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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Aug 15. 2021

눈의 여왕이 알게 된 것

제13회 공유저작물 창작공모전 2차 – 글 부문

브런치 작가와 함께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응모작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그 거울과 조각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어떤 거울에 대한 것이다. 이 거울은 아주 먼 옛날 사악한 고블린이 만들어낸 것인데,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비추면 그 모습이 쪼그라들어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쓸모 없고 추한 모습은 더욱 과하고 일그러지게 보여주는 고약한 물건이었다.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 중 누군가는 “아 이건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야!” 하고 외칠 지도 모른다. 그렇다. 오래 전 안데르센이라는 이가 –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의문이지만 – 이 거울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상하게 세상에 알린 바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 존재를 알고 있다. 이 거울로 신과 천사를 조롱하고 싶었던 악마들이 거울을 하늘로 운반하다 떨어뜨렸고 수없이 많은 조각으로 깨어진 파편이 땅 위에 흩어져 사람들의 눈이나 심장에 박혀버렸다는 것과, 그것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왜곡시켜 오직 사물의 나쁜 면만 보게 하고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까지 전부 다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꺼낸 이유는 모두의 생각과 달리 이것이 단지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재했던 것이며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세상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사람들 눈이나 심장에 박힌 거울 조각은 아주 드물게 타서 없어지거나 밀려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 사람이 죽어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평생 그의 눈과 마음에 끝없이 나쁜 영향을 주었다. 한 사람에게서 빠져나온 파편은 물과 공기 속에 섞여 있다가 어느 순간 다시 다른 이의 눈이나 심장에 박혔고, 그렇게 처음과 비교해도 그 숫자가 거의 줄지 않은 채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더 잘게 부서져 더 많은 조각이 생겨나기도 했다.

  악의와 불만으로 서로를 대하는 사람들만 가득할 땐 무슨 일이든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곤란해진 인간들은 예의나 도덕, 법률같은 것을 동원하여 흐트러진 세상을 애써 정비해 왔다. 고약한 거울 조각이 눈과 가슴에 박힌 사람들도 세상에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선 거짓으로라도 자신의 모습을 꾸밀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세상은 적당한 평화와 따뜻함이 유지되어 왔다. 물론 위선으로는 다 가리지 못하는 끔찍한 추악함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여전히 많지만. 모든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일 뒤에는 사실 이 기이한 거울 조각이 있다는 것과,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눈 속에도 이미 그 조각이 들어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조금 덜 험하게 할 수 있을까, 다음 이야기를 계속 해보자.



두 번째 이야기

눈의 여왕


  눈의 여왕은 자신의 성에 앉아 있었다. 눈과 얼음, 바람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성은 차갑고 빛나는 텅 빈 방으로 가득했다. 성의 한 가운데에는 꽁꽁 얼어붙어 수 천 조각으로 금이 간 호수가 있었다. 여왕은 그것을 ‘이성의 거울’이라 부르며 그 위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했다. 모든 조각이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그 위에서는 어떤 복잡한 생각도 정연하게 정리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눈에서 태어난 여왕은 눈의 결정처럼 어느 한 군데 모지라지거나 일그러지지 않은 가지런함과 변함없음을 사랑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것은 흔치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대자연도 아주 긴 세월을 두고 보니 변했고 심지어 아주 크게 변했다. (베수비오나 에트나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아무리 둘러보아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눈과 얼음, 그리고 그녀 자신뿐이어서 그녀는 차갑게 그것들만 사랑했다. 끝없이 넓은 여왕의 성이 모두 텅 빈 방으로만 가득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완벽하지 않은 것은 사랑할 수 없는 여왕은, 하지만 때로는 외로웠고 누군가 자신처럼 영원한 것을 알아차리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곁에 두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고블린의 거울이 눈과 심장에 박혀서도 눈송이의 아름다움만은 놓치지 않던 소년 카이를 자신의 성으로 데리고 왔었다. 카이가 자신과 똑같이 완벽하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알아챈다면 얼음궁전에서 영원히 함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카이는 놀랍게도 여왕이 생각했던 ‘영원’이란 단어를 이성의 거울 위에 남겨두고 사라졌다. 영원한 아름다움을 찾았다면, 그곳 얼음 궁전을 떠날 리가 없는데 어째서 답을 찾아내고도 그 곳을 떠난 것인지 여왕은 계속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게르다라는 소녀가 찾아와 카이의 눈과 심장에 박혔던 거울 조각이 사라지게 한 이야기를 눈송이와 바람에게 들었지만 그것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법의 거울 조각을 없애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내가 모르는 영원한 아름다움이 또 있는 것일까?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의문을 붙들고 오늘도 여왕은 차가운 호수 위에 앉아 있다.



세 번째 이야기

어린 소녀


  진아는 오늘도 할머니와 놀았다. 할머니는 진아의 가장 다정하고 오래된 친구이다. 진아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랜 기억부터 함께 인형놀이를 해주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간식을 만들어 주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할머니가 언제나 있었다.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가 바쁘게 일하러 가도 할머니가 곁에 있어서 슬프지 않았다. 지금도 할머니는 진아의 제일 친한 친구이지만 요즘 할머니가 조금 이상해졌다. 진아가 장난감이나 간식을 양보해야 하는 일이 많았고 서툴지만 그림책도 진아가 읽어주기 시작했다. 함께 노래를 부르다 할머니가 졸려 하면 진아가 어른처럼 할머니를 토닥이며 자장가를 부르기도 했다. 엄마는 요즘 출근을 하지 않고 매일 집에 있는데 이유를 물으면 할머니와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어서라고 대답하신다.

