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온기가 필요할 땐, 소고기 미역국을 끓이자
몸도 마음도 힘이 쏙 빠질 때는 소고기 미역국이 생각난다.
소고기와 미역을 듬뿍 넣은 진한 미역국. 먹고 싶다..! 생각이 들면, 차키와 지갑을 간단히 챙겨 정육점으로 간다. 소고기 한 팩을 장바구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넣어둔다. 기운이 모두 빠지면 바로 끓여서 먹을 수 있도록. 고소한 참기름에 소고기와 미역을 달달 볶아, 뭉근하게 끓여낸다. 국그릇에 가득 담아, 후후 불어 먹으면 밥 없이도 힘이 난다. 원래 미역국을 좋아했었나? 보면 그렇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왜일까.
우리 집은 생일이면 아침마다 푹 끓인 미역국이 상에 올라왔다. 해물을 좋아하는 아빠는 홍합 미역국, 고기를 좋아하는 나와 동생은 소고기 미역국. 엄마는 홍합을 좋아했었나? 소고기를 좋아했었나? 잘 모르겠다. 다만, 대체로 우리 집 식탁에는 아빠 생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날이 소고기 미역국이었다. 아마 나와 동생의 영향이 컸을 테지.
오래전부터 생일을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 대단한 날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생일상을 챙겨주던 이가 떠난 뒤로는 조금 달라졌다. 생일날 아침 눈을 뜨면 생일상이 떠올라 슬펐다. 둥근 식탁에 올려져 있던 소고기 미역국, 잡채, 소불고기, 겉절이 한 상. 든든한 아침이었다. 엄마는 내가 시간에 쫓기는 날에도 미역국에 밥을 말아 한 술이라도 뜨고 갔으면 했다.
기억은 신비롭다. 매년 차려졌던 생일상이 이렇게 자리 잡다니. 생각해 보면, 매번 그 생일은 온전히 나에 대한 날이 아니었겠다 싶기도 하고.
중요한 건,
몸도 마음도 힘이 쏙 빠질 때 내게 힘을 실어줄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그 기억으로 지쳤던 마음이 조금 쉬어갈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마음 붙일 곳을 나 스스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소고기를 사러 가자. 미역국을 끓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