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1주일에 3회씩 순환 치료를 받았다. 봄에는 가슴에 뭐 있어서 수술하고, 여름에는 삼성서울병원에서 건강검진에 유전자 검사까지 싹 받고, 가을에는 전북대학교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받고, 겨울에는 겨드랑이를 15cm 절개해서 뭐를 꺼내는 수술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천 개의 질병 중에서 치료제가 있다고 밝혀진 질병은 지금까지 500여 가지에 불과하다. 원인을 아는 병보다 모르는 병이 더 많고 완치되는 병보다는 그렇지 않은 병이 더 많다.” - <죽음을 읽는 시간>, 이유진, 145P
2020년 초부터 얼굴이 붓고 몸무게가 점점 점점 점점 불어났다. 동네 병원, 대학병원, 서울의 유명한 한의원에 가도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귀 얇은 편 아닌 줄 알았는데, 누군가 확신에 차서 말하면 바로 흔들렸다. 예를 들면 이런 진단.
“지영아, 너 늙느라 얼굴 붓고 살찌는 거야. 갱년기 약 먹으면 직빵인데.”
“완경 되기 전에 생리 많이 하는 거야. 갱년기 검사부터 해.”
갱년기 검사는 작년에도 했다. 아니라고 나왔다. 어쩐지,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생리가 지나치게 힘차더라니. 올해도 10대 시절처럼 세 번이나 자다 일어나서 피로 물든 이불을 걷어냈다. 생리 때문에 겪은 고통을 어찌 필설로 다하랴. ㅋㅋㅋ
마흔 몇 살에 자궁 근종(생리혈 과하게 쏟아짐) 수술했다. ‘비포 앤 애프터’ 차이를 몸으로 느낄 수 없다고 하자 전북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선생님은 미레나(호르몬 방출 장치, 피임 기능, 생리혈을 줄여준다) 시술을 해주었다. 사용 기한 5년, 그거 제거할 즈음에 완경할 거라고 낙관했는데.
2021년, 여전히 생리는 활력 넘쳤고 나는 두 번째 미레나 시술을 받았다. 물건 많은 거 싫어해서 중형, 대형, 오버 나이트 생리대를 쟁이지 않고 한 통씩만 갖추고 지냈다. 옛날처럼 면 생리대 쓸까 고민도 하면서.
올봄부터 생리에 대한 참을성이 바닥났다. ‘미레나를 새 걸로 시술하면 생리 덜 하지 않을까.’ 머릿속에 들어온 가설은 확신이 되어 정기 검진받는 임산부 수준으로 산부인과에 들락거렸다. 5월에 갱년기 검사하고 아니라는 결과 나왔어도 7월에 또 갱년기 검사받고 싶다고 했다(누구나 미칠 때 있잖아요. 그렇다고 해주세요).
미레나를 바꿀 필요 없다는 의사 선생님은 피임약(28일 복용)을 처방해 주셨다. 다 먹고 나니까 또 생리가 쏟아졌다. 그게 화요일이었고, 목요일에 나는 참지 못하고 또 산부인과에 갔다. 선생님한테 미레나 안 바꿔줄 거면 피임약이라도 처방해 달라고, 생리하는 거 너무 힘들다고 차분하게 말씀드렸다(그래봤자 진상이지 뭐).
“피임약 끊으면 생리하는 거 당연해요.”
선생님은 타이르듯이 말씀하셨다. 몸의 상태를 봐야지 무턱대고 호르몬제를 처방하면 안 된다고 했다(이제 고만 오라는 뜻).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니까 현타가 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배지현 자매님한테 전화해서 “나 진짜 진상 맞지?” 몇 번이나 물어봤다. 자매님은 아니라고는 안 했다. 너무 부끄러웠다. 오후 3시에 맥주 마시면서 용어 정리했다.
미레나 - 2026년 6월 15일까지 금지어
산부인과 - 1년에 한 번씩만 가는 곳
PS – 올해는 정말 건강합니다. 작년보다 몸무게도 덜 나가고, 얼굴도 덜 부어요. 그리고 ‘미녀 작가’ 전에 저는 진짜로 왕관 쓴 ‘미녀’였더라고요.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