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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영 Nov 06. 2016

Underground Boy

다방집 소년 (연재소설 #5 하)

다방집 소년 5(하)

(다소 잔인한 장면이 포함돼 있어 읽기에 주의를 요합니다.)

 어느새 9월의 일주일이 금세 지나갔고 토요일이 왔다. 지난주 내내 북괴에 의한 김포공항 폭탄 테러에 대한 뉴스로 신문이 도배되다시피 했다. 또 주 중에는 전국적으로 성화봉송인지 뭔지를 했다. 성화가 뭐 대수라고 이 난리법석을 피우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신문 TV 편성표를 보니 매일 저녁마다 성화 봉송 중계방송을 했다. 중계방송을 위해 송화 봉송로 주변에 환경미화를 빌미로 철거되는 무허가 건물이 있었다. 전국 곳곳에서 진행된 성화 봉송 코스 중에 하필 우리 학교 앞 도로도 포함이 돼서 그랬는지 지난 화요일 아침 등굣길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학교 앞 도로 근처에 있던 무허가 비닐하우스 촌이 강제로 철거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D시의 항구를 중심으로 한 구도심에 포함되는 우리 학교 쪽은 제대로 된 단층이나 2층 양옥집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도로 건너편은 6가구 정도 무허가 비닐하우스 집을 짓고 사람들이 살림을 살았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갈 때 버스 정류장 앞에서 이 집들에서 풍겨 나오는 맛있는 된장찌개 냄새에 몸을 베베 꼬며 당장 들어가 한 술 얻어먹고 싶었던 적이 있었고 거기 사는 사람들의 얼굴도 간혹 봤었던 곳이다.

 8시도 안 된 시간에 무슨 큰 일을 하겠다고 공무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떼거지로 와 있었고 포클레인까지 동원해 사람이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 촌을 무지막지하게 부셨다. 그걸 말리던 비닐하우스촌의 장발의 중년 남자는 공무원들에게 몰매를 맞았고 사방에 아우성이 났다.

 내 나이 또래의 사내아이가 맞고 있는 아버지를 말리다 또다시 몰매를 맞았다. 등굣길이 바빠 차마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떼면서 저기 있는 공무원들을 깡그리 다 죽여 버릴까 하는 강한 충동이 들었다.   

 그러다가 저 사람들은 그저 영혼 없는 공무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낼모레가 추석인데 사람이 살림을 사는 집을 부수어야 하는 노예들. 갈 곳 없이 쫓겨나는 노예들. 어쩔 도리 없이 그저 지켜보는 노예들!

                                                                                    …


 다음 날, 늦은 오후에 비가 내렸다. 소위 전국으로 여러 군데에 걸쳐 성화 봉송이 되었다고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 학생들은 동해 남부지역 성화 봉송 주자가 지나갈 때 태극기를 흔들어야 하는 박수부대로 동원되었다. 학생들이 비에 젖건 말건 선생님들은 종이 태극기를 비에 젖지 않게 품에 꼭 안게 했다.

 나는 비를 쫄딱 맞아 화가 났지만 무엇보다 성화 봉송 주자가 그저 순식간에 우리 앞을 지나갔을 따름이라 대단히 황당했다. 커브 길을 돌아 선두에 교통경찰 모터사이클이 보이고 한 열을 셌나? 우아다닥! 육중한 체격을 가진 교감 선생님의 태극기 꺼내라는 말이 한 타임 늦었다. 어떤 아이들은 아예 태극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난감한 교감 선생님의 표정이 이어졌다. 난 귀찮아서 안 꺼냈다.  

 중계방송 차량과 모터사이클이 앞뒤로 따라갔지만 도대체 왜 이런 행사에 멀쩡한 학생들이 동원되어야 하고 불과 십몇 초도 안 되는 시간을 위해 멀쩡히 사람이 사는 집을 때려 부셔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순간 무슨 체육관 같은 데서 제복 같은 걸 입고는 엄청난 조명으로 민머리가 빛나던 대통령 얼굴이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부드득 이가 갈렸다.  

 한편 목요일이 추석이어서 학교를 쉬었다. 우리 다방집은 명절 오전만 쉬었는데 나는 그냥저냥 동네에 새로 생긴 독서실에 가서 하루를 보냈다. 이 독서실은 쉬는 날이 없었다. 다만. 짜증이 났던 것은 TV에서 하는 방송들이 죄다 86 아시안 게임 관련 홍보 프로그램들이어서 TV에서 도저히 볼 게 없었다는 점이다.

