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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May 13. 2016

어떤 안부

너에게서 연락이 왔어. 가끔 게임 메시지 같은 걸 보내서 싱거운 웃음을 짓게 하던 너에게 참 오랜만에 문자를 받았지. 잘 지내냐는 말에 반가우면서도 어쩐 일인가 싶어 내가 나오는 꿈이라도 꾸었냐고 물었더니 너는, 귀신같네라는 답장을 보내고 이내 전화를 걸어왔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너는 한참이나 힘든 일을 정말 모질게 겪어내고 있었다는 것이 떠올라 지금은 어떤지 괜찮은지 그런 것들을, 나는 물었어. 너는 더는 나빠지지 않은 상황과 부지런히 이뤄가고 있는 너의 성취를 이야기했지. 그런 너를 대견하게, 기특하게,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는데 대견하고, 기특하고, 다행스러운 네가 어쩐지 걱정스럽게 나의 안부를 묻는거야. 나는 짐짓 늘어버린 몸무게 따위를 이야기하며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전했지.


그 다음에 너는 익숙하고 당연하게 지나간 날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어. 우리가 함께 했던 때의 기억과 추억에서 시작해서 과거의 사람들의 이름을 호출하며 우린 둘 다 즐겁게 웃었지. 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오랜만에 듣는 어떤 이름들은 반가웠고 어떤 이름은 지긋지긋했어. 그리고 또 어떤 이름은, 무심코 넘기던 책장에 손이 베인 때처럼, 듣자마자 나를 멈칫 놀라게 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으니, 전화라서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걸 아마 너는 모르겠지?


그러다 너는 그 이야기를 꺼냈어. 이미 몇 번이고 했던 말이라 나는 네가 옛날에, 하며 말을 시작할 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수 있었어.


옛날에, 니가 말하려는 그 날에, 나는 말없이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 너의 옆모습을 보았지. 말로 다 못하게 쓸쓸해보여서 나까지 와락 가슴이 아파지는 그런 얼굴이었어. 그래서 고흐의 '슬픔'이란 그림이 떠올랐었어.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 그림의 제목은 '슬픔'일 수밖에 없겠구나, 슬픔은 이런 얼굴을 하고 있겠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했던 그 그림.


그날 나는 너에게도 같은 말을 들려줬어. 너의 옆모습이 슬픔의 얼굴이었다고, 슬픔에도 얼굴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모습이었다고. 그리고 아마 힘내라는 부질없는 말도 덧붙였겠지. 힘내라는 말은 시간 속에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너에게서 슬픔을 보았다는 말은 네가 아직 기억하는 것을 보면, 너를 어떻게든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었던 내 마음은 그런대로 성공한 모양이야.


불쑥 안부를 묻던 너도 나를 어쩐지 위로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었니? 그렇다면 너도 오늘 성공이라고 답할게. 전화를 끊고 나 마음이 따뜻해졌거든.


네가 지금은 많이 힘들지 않은 것 같아서 정말 좋아. 이제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고 그때처럼 슬픔의 얼굴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일이 너에게 결코 없기를 바랄게.


우리도 행복해질 자격이 있잖아.

있는 힘껏 행복해지자.




그림 '슬픔' 속의 여인의 이름은 시엔입니다. 고흐가 짧게나마 가정이란 것을 이루고 살았다고   있던 시기를 함께 보낸 여인이죠.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계 자체가 어쩌면 슬픔이기도 합니다.


시엔은 아이를 데리고 뱃속에 또 아이를 가진 채 남자에게 버림 받아, 그런 모습으로 거리에 나와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고흐는 연민과 사랑으로 그녀와 아이들을 끌어안고 잠시나마 그들과 더불어 행복했지만 그건 너무 짧았습니다.


고흐의 영원한 후원자이자 은인인 동생 테오는 이 관계를 반대했고, 테오의 후원 없이는 고흐도 시엔과 아이들도 현실을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가난하고 절망적인 현실 앞에 사랑은 급하게 등을 돌려 떠나고, 고흐는 죽을듯한 외로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죠. 시엔에게 얻은 성병이 인생의 동반자처럼 따라다녔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사연때문인지 더더욱 슬프게 느껴져서 못보겠으면서도 자꾸만 시선을 잡아끄는 그림입니다....


(오래 전에 책에서 읽은 내용이라 약간 틀린 내용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 워낙 강렬한 기억이었다는  감안하면 아마 별로 틀리지 않을거란 쪽에  무게를 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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