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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결실

대추

by 정은영

오래전

유타에 사는 지인이 그곳에서 수확했다며

제법 많은 양의 대추를 보내주어


춥고 길었던 이곳 겨울을 진한 대추차를 마시며 호강했던 기억이

정말 좋았었다


유타에서 자랐다면 여기서도 자라겠지 하면서

대추 묘목을 구해

큰 수확의 허황된 꿈을 기대하며

뒤뜰에 심었었다

말이 대추 묘목이지

무릎길이에 가느다란 가지였지만..ㅎㅎ

두어해 가 지나도록

이곳 기후가 안 맞는지

자랄 기미도 없고 생사도 불분명한 채

기구로 연명해 살아가는 생명처럼 도통 키우는 재미를 못 느끼는 성장 속도에 의욕이 시들한데


그래도 해마다 몇 가닥 초록잎을 보이며

나 살아있어요..라고 말해주니

포기하지도 못하고 의무적으로 간간히 물만 주며

관심에서 멀어지고..

키우는 손길에 금세 반응하는 꽃들만 편애하는 몇 해를 보냈었다


그러다가

보게 되었지...

알게 되었지...

더디지만 조금씩은 키도 자라고

풍성해져 있는 잎 사이로

옹기종기 매달려 있는 초록에 여린

결실들..


이런 긴 인고에 세월이 있어

그토록 진한 차맛이 우려 지나 보다..!!!

역경을 이겨낸 우리에 삶이 가볍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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