 어여쁜 엄마 말고는 아는 일가친척이 없는 나로서는 명절 때 다방집에서 오전이라도 조용히 지내는 게 좋았다. 의외로 명절 때 고향에 못 가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그런지 명절 당일 오후에도  우리 다방집에는 제법 손님이 드는 편이었다.  

 어쨌든 이가 갈리는 빛나리 대통령이 그토록 소원하던 아시안 게임은 기어코 오늘 오후에 개막을 한다.

 아! 그런데 토요일 오전에 학교를 가려는데 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태풍이나 장마 때도 아닌데 요즘 비가 아주 잦다.

 하필 금요일 밤에 좀 늦게 잤고 덕분에 늦게 일어나서 득달같이 다방집을 나섰다가 다시 우산을 찾으러 들어왔다. 지하실은 이런 게 좋지 않다. 핵폭탄이 터져도 당장을 알지 못한다. 밖을 나갔는데 건물들이 깡그리 없어져도 이상할 것은 없는 뭐 그런 상태다. 간혹 정전이나 퓨즈가 나가서 불이 꺼지면 시간이 멈춘 듯한 이상한 경험도 하게 된다.

 그나저나 문제가 생겼다. 이상하게 다방집에 레지 누나들이 배달을 갈 때 쓰는 길쭉한 골프 우산 말고는 우산이 안 보였다. 내가 이 우산을 학교에 들고 가면 미스 나 누나가 배달을 갈 때 쓸 우산이 없다.

 비상구 계단 쪽에 가끔 손님이 나 두고 가는 우산도 있었는데 내 오른 손목에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전자시계를 보니 7시 30분이 다 되어갔다. 나는 그 날 이후, 별생각 없이 이 시계를 계속 차고 있었다. 엄마도 별로 이상한 걸 못 느꼈는지 보고도 별 말이 없었다.  

 무조건 8시까지 등교를 해야 하는 학교라 도저히 시간은 바쁘고 해서 할 수없이 그냥 내쳐 시외버스 터미널 앞 버스 정류장까지 달려갔다. 이 학교는 특이하게 교장이나 교감이 종종 나와서 지각을 하는 학생 뺨을 때렸다. 희한한 학교다.

 학교의 명예는 차치하더라도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본인들이 책임질 문제지 왜 1, 2분 늦은 학생들을 줄을 세우고 좋은 대학을 운운하며 뺨을 때리느냐 말이다. 물론 저명한 영국의 명문학교 이튼스쿨에서도 아이들 체벌은 있었다고 하지만, 아침부터 느닷없이 체중을 실어 뺨을 때리는 것은 아주 몹쓸 짓이다. 그걸 두 번 다시 경험하기 싫었다.

 내가 전교 1등이자 모범생인 교감 선생님의 따님이 전해주신 따듯한 손편지를 정중히 거부한 이유 중에는 덩치가 상당히 큰 교감에게 묵직한 뺨을 맞았던 좋지 않은 기억도 한몫 거들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지각을 할까 초조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며 비를 맞고 있는데 누가 우산을 씌어 주었다. 어라! 옆을 보니 일주일 전에 늦은 밤에 내게 담배를 권했던 그 레인코트 맨이었다. 깜짝 놀랐다. 이 양반은 자꾸 사람을 놀라게 한다.

 오늘은 전에 봤던 때와 달리 말쑥하게 빗어 올린 머리에 푸른색 줄이 있는 마린룩 흰 면티, 네이비블루 재킷과 타이트한 갈색 정장 바지에 같은 색 가죽 구두를 차려입고 옆으로 메는 가방, 아! 이 가방 중요하다. 역시나 이 근동에서는 도저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유닉크한 스타일의 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괜, 괜찮아요! 아저씨!”

 “그냥 써어! 비 많이 오는데!” 여전히 우리 엄마 말고는 듣기 힘든 오리지널한 서울말이다. 더군다나 낮고 굵직한 목소리다.


 “괜찮은데…….” 마지못해 썼다. 소낙비를 피하니 좋긴 했다.

 “너, 고등학생이지? 어느 학교야!”

 “저, 저요! 저 D 고등학교인데요. 왜요?” 우리는 남녀공학이라고 붙이지 않고 그냥 고등학교라고 부른다.

