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 쿵하고, 얼음이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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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내리쬐는 열기와 아스팔트의 지글거림. 이런 날 한낮의 길거리는 걷는 이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재빠르게 손부채를 파닥파닥 흔들어봐도 더위는 쉬이 가시지 않는다.
“아, 이런 날엔 시원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한참 동안 그늘 없는 보도블록을 걸으며, 얼음이 가득 들어 있는 커피를 떠올린다. 이 한낮의 끝엔 바깥을 나오기로 결심했던 일을 끝내고, 바로 주변의 카페를 찾아 들어가겠노라 읊조리며 더운 숨을 몰아쉰다.
‘지이이잉’
자동문 버튼에 손을 대는 순간, 간절히 바랐던 서늘한 냉기가 온몸을 스쳐 지나간다. 후, 살겠다 카운터로 향하는 동안, 송골 맺히지 못한 채 옷 안쪽에 머물러 있던 땀들이 빠르게 식어간다. 여름이 온 걸 보여주듯 계산대 옆으로 시즌 메뉴라고 적혀 있는 붉은 히비스커스 에이드가 눈에 띈다. 오후 내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생각했음에도, 이렇게 과즙을 가득 담아놓은 포스터를 보면 마음이 한껏 청량해져 주문이 망설여진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늘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이상한 일이지만, 하루종일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왠지 아까운 마음이 든다. 마치 정당하게 용서되는 즐거움의 1일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기분이랄까.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첫 모금이 가장 맛있다.
특히 오늘처럼 무더운 날에는 그 어떤 음료보다도 개운하고 달다.
10분만 지나도 금세 추워지는 카페 안.
휘잉휘잉 소리를 내는 에어컨.
차가운 아메리카노에 빨대를 꽂아 한 모금 쪽 들이키며,
이렇게 더운 여름 버튼 하나로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마도 우리가 미래의 계절을 사 오는 건 아닐까 떠올리다가.
이건 마치 대출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이 세대가 갚을 수 없는 언젠가는 파산이 될 그런 대출.
여름엔 실내에서 입을 가디건을 한 손에 챙기고,
겨울엔 가벼운 실내복을 입고 외출하는 날들의 내가 스쳐간다.
여름엔 너무 추울까 봐.
겨울엔 너무 더울까 봐.
영 사치다.
그렇게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쿵 하고
컵 안의 얼음이 녹아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