사실, 전문가를 만났다고 한들 내 안의 문제는 누구의 몫도 아닌 다 내 것이다. 단지, 전문가를 고용하면 뭔가 쉽게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물론 심리 상담가의 도움을 폄하는 것이 아니고, 심리/정신 치료라는 것이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는 단순한 바이러스의 감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제대로 된 전문가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육체가 아프면 바로 병원을 찾는데 정신이 아프면 우리는 버티고 버티다가 무너질 때까지 가서야 고통을 호소한다. 한국인 특유의 'Tough Love', 모진 사랑도 한 몫한다. 힘들면 참고 견디고 그래야 성장하는 것이고 성장통이 없이는 발전이 없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성공하는 것이고.. 고통이 삶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일정 나이가 지나면 주변인에게 힘든 것을 토로하는 것도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 그 나이가 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긴 한다. 어차피 말해봐야 나아지는 게 없는 것을 아는 이상 그냥 내가 떠안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나를 위로해주다 보면 마음이 조금 나아진다.
이번 일로 인해 내가 얻는 것이 있다면 결국 나를 진심으로 위해 주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 너무나도 진부해서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어떠한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말이지만 마음속에 항상 새겨두어야 할 내용이다. 3n 년 내 인생에 있어 미약하지만 처음이나마 시도해본 아픈 마음 치료하기. 결과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그만큼 정신 건강에 진심인 나의 태도에 작게나마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