 “아! 아! 그래? 너 공부 좀 했구나?”

 “아니요. 턱걸이해서 들어갔는데요. 뭘!”


 그때 학교 앞으로 가는 6번 버스가 왔다.


 “고맙습니다.”

 나는 후다닥 버스에 탔다. 웬걸 그 서울말 쓰는 사내도 같은 버스에 탔다. ‘어라!’ 뭐 핑계 없는 이유는 없지만 내가 저 양반이 “담배 줄까?”하는 말을 듣고 괜히 미군이 놓고 간 지독히 독한 담배를 피우다 멀쩡한 얼굴을 벽에 처박는 험한 꼴을 당했다. 다른 곳보다 얼굴 상처는 빨리 낫는다고 해도 아직 턱밑에 난 상처가 남아 있었다.

 도대체 어른들은 왜 이렇게 독한 걸 끊지 못하나 생각을 했는데 어느새 내가 그 말보로 담배 한 갑을 다 피워가고 있었다. 지포 라이터의 ‘철컹’ 뚜껑 여는 소리가 참 좋았다. 이 소리야 말로 남성다움의 어떤 극치를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담배 생각을 하는데 때 마침, 도롯가에 물을 튀기며 학교 앞에 버스가 섰다. 나는 버스에 내려서 또 전력으로 뛰었다. 슬쩍 뒤를 보니 사내는 버스에 내려서도 내 뒤를 따라왔다. 이상한 남자네!라고 생각하며 나는 평소답지 않게 학교를 향해 전력을 다해 뛰었다. 요즘 좀 단련이 돼서인지 학교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마지막 학교 문이 보일 때는 MBC 청룡의 김인식 선수가 1루에 악착같이 뛰어갔듯이 무슨 슬라이딩이라도 하고 싶었다. 교문을 통과한 시간은 07시 58분 46초였다. 세이프! 세이프! 살았다.  

 간혹 TV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해줘서 재밌게 봤다. 내가 응원하는 서울의 프로야구팀인 MBC 청룡은 올해도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했다. 내가 82년부터 이 팀을 응원하는 이유는 내가 태어난 서울을 연고로 한 유일한 프로야구팀이었단 이유 말고는 없었다. 83년도에 한 번 한국시리즈에 간 적은 있지만 아직 한 번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적이 없다. 그나저나 요 근래 프로 야구는 광주에 적을 둔 해태 타이거즈가 참 잘 했다.   

 비도 맞았겠다 교문을 향해 뛰면서 땀도 흠뻑 흘렸겠다 오전부터 잠을 청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평소처럼 떡대 좋은 경일이 등에 신세를 지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지난주 일요일부터 계속 담배를 피우고 나서 몸이 각성이 됐는지 약간 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런 데다가 아침부터 요란스럽게 비를 맞았더니 으슬으슬 몸이 떨려왔다. 웃기는 것은 몸이 이런데도 다시 지난주 일요일에 봤던 그 묘한 소녀가 생각났다는 것이다.

 내가 그 존이라는 미군처럼 정말 섹시한 스타일의 마돈나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매력적인 소녀라면 혹시라도 뭐든 걸 다 던지고 사귈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다.

 뭐 어쨌든 나의 오전은 뭔가 처음 느낀 어떤 감정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 소녀를 만나고 세 번을 기절한 기억이 있는데 왜 나는 그 소녀가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가는 걸까? 내 천적인가? 아니면…….

 그러다 3교시 미술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웬일로 우리반 실장 도하가 수업을 한다고 했다. 미술실로 갔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내 1학년 학교 동아리 모임은 미술부다. 김유정이라는 이름의 미모의 미술 선생님이 결혼을 하면서 그만 두기 전까지 나는 동아리 시간이면 열심히 미술실에서 가서 그림을 그리며 토요일 방과 후에도 미술실에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그렇다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아니고 아그리파 스케치나 수채화로 풍경화 따위를 그리곤 했다. 3학년 중에는 미술을 전공을 하는 여자 선배가 있어서 계속 미술실에 상주하며 실기 시험 준비를 하기도 했지만, 웬일인지 미술 선생님은 여름 방학을 시작할 때 나를 따로 부르더니 자신은 이제 학교에 나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 전 주말에 우리나라 제2의 도시까지 가서 그 선생님과 같이 봤던 영화를 잊지 못한다. 그 영화는 <미션>이었다.


 “아! 네! 와!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선생님!”


