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등학교 졸업 40주년을 기념하여 은사들을 모시고 송년회를 했다. 연락이 닿는 선생님 중 열 분 가까이 참석하셨고 예년의 송년회보다 많은 친구들이 참석했다. 그런데 동기 모임이나 송년회에 빠지지 않던 A가 보이지 않았다.
“웬일로 A가 안 왔지?”
"A는 이번 송년회에 자기 담임선생이 온다고 하니까 안 오겠대." A와 친한 B가 말했다.
"왜? 선생님이 오시면 더 오고 싶은 거 아닌가?"
"A는 ‘내가 왜 그 인간을 보러 가야 하느냐’고 하던데."
연락이 닿는 고교 시절의 은사를 모두 초청했고 그중 몇 분이 다. 사실 A의 담임은 몸이 좋지 않아서 참석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A를 볼 기회만 놓친 셈이라 나는 괜히 A의 담임이 원망스러워졌다.
B는 선생님들이 오신다니까 참석하지 않겠다는 친구들이 A말고도 몇 명 더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 때 A가 담임한테 많이 맞았던가?"
"아니, 그렇지는 않아."
"그럼 왜 안 왔을까?"
"상처받은 게 있겠지."
상처…. 중고등학교 때인 칠팔십년대에 남자 학교에서 체벌은 일상이었다. 체벌의 방법이나 빈도는 지금 생각하면 야만적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학생도 몇 대 맞는 걸로 상처받지는 않을 만큼 그 시절은 '동물의 왕국'이었다. '한 대 맞고 말겠지.' 하면서 일부러 학교에서 금하는 행동을 할 정도였다.
매와 같은 물리적인 폭력도 있었지만, 언어적인 폭력도 있었다. 행동이 아닌 자아에 대한 비난은 말할 것도 없고, 존재와 존재를 만들어 준 부모에 대한 모욕도 있었다. 구체적인 모욕의 표현이 어떤 것인지 여기서 주저리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굳이 예를 들자면 영화 '친구'의 명대사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같은 거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는 고등학교 시절의 한 장면이 있다. 수업 중에 C가 떠들었다. 선생이 C에게 교실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앞으로 나온 C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선생이 말했다.
"에이구... 생긴 거 하고는..."
선생은 때리려던 생각은 접었는지 C를 쳐다보던 눈길을 학생들에게 돌렸다.
"선생 생활을 30년 정도 하면 얼굴만 봐도 다 보인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선생은 혀를 한 번 차더니 C에게 자리로 들어가라고 했다.
나는 '저게 선생이 할 말인가?' 싶었다. 게다가 그날 그 과목은 '국민윤리'였다. 그때 나는 앞으로 국민윤리 시간에 그 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로 작정했다. 수업 시간에는 교과서만 읽었다. 그래도 점수는 좋았다.
그 시절 학교에서 선생은 절대 권력이었다. 당시에 권력자는 가르치거나 다스리는 자에게 함부로 상처를 주어도 괜찮았다. 선생은 학생에게 막말을 했고, 국가 권력은 국민을 함부로 고문하고 가두었다.
기업 조직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말이 난무했다.
“자네 학교 어디 나왔지?”
“그 지역 출신들이 좀 느려.”
“이래서 여직원을 안 뽑으려고 했어.”
오랜 기간 인사 담당 임원을 했던 분을 코칭했던 적이 있다.
“어떤 직장 선배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그냥 후배들이 불러만 주면 족하지요. 가끔 식사나 하자고 하고 어쩌다 한번 골프나 하자고 하면 좋겠습니다.”
“대개 후배들이 선배를 그 정도는 모시지 않나요?”
“아닙니다. 퇴임하고 후배들이 찾아 주지 않는 임원도 있습니다. 저녁 한 번 같이 하자고 불러주지도 않습니다. 경조사가 있어서 참석해도 고개 까딱하고 인사만 하고는 말 한번 붙이지도 않습디다. 그런 분들은 다 같이 차 한잔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는 말을 듣지도 못합니다. 그냥 쓸쓸히 집에 갑니다.”
“그분들은 왜 그렇습니까?”
“회사 다닐 때 말 함부로 한 사람들이 그런 대접을 받더라구요.”
어릴 때 일을 마음에 담아 두는 게 째째한가? 10대에 받은 상처가 환갑까지 잊히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면 실감이 날까? 물리적인 폭력이 남기는 상처는 아물지만, 언어 폭력이 남기는 상처는 오래 간다. 중고교생도 잊지 못하는 상처를 회사원은 잊을 수 있을까?
진화인류학자이고 듀크대 교수인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는 ‘다른 사람 종(種)이 멸종하는 중에 호모 사피엔스를 번성하게 한 것은 친화력이었다.’ 라고 했다. 생존의 필수 요소는 나와 다른 상대방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이었다.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호모 사피엔스는 친화력과 협력을 기반으로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했다. 그가 쓴 책의 제목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Survival of the Friendliest)이다.
그 윤리 선생은 송년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가끔 매는 들었을지언정 인기 있었고 정 많았던 선생님들이 참석하셨다. 다정한 사람이 오래 남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