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사람인데, 왜 느긋하지 못할까. 당진시립중앙도서관 김도희 사서 선생님은 눈 녹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군산 한길문고로 찾아오셨다. ‘1인 1책 쓰기 프로젝트’를 같이 하쟀다. 나는 망설였다. 글쓰기 수업은 내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고, 당진도 너무 머니까.
‘밥정’ 만큼 무서운 게 ‘대면의 정’. 서점 근처 식당에서 밥 먹고 한길문고로 돌아와 김도희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내 책을 쓰고 싶다.”는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 주고 싶다는 선생님의 희망에 계산기를 두드리며 시간과 거리를 따지던 내 마음은 몽글몽글해졌다. 그래서 도희 선생님에게 미래를 알려줬다(글쓰기 수업할 때만 예지력 있음). 해피엔딩이 될 거라고.
2023년 12월 16일. 당진에서 만난 열여섯 명의 선생님들은 자기 책을 펴낸 작가가 되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순간들을 이겨내고 너무나 혼자만의 일인 책 쓰기를 해냈다. 식구들과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출판 소감을 말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감격스러웠다.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돌렸다.
눈보라가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화물트럭 다니는 밤의 고속도로, 일교차 심한 봄밤에 서해에서 밀고 올라온 안개 때문에 앞이 안 보이던 고속도로, 폭탄처럼 차창으로 터지던 폭우 때매 겁먹고 달렸던 고속도로가 떠올랐다. 올해 2월부터 18번 오가는 동안 눈보라만큼은 안 만났는데, 컴컴한 자태로 몰려오고 있었다. 출판기념회 끝나고 군산으로 빨리 돌아가자고 결심했고 눈물은 쏙 들어갔다.
차창을 딱딱 때리는 눈보라 속을 달리며 뿌듯했다. 올해 나도 잘한 일 있었다. 1990년생부터 1950년생까지, 열여섯 명의 작가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일하고 애들 키우고 부모님 돌보며 쓴 글들이 세상에 닿도록 같이 고민했다. 한편으로 글쓰기 수업 시간은 즐거워야 하니까 나는 몹시 자주 유머 욕심을 부렸다. 당진 선생님들은 글도 잘 썼고 특별히 잘 웃는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