 그때 살짝 미소를 지어주시던 선생님의 눈동자를 잊지 못한다. 그 뒤로 그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들리면 묘하게 마음이 아릿해 오곤 했었다. 그러고 나서는 방학이 끝나고 모인 동아리 모임 외에 수업을 하러 미술실에 오기는 처음이었다.


미술실은 교실 하나 반 정도 넓이인데 긴 탁자들을 연결해서 그림을 그린다든지 미술 이론 수업을 듣는다든지 했다. 아이들이랑 미술실에 가서 앉아 있는데도 몸살 기운이 있는지 비몽사몽하고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이 실장인 도하에게 오늘 수업하는 거 맞냐고 물었다. 실장은 분명히 수업한다고 들었다고 짜증 아닌 짜증을 냈다. 그러거나말거나 나는 어떻게 잠을 잘까 궁리를 하던 차였다. 스르륵, 미술실 앞문이 열렸다.


 ‘어라! 저 남잔?’


 분명 오늘 아침에 나에게 우산을 씌어주었던 레인코트 맨! 도저히 어디를 봐도 학교 선생님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모습이었데…. 서류 봉투 같은 것과 우리 반 출석부를 들고 들어왔다. 마음을 놓고 잠을 청하려다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건 뭔 일? 미술실 교탁에 서서 서류 봉투와 출석부를 탁 내려놓자, 눈치를 보던 우리 반 실장인 도하가 일어서서 “차렷!”을 하려는데,


 “됐어! 앉아! 괜찮아!” 실장 도하가 굉장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네, 쌤!”

 “크크크큭! 나 이거 한 번 해보고 싶었어!” 이 무슨 변태스러운 말인가? 아마 이 선생의 별명은 변태가 될 것이다. 반 전체가 충격에 빠져 멍! 한 상태가 됐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새로 부임한 미술과 선생 이동철이다. 개학하고 바로 왔어야 했는데 서울에서 일이 좀 늦어져서 부임이 늦은 점 미안하게 생각한다. 참고로 나 이 학교 재단 이사장의 조카야. 여긴 빽으로 들어왔다. 미대는 겨우 졸업했고 프랑스 유학도 겨우 석사 하나 마치고 지난해 말에 귀국했다. 어디 전문대라도 교수 자리 알아보다가 연이 안 닿아서 일단 여기로 왔다. 너희들이 꼭 알아둘 것은 난 언제든 뜰 선생이라는 거다. 그러니 별 부담 없이 대해주면 좋겠다.”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어라! 이 선생 뭐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이들 눈은 더 둥글해졌다.

 “그래서 말인데 오늘을 여러분들의 자화상 스케치를 해 보게 하려고 한다. 종이 한 장씩 나눠줄 테니 연필이나 볼펜이나 아무 필기구를 가지고 자기 얼굴을 그려본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별 상관이 없다. 시간은 충분히 줄 테니 솔직하게 그려 보면 좋겠다.”


 일단 자기가 빽으로 들어왔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선생의 모습이 참 신기했다. D시의 신도심에 새로 생긴 사립 중학교를 나와서 이런저런 자격미달 선생님들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이 있었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이실직고하는 스타일의 선생은 처음이라 참 황당하달까? 그리고 자화상이라니? 학교를 다니고 나서부터 생전 처음이고 듣도 보도 못했던 미술 실습이었다.  여기저기 손을 드는 친구들이 있었다.


 “쌤예! 거울도 없는데 어뜨케 그리란 말이심니꺼?”

 “맞심니더! 지는 사나이라 가꼬 하루에 거울을 단 한 번도 안 본다 말입니더!”


 그러자 별 상관이 없다는 듯, 새 미술 선생께서는,

 “그래?! 자기 얼굴 그리기 부담스러운 친구들은 자기 손을 그린다. 그림 그리는 자기 손! 얼굴이나 손 양자택일이니 편한 걸 그려봐! 그리고 꼭 거울 안 봐도 되니까 자기 얼굴이라고 생각이 드는 걸 그려보면 좋겠다.”  

 

 같은 반 아이들은 미술 선생님이 서류 봉투에서 꺼낸 손바닥 두 개를 모은 것보다 약간 큰 종이를 받더니 엉거주춤 뭔가 그리기 시작했다. 내 경우, 약간 아니 아주 많이 공황이 왔다. 나로서는 내 얼굴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거울을 자주 보는 것도 아니고…….  

