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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양선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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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Jun 21. 2024

체리 세 알

주말에 손자 손녀가 놀러 온다. 그래서 체리를 샀다. 마침 인근의 체리 농장을 지나는 길이 있어 직접 가서 샀는데 슈퍼에서 파는 수입 체리보다 더 싱싱하고 부드러웠다. 그래봤자 1kg 샀을 뿐이지만 체리를 먹어보고 맛있다고 했더니 농장 주인 할머니께서 덤으로 한주먹 넉넉히 따로 싸 주셨다. 그래서 집에 가서 팩에 들은 것은 씻어서 냉장고에 넣고 덤으로 주신 것은 남편과 나누어 먹었다.


다음날 아들네 가족이 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아이들에게 체리를 주었다. 아들과 며느리 것도 따로 담아 주었다. 남편은 ‘어제 먹었으니’하고 넘어가려다 접시에 담아서 남편의 고정석인 안마의자로 배달했다.


그날 저녁에 남편이 말했다.

“체리 다 먹었어?”

“아뇨 남았어요. 드려요?”

“아니야. 그런데 아까 왜 나는 세 개만 줬어?”

“에? 왜요? 더 먹고 싶었어요?”

“아니야. 그래도 그렇지.”

같이 담아 놓았으면 어차피 그 정도 먹었을 것이다. 아들 며느리도 애들과 같이 먹었으면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래서 내가 따로 담아 준 거였다.

“나 먹는 것도 아까워서 안 먹었는데 그래도 생각해서 드린 거예요.”

생각해 보니 체리 세 알이 뭔가, 내가 잘못하긴 했다.


다음 날은 아들네 가족과 유구에서 열리는 수국 축제에 가기로 했다. 나는 친구의 아들 혼인이 있어서 예식장에 들렀다가 거기서 점심을 먹고 오게 되어 아들네가 오면 남편이 점심 준비를 해야 되었다. 그래서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두부조림과 숙주나물을 해 놓고 생선은 굽기만 하면 되도록 준비해 놓고 나갔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서 곧바로 합류를 하기로 해서 남편에게 전화로 부탁을 했다.

“냉장고에 수박 잘라 놓은 것 좀 챙겨서 가지고 나와 주세요.”

남편은 이미 챙겼노라고 했다.


축제장에 가는 것은 길에서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다. 차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 그래도 어찌저찌 도착해서 꽃구경을 하다가 시원한 그늘에 앉아 수박을 먹었다. 체리도 있었다. 어제 남았던 것을 남편이 챙겨 왔나 보다. 날 더러는 왜 자기만 조금 주느냐 하더니 남은 것을 아이들 주려고 일껏 가져왔다. 할아버지 마음도 할머니 마음과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체리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사 먹고 나서 후식으로 아이들에게 주었는데 마지막 두 알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래서 남편과 내가 하나씩 먹었다.


내년 봄에는 체리 묘목을 사서 심어야겠다. 할아버지네 마당에서 체리를 따면 아이들이 좋아하겠다. 전원생활이 생각보다 불편한 게 많지만 그런 면에서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그러면 애들이 없는 날은 우리가 따 먹고, 애들이 오는 날은 애들 보고 따 먹으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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