  오늘은 할머니에게 장난감을 양보할 기분이 아니었는데 할머니가 너무 크게 심술을 부리는 바람에 결국 울어버린 진아는 엄마에게 할머니가 이상하다며, 우리 할머니가 아닌 것 같다고 하소연 했다. 곤란해 하던 엄마는 할머니가 진아에게 자주 들려주던 동화를 떠올렸다.

“진아야 너 고블린의 거울이 어떤건지 알지? 그게 눈이랑 마음에 박히면 그 사람은 자꾸 미운말을 하고 미운 행동도 하고 그런다고 할머니가 들려줬었잖아.”

“응 알아. 근데 그건 왜?”

“지금 할머니 눈이랑 심장에 그 거울 조각이 박혀 버렸어. 그래서 전이랑 다르게 행동하시고 진아도 자꾸 못 알아보고 그러는 거거든?”

“진짜야 엄마? 그럼 어떻게 해. 우리 할머니 이제 큰일 난 거야?”

놀란 토끼눈을 하고 묻는 진아를 보며 이제 됐구나 싶어진 엄마는 진지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

“아냐 괜찮아. 동화에서 게르다가 카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의 여왕 궁전까지 찾아가서 결국 거울 조각을 없애고 카이를 구한 것 기억나지? 진아가 할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을 변치 않고 갖고 있으면 결국 할머니도 괜찮아지셔.”

“정말이야 엄마? 그치만 나는 눈의 여왕 궁전이 어딘지도 모르고 거긴 너무 멀어서 나 혼자서는 찾아갈 수도 없는데? 그럼 할머니를 구할 수가 없잖아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는 진아 때문에 다시 다급해진 엄마는

“아냐! 어, 그러니까, 음, 그니까, 잠들기 전에 열심히 기도하면 꿈을 통해서 눈의 여왕 궁전에 찾아갈 수가 있대. 그러니까 진아가 얼른 꿈나라로 가서 눈의 여왕을 만나서 할머니를 구해달라고 해줘.”

미덥지 않은 눈에 졸음을 가득 담은 진아가 잠자리에 들자 되는 대로 둘러댄 핑계 끝에 가슴을 쓸어 내린 엄마는 내일 일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진아는 정말 꿈 속에서 얼음 궁전 입구에 서 있었다.



마지막 이야기

얼음궁전에서, 눈의 여왕이 드디어 알게 된 것.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눈의 여왕은 어느새 호수에 다다른 어린 진아를 보고 놀랐다.

“너는 누구지? 아니 그보다, 여긴 대체 어떻게 온 거니?”

“우와. 엄마 말이 맞았네. 저기… 그러니까 아줌…마는 눈의 여왕님이죠? 맞죠?”

믿을 수 없다는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전하는 진아의 이야기를 모두 듣자 이번에는 눈의 여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꿈길을 통해서 나를 찾아올 수 있다는 건 나도 몰랐구나. 나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고 있다니 놀라워. 그리고 카이와 게르다에 대한 이야기도 전부 알고 있구나? 하지만 어쩌지. 카이에게서 거울 조각을 빼 준 건 내가 아니었어. 게르다와 카이가 흘린 눈물이 그 거울을 태워 없애고, 밀어냈다고 듣기는 했단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건 제가 알아요. 카이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게르다의 진심 어린 눈물이 카이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 거예요.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처럼 아름답고 귀한 건 없다고 할머니가 그랬어요.”

“진심이라고? 그럼 그걸 다 아는 너는 무엇 때문에 나를 찾아 왔니? 너희 할머니는 내 성에 와 있지도 않은데?””

“그건 저도 잘 모르지만 눈의 여왕님이 원하는 단어를 써줘야 한다고 해서 말이에요. 제가 답을 알아요. 그러니까 정답은 ‘영원’이죠? ‘영원히 영원히’ 할 때의 그 영원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아직 그 글자를 쓸 줄 몰라요. 할머니가 읽어준 게 그림을 보면 기억이 나서 읽는 흉내는 얼마든지 내지만요. 그래도 쓰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말로 했으니까 괜찮다고 해주면 안되나요? 네? 제발요.”

진아는 작은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옷자락, 거기 그 글자가 써 있구나. 너는 답을 가지고 내게 왔어.”

“이거요? 이건 전에 할머니가 수를 놓아주신 건데, 이건 영원이 아니에요. 제가 그 글자는 모르지만 이건 제 이름이라서 읽을 수가 있거든요.”

“글자는 다를 지 모르지만 그것 역시 영원이라는 단어야. 그렇게 알면 된다. 그런데 그래도 너희 할머니는 전과 똑같이 돌아오지 않을거야. 그건 너희 할머니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야. 고블린의 거울이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아이가, 너보다도 더 어린 아이가 되어가는 할머니의 행동은 되돌아오지 않아. 하지만 미운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건 더 이상 고약한 거울 때문인 것은 아니니 안심해. 혹시라도 믿기 힘들다면 그땐 지금 네가 말한 대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줘 변함없이, 끝없이. 그게 바로 영원이란다. 그것만이 거울을 없앨 수 있는 것이고. 영원이란 것은 생각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여러 곳에 있는 것 같구나. 나도 이제 막 알았어. 이제 편안히 네가 온 곳으로 돌아가렴. 창 밖이 밝아지고 있을거야.”

  어리둥절해 하는 진아를 보며 눈의 여왕은 자기도 모르게 엷은 미소를 띄었다.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알 수 없었던 답을 찾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완전하고 영원한 걸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으로 완전하고 영원해진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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