 사실 어릴 때부터 여자애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별로 좋아하는 얼굴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는 아이들처럼 오토바이 타고 다니며 이 동네 저 동네 여자아이들 후리고 다니는 성격도 못 됐다. 어디로 봐도 어정쩡한 얼굴인데 그런 얼굴을 그리라고 하시니, 빽으로 들어왔다는 말보다 한 열 배는 더 황당했다.  

 여러 아이들이 쩔쩔매는 가운데 결국 나는 고요히 낮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그렸다. 그 스케치를 갖다 내니 그 변태 같은 미술 선생은 나를 보며 꽤나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 건 마치 뭐랄까? 입은 웃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의 눈빛이었다. 약간 몸에 소름이 돋았다.

                                                                                …         

 토요일이라 수업을 마치고 다른 날보다 일찍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마침 집으로 가는 6번 버스가 떠나려는 걸 억지로 세워서 탔다. 그런데 버스에는 이미 우리 학교 전교 1등을 우리 반 경일이랑 다투는 교감 선생님 따님이자 나에게 따듯한 말을 담은 쪽지를 전했던 여학생이 이미 타고 있었다. 가끔 이런 식으로 미묘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 상황을 만날 때 마음이 꽤 무거워졌다.

 나는 버스 제일 뒷자리 우측 창가에 섰고 그 굵은 뿔테 안경을 쓴 여학생은 버스 후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민소정이라는 이름의 여학생이었다. 꽤 살집이 있어서 그렇지 자세히 보면 상당히 귀여운 얼굴을 한 소녀였다.

 시험만 끝나면 이 뭣 같은 학교는 전교 1등부터 50등까지 현관에 붙여놔서 나는 이미 그 소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첫 시험부터 전교 150등 밖으로 밀려났다. 이번 시험에는 159등 정도를 했다. 공부를 안 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지만 입학 성적만으로는 전교 50등 안에 들었던 걸로 치면 참혹한 일이었다. 여하튼 경일이나 이 소녀나 고입 시험 만점자라 서로 라이벌이라고 학교에서는 입학할 때부터 소문이 났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나에게 왜? 도대체 왜? 그런 쪽지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문득 마음이 불편해졌다. 저 여학생은 오늘 나의 반응을 기대했겠지만 나로서는 어떤 반응도 전달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 여학생은 내 눈치를 보다가 내 냉정한 눈빛을 보고 실망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여학생의 불편한 마음이 고스란히 마음에 전달되었다. 으으으으!!! 뭐라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저미는 아픔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녀만큼 나도 힘이 든다. 거시기는 시도 때도 없이 꼴리고, 미스 나 누나와는 거시기와 관련해 여러모로 곤란한 일이 생기고, 엄마는 등록금을 못내 난처해하고, 나는 간혹 분노하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사람 목숨을 앗으려 하고, 심지어 고양이 인간들이 사는 나라에 납치가 되었다가 어쩐 일인지 현실로 돌아와 정체불명의 시계를 차고 있다.  

 그나마 희망이라면 매주 일요일 오후 3시 20분에 KBS1 채널에서 방송하는 <당첨! 올림픽 복권>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복권을 맞춰보는 일이다. 특히 내일은 더더군다나 용꿈을 꾸었으니 더 기대를 해 볼 따름이다.

 그런 형편인 내가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자 스윽 집에 놓아둔 말보로 레드 담배의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가 떠올랐다. 뿔테 안경을 쓴 소녀가 기어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찢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도저히……. 그녀의 아버지인 교감의 묵직한 손찌검이 용서가 안 됐다.   


 집에 돌아와서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TV에서는 제 10회 아시안 게임 개막식 중계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전국 대학은 지난주부터 휴교령이 내려졌고 대학마다 압수수색이 들어갔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었던 기억이 났다. 다방집 신문 읽기는 내가 내실 옆 쪽방에서 늘 하던 일이기도 했다.   

