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21
종로 한 가운데, 그 사거리는 여전히 혼잡하다. 두텁게 옷을 두른 사람들이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서로의 어깨가 닿지 않게 조심스레 흩어진다. 우뚝 멈추어서니, 원활했던 흐름이 멈칫 거린다. 나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움직이며 소란이 인다. 하지만 곧 또 다른 길이 생겨나, 사거리는 다시 흐른다.
그랬다. 내가 이곳에 섰을 땐 언제나 겨울이었다. 그곳엔 좀 더 오래된 극장이 있었고, 딱딱한 의자만큼이나 불편한 예술영화들을 상영했었다. 일시정지 버튼을 아무데서나 눌러도 바로 포스터가 될 듯한, 잔뜩 힘이 들어간 중국영화가 마지막 상영이었다. 다음해 내가 다시 찾았을 땐 다른 이름에, 좀 더 좋은 시설에, 좀 더 대중적인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으로 바뀌었다. 그다지 예전의 그곳이 그립진 않았다. 그 극장 옆으로 카페가 제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으니까. 이전보다 훨씬 분비긴 했지만 커피향이 그대로여서 나는 안심했다.
겨울이라 카페의 외관이 유난히 더 차갑다. 통유리에 반사되는 햇빛이 날카롭다. 철기둥과 단단해 뵈는 나무로 단순하게 구조를 짜 맞추어 올린 건물은 모던한 느낌이지만 그 만큼 사람을 냉정하게 만든다. 다행이다. 조금씩 쌓여버린 추억에 짓눌리지 않고 가게 안을 들어설 수 있으니.
드시고 가실 거면 미리 자리를 맡아주세요. 주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서니 점원이 말한다.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비흡연석인 일이층에선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 흡연이 가능한 삼층으로 가서야 간신히 빈자리에 가방을 놓아둔다.. 크로와상 한 조각과 어메리카노를 한 잔 시킨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바리스타 경연대회의 트로피가 몇 년 전보다 서너 개 더 늘어난 기분이다. 주문한 것을 받아들고 계단을 오른다. 소음으로 가득한 이층을 지나 삼층으로 오르니 한결 마음이 가라앉는다. 닫힌 창 너머 내리는 빗소리처럼 저 멀리 아래에서 소음이 흐릿하게 들려온다. 삼층에는 말 대신 희뿌연 연기를 내뿜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그들은 말도 조곤조곤. 사실은 별로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연기가 말풍선처럼 둥둥 떠다니다 낯선 사람의 연기와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침묵한다. 나는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그들의 침묵은 마음에 든다. 크로와상을 손으로 듬성듬성 찢어 먹는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어 입안에서 부드럽게 흩어진다. 거기에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머금으면 입안에 남아있던 빵과 함께 목구멍으로 스며들 듯 넘어간다.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낸다. 첫 몇 글자를 끄적거리다 커피를 마신다. 코로 내쉬는 숨으로 진한 커피향이 함께 느껴진다. 훌륭한 에스프레소로 만들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는 향이다. 곧이어 폐로 들어오는 담배연기만 아니라면, 나는 충분히 행복했을 것이다.
훌륭한 에스프레소. 어스름한 조명. 삐걱거리는 펜대. 오래 눌러 서서히 번져버리는 마침표. 이 대 팔 가르마가 유난히 멋있어 보이던 그 중국영화의 남우처럼 나는 되고 싶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클래식한 캐롤을 들으며 너와 춤을 추고 싶어, 라고 영화가 끝나고 내 점퍼의 털모자를 떼어내 그녀에게 씌워주며 말했다.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넌 담배를 피우지 않잖아? 그랬다. 그 남자배우는 정말 멋지게 담배를 피웠다. 우리의 춤도 고작 두 번으로 끝나버렸고.
홀로 가만히 앉아 있으니, 그 때 참 많은 말들을 주고받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 중 백만 분의 일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 모든 걸 기억할 것처럼 서로의 눈을 보고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입을 열었다.
간만에 고향에 내려간 선배는 부모님께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구들과의 술자리가 길어지며 자연스레 담배를 피우게 되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녘 길에 자신의 손에 들려진 담뱃갑을 보고 놀랐다. 열어보니 한 개비밖에 피지 않은 거의 새 것. 선배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다 우체통에 담뱃갑을 통째로 넣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집 앞에 나온 선배는 우체통에서 편지와 함께 담배를 꺼내는 우체부 아저씨를 보았다. 담배를 돌려달라고 조심스레 말하려는 찰나, 담배 개수를 확인하고 굉장히 좋아하는 우체부 아저씨를 보고는 차마 돌려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힘내세요란 응원을 하고 싶어질 정도로 기쁜 표정이었으니까.
그 이야기 소설로 쓰면 좋겠다.
선배가 먼저 쓰지 않을까?
그래도. 써서 나만 보여주면 되잖아.
알았어. 언젠간 써줄게.
언제?
글쎄. 왠지 잘 쓰지 못할 것 같아.
왜?
담배를 안 피우니까.
자기는 왜 안 피워?
음. 의지박약이라, 담배를 시작하면 끊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응, 자긴 엄살도 심해.
알아. 나 그런 거에 굉장히 약하거든. 절대로 못 끊을 걸 아니까 시작할 수가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왜 번역투야.
너를 많이 좋아해.
느끼해.
내가 느끼했다면 그녀는 유치한 구석이 있었다. 그녀는 분명, 자기라면 담뱃갑 귀퉁이에 ‘우체부 아저씨, 힘내세요’ 란 문구를 썼을 거라 말했다. 그녀의 동글동글한 글씨체는 귀여웠지만 생각할수록 그런 행동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녀의 서랍에서 발견한 담뱃갑을 봤을 땐 생각만큼 웃을 수 없었다.
이게 뭐야?
아. 아무 것도 아냐.
너 담배 피우기 시작했어?
아냐아냐. 그냥 갑자기 힘들어져서 한 번 펴 본 거야.
그녀도 나도 서로의 눈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없었다. 일 년 하고도 하나의 계절이 더 흐를 동안 우리는 잠시 서로의 곁을 떠났었다. 괜스레 머쓱해져 담뱃갑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우체부 아저씨, 힘내세요.’란 글귀를 보았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볼펜으로 여러 번 선을 그어 지워버린 흔적도 발견했다. 불빛을 반사시켜 깊게 패인 글자를 읽으려 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언뜻언뜻 보인 문장은 ‘나도 힘낼게요.’ 였다. 우리는 그 날 밤 산책을 나가, 우체통에 그 담뱃갑을 넣었다. 이 우체통을 여는 우체부 아저씨가 지독한 골초이기를 기도하면서.
갑자기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한다. 그 날의 너처럼 문장 군데군데 여러 번 그은 선으로 지워버린 단어가 수두룩하다. 이제 커피잔은 식었고, 나는 더 이상 쓸 말이 없어 커다란 마침표가 종이 한 가득 번져가는 걸 보고만 있다. 늦어서 미안하지만, 역시 난 이 이야길 잘 쓸 수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