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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코치 Aug 15. 2023

나의 원고료

***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다.


중학교 때였다. 우리 반에서는 나와 Y가 받았다. Y는 글을 잘 쓰는 친구라서 당연하게 생각되었지만, 내가 뽑힌 것은 뜻밖이었다.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몇 주 후에 담임이 나와 Y를 불렀다. 담임이 Y에게 말했다.

“서울시 백일장에 네가 나가게 되었다. 지난번 학교 백일장 글을 잘 고쳐 써와라.”


옆에서 나는 왜 나를 불렀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나는 서울시 대회가 아니라 전국대회에 나가라는 거 아닐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너는 지난번에 보니 글씨를 깨끗하게 잘 쓰더라. Y가 원고를 고쳐 써 오면 너는 그걸 원고지에 깨끗하게 옮겨라.”


필. 경. 사. 자존심이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당시는 교권이 학생의 자존심을 압도할 때였다. 감히 누구 앞에서 싫다고 하겠는가.


며칠 후에 Y가 원고를 가져왔다. 수업이 끝나고 Y와 나란히 앉아서 그의 글을 원고지에 옮겨 썼다. 네 글씨도 깨끗한데 왜 내게 대필을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툴툴거렸다. Y는 미안해서 안절부절했다.


글을 쓰다가, 아니 글씨를 쓰다가 그래도 나도 글에 기여하는 것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Y의 글은 나무랄 게 없었지만 문단 하나가 불필요하게 길었다. 그래서 그 문단을 두 개로 나누자고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Y도 별말 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


다 쓴 원고를 담임에게 제출했다. Y가 쓴 초고와 내가 쓴 원고를 나란히 놓고 보던 담임은 문단을 나눈 것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담임은 한 문단으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다시 쓰라고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문단이 앞부분이라서 고쳐 쓰면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옮겨써야 하는 것이니 미안했을 것이다. 담임은 별말은 없었지만 탐탁하지 않은 눈치였다. 나는 ‘마음에 안 들면 자기들이 다시 쓰던가.’ 하고 생각하면서 다리를 떨고 있었다.


Y의 글은 서울시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입선이나 가작 정도였던 것 같다. 상장과 함께 상품으로 노트를 열 권 정도 받았다. Y는 상품으로 받은 노트를 내게도 나누어 주었다. 서너 권쯤이었나 보다.


그 노트는 내가 글을 쓰고 처음으로 받은 원고료였다. 그런데, 그걸 원고료라고 할 수 있을까? 글쓰기로 받은 돈이 아니라 ‘글씨쓰기’로 받은 재화이니 말이다. 글씨를 써주고 받았으니 대서료인가? 그래도 문단 나누기를 한 번 했으니 원고료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

“박 과장, 알바 하나 해 볼래?”


A선배의 말이었다. 당시 나는 짧은 유학을 마치고 어느 경제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A선배는 강의도 잘하고 글도 잘 썼다. 원고 청탁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이런저런 회사 사보의 칼럼이었다. 대개 경영 용어나 새로운 경영 기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매월 연재하는 원고도 몇 건이 있었다.


A선배는 그달에 자신이 쓰던 연구보고서의 마감이 있었다. 바빠서 그랬는지 내게 자기 대신 글을 써보라는 것이었다. 즉, 글은 내가 쓰지만 A선배의 이름으로 실리는 것이었다. 칼럼 길이는 원고지 20매였고 당시 원고료는 원고지 한 장에 1만원이었다. 20만원을 반씩 나누자고 했다. A선배가 쓰려고 했던 글은 마침 내가 잘 알고 있는 경영기법에 대한 글이었다. 내가 초고를 쓰고 선배의 검토를 거쳐 사보에 실렸다. 다음 달 원고료가 들어왔고 선배는 내게 10만원을 주었다. 그렇게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사보 칼럼을 두세 차례 썼다.


그렇게 쓰다 보니 슬며시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글은 내가 다 쓰는데 왜 선배가 절반이나 떼어가지? 선배가 검토를 해 준다고 하지만 글이 훌륭해서 별로 고칠 것도 없는데? 물론 선배 이름 보고 들어오는 원고이지만 배가 아팠다.


이후 A선배가 원고를 쓰자고 했을 때 소심한 반란을 일으켰다.


“선배님, 그 금액은 인건비도 안나옵니다. 배분율을 조정해 주시죠.”

“그래? 얼마로 할까? 6:4?” 선배는 쾌히 인상해 주려고 했다.

“에이, 제가 다 쓰잖아요.”

“그럼 얼마로 할래?”

“8:2요. 아니면 안 할랍니다.” 쎄게 나갔다.


나는 그달에 선배가 바빠서 원고 쓸 시간이 없는 걸 알고 있었다. ‘지독한 놈이네.’ 선배는 할 수 없이 8:2로 하자고 했다.


그런 조건으로 두 번인가를 더 썼다. 그러다가 칼럼 연재가 종료되어 선배가 써야 하는 원고의 수가 줄어들었다.


“박 과장, 이제 내가 써도 되겠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나는 짭짭한 일거리를 잃었다. 내가 일거리를 잃은 이유를 비즈니스적으로 분석하면 브랜드의 위력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신발을 살 때 이왕이면 나이키나 아디다스를 사는 이유는 브랜드 때문이지 신발을 만든 공장 때문이 아니다.


***

이 년 동안 브런치에 쓴 글을 책 원고로 묶어서 출판사 몇 곳에 보냈더니 출판하겠다는 곳이 있었다. 출간 계약을 하고 선인세를 받았다. 노트 수백 권이나 사보 원고 수십 편의 원고료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초고를 출판사에 보냈고 편집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필경사와 유령 칼럼니스트 출신의 저자가 쓴 책이 서점에 진열될 날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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