 TV 화면 가득 대고에 그려진 청룡이 보였고 화면이 넓어지자 대고 양 옆에 서서 대고채를 양손에 잡고 북을 치는 남자들이 보였다. 비로소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을 꽉 채운 10만의 관객들도 보였다. 잠시 봐야 하나 생각을 했지만 민소정이라는 여학생이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귀빈석에 앉은 대한민국 제 12대 대통령도 보였다. 그는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전에도 경일이 짝 태현이가 저 대통령을 아작을 내겠다는 말을 했지만, 지금 도저히 마음이 좋지 않아 여기저기 앉아 개막식을 흥미롭게 시청하는 손님들을 지나쳐 내실 옆 쪽방으로 가서 오전에 청하지 못 한 잠을 잤다. 주방에서 엄마가 밥을 먹었냐고 물었지만 알아서 먹고 왔다고 했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나를 보고 그 여학생은 눈물을 흘릴까? 내가 뭐라고…….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아! 하필 저 빛나리 대통령이 내 꿈에 나왔다.

 무슨 일인지 온통 깜깜하고 텅 빈 올림픽 잠실 주 경기장에서 나는 귀빈석 대통령 의자에 앉은 저 빛나리 대통령의 머리를 사정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피 흘린 채 처참한 모습의 사람들이 그를 빈틈없이 꽉 붙잡고 있었다. 수를 셀 수 없는 사람들이 귀빈석 주위를 둘러 서 있었다. 그들은 별로 무섭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마음이 고통스러웠다.

 그 여학생에게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말로 형언할 수 없이 큰 고통이 느껴졌다. 무슨 일인지 나는 개막식에서 대고를 두드리던 그 큰 대고 채를 양 손에 붙잡고 북을 내리치듯 그의 민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얼마나 사정없이 내려쳤는지 머리에서 피가 솟구쳐 올라 분수처럼 내 몸에 뿌려졌다. 지난번 다방집에서 봤던 잔인하기 그지없었던 일본 사무라이 영화에서처럼 피는 심장의 맥에 따라 박자를 맞춰서 솟구쳤다.

 내 온몸이 점차 독재자의 피로 물들었고 그의 머리는 점차 곤죽이 되어갔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6살 무렵 살았던 시설의 원장실 앞 복도였다. 원장실 복도 창문으로 비치는 내 모습은 경악스러웠다. 피칠갑을 하고 고양이 눈을 한 채 안광을 내뿜고 있었다. 구렁이 자국이 금빛으로 빛이 나는 오른 팔뚝도 보였다. 나는 마지막 남은 미국제 말보로 레드를 입에 물고 태연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는 술만 먹으면 옷을 벗던 그 광주 출신 누나가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다. 누나는 청순했고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입고 있던 교복 치마를 훌렁 들어 올렸다. 하얀색 팬티가 보였다. 사정없이 내 입에 물려있던 담배를 뺐더니 자기 허벅지 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미국산 말보로 레드의 담뱃불로 자기 허벅지를 사정없이 지지기 시작했다. 그 아픔은 고스란히 내게도 전달됐다. 정말 아팠고 고통스러웠다.

  “아악! 아아아악!!!! 그, 그만!!!!”

 벌떡 일어나, 잠을 깨 보니 여전히 내실 옆 쪽방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온몸이 땀에 후줄근하게 젖어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후다닥 다방집 홀로 나갔다. 혹시라도 내가 쿠데타로 나라를 빼앗은 대한민국 최고통수권자를 죽였으면 어쩌나 싶었다.

 그것은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혹시나 그래도 만일이라는 묘한 호기심을 느끼며 내실을 뛰쳐나가 다방집 홀의 28인치 대형 삼성 TV를 향했다. 역시나 오른 팔뚝이 후끈거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죽지 않았다. 10만 관중 앞에 서서 금색 뿔테 안경을 쓴 그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잠에서 깬 지 불과 몇 초만이었다.  


“본인은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 10회 아시아 경기 대회의 개회를 선언합니다.”    

 묘한 안도감과 함께 다시 이가 갈렸다. 왜 이런 경사스러운 국가적 행사의 개회를 선언하는 그에게 이가 갈리는지 나는 그 이유를 잘 몰랐다. 다만, 피를 흘린 채 그의 몸을 꽉 붙잡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느껴졌다. 역시나 담배가 심하게 생각이 났다.  

 그, 그때였다. 대회 선언을 마치고 10만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던 대한민국 12대 대통령이 갑자기 단상에서 푹 쓰러졌다. 단상 아래에서 그의 몸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TV 화면이 갑자기 다른 곳을 향했고 중계를 하던 앵커가 당황해 목소리가 떨렸다.

 순식간에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서울 말씨의 댄디한 미술 선생이 나를 향해 묘한 웃음을 짓는 모습만 머릿속 가득 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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