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공개념이 불편한 이들이 많나보다.
작년 말부터 말이 많았던 개헌 이슈가 드디어 가시화되었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출하고 국회 협의가 시작된, 오늘까지 여전히 토지공개념에 대해 말이 많다. 기사에서 토지공개념에 대해 '사회주의','공산주의' 단어가 나오는 걸 보니, 특히 토지공개념에 대해 불편한 이들이 많은가보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토지공개념이 사회주의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도가 부족하거나, 그냥 토지공개념이 싫거나.' 그 두가지 경우 중 하나일 터.
토지공개념이란 넓게, 토지(土地)는 공공재적인 성격이 크기 때문에 공적재화로서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쉽게 말하자면, 정부가 땅에 대해서 규제를 하겠다는 의미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끌벅적한 토지공개념은, 「택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제」 이 세 가지 법률을 말한다. 넓은 개념으로 따지고 보면, 기존에 있는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는 말 할 것도 없고, 공공택지, 공공기반시설부터 그린벨트까지 토지를 대해 국가가 행하는 대부분의 행위가 토지공개념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다.
「택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 - 주택 공급이 목적인 땅은 기준 이상 가지지 말아라.
「토지초과이득세법」 - 놀고 있는 땅에서 (비이상적으로) 초과이득이 발생하면 세금을 내라.
「개발이익환수제」- 땅 옆에 개발사업으로 땅 값이 오르면, 어느정도는 세금으로 내라. 이번 개헌의 핵심
( = 개발부담금)
1. 토지공개념이 공산주의적 발상?
단편적으로 보았을 때, 토지·부동산을 자유로운 시장원리로 돌아가게 두지 않고, 정부가 간섭한다는 내용만 보고 공산주의적 발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단편적인 시야로 바라본 결과다. 오히려, 토지공개념의 씨앗은 자본주의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되었고, 미국의 '헨리 조지'로 이어져 구체화되었다. 참고로, 헨리 조지는 토지국유화를 주장한 마르크스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토지 사유재산을 지지했던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데이비드 리카도를 비롯한 여러 자본주의 경제학의 대가들은 오히려 토지 사유권 보장권을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공개념은 절대로 토지 사유권을 반대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격투기 선수라 하더라도 경기장과 룰이 없는 곳에서 싸운다면 폭력배에 불과하다. 그들이 각광받고 최고의 선수 일 수 있는 이유는, 글러브와 심판, 그리고 최소한의 룰이 있기 때문이다. 토지공개념은 자연상태로 방치되어 투기 범벅이 된 부동산 시장에 최소한의 룰을 제공하는 개념이다. 룰을 통해 선수들이 안전을 보장받고 UFC가 흥행하는 것 처럼, 토지공개념을 통해 자본주의 동력이 강화되고, 체제가 유지될 것인데, 이를 더러 공산·사회주의적 발상이라니.
2. 귀찮게 정부가 자꾸 토지에 끼는 이유 ?
정부가 토지 시장에 개입해야하는 이유를 최소 10가지 이상도 댈 수 있다. 토지는 단순히 학교 경제시간에 배운 '재화와 용역'의 개념과는 다르다. 자본주의의 대부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재화와 용역'의 가격이 결정된다고 한다. 토지 또한 마찬가지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다만, 미친듯이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만 빼고.
토지는 일반 재화에 비해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토지는 만들어낼 수 없다. (부증성)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영속성)
토지의 위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고정성)
이 땅이랑 똑같은 땅이란 이 세상에 없다. (개별성)
토지는 따로 떼어낼 수 없다. (연접성)
이 특성들은 자기들끼리도 영향을 주면서 일반 재화와 다른 독특한 양상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토지가 일반 재화와 다르게 차별되어 관리되어야 하는 이유다. 일반적인 재화는 수요가 높아지고 가격이 상승하게 되면, 공급자가 더 많은 재화를 팔기 위해 공급을 늘리는 반면, 토지는 공급을 늘릴 수 없다. 만지면 금이 되는 마이다스의 손은 들어봤어도, 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는, 하느님 밖에 들어보질 못했는데, 그 분은 더이상 땅을 만드실 생각은 없어보인다.
3. 내 땅에서 내 돈 버는데 무슨 잘못이냐고?
여기 서울 강남에 신이 내린 땅이 있다. 강남 땅은 한정되있고 공급량을 늘릴 수 없으니, 가격은 미친듯이 상승해서 조물주 위에 군림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땅이 밑으로 꺼질 일도 없고, 포르쉐, 페라리처럼 몇 번 탔다고 값이 깎이는 감가상각이 있는 것도 아니며, 세상 어디에도 여기랑 똑같은 땅이 없으니 너도나도 돈만 생기면 땅부터 사고 본다. 솔직히 배가 아프고 너무 부러워서 그냥 뺏어버리지! 하는 마음도 들지만, 안타깝게도 토지공개념은 건물주를 조물주 밑으로 끌어내는 법이 아니다.
내가 그간 열심히 번 돈 가지고 은행에 넣어두긴 적적해서 땅을 샀다. 그 땅에 건물도 세우고, 1층에 세를 내준 자그만한 상가에는 치킨집이 들어왔다. 다달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세도 은근히 짭짤하다. 그래도 아직 하던 일 그만두고 골프만 치러다닐 정도는 아니라서 일은 계속해야겠다고 다짐하던 순간, 오! 땅에 큰 도로가 생긴단다. 소문은 금방 퍼지고 땅 값이 10% 뛰었다. 좋은데!? 또 내년에는 지하철역도 새로 생긴다고 해서 20% 더 뛰었다. 헐. 영화관 딸린 멀티플렉스가 들어선단다.
토지공개념이 들어오는 순간은 바로 이때다. 당신이 땅을 사서 건물을 지어서 세를 받건, 농사를 짓건 정당한 토지 이용가치에 대해서 아무런 관여하지 않는다. 문제는, 땅 값이 오르는 동안 당신이 땅에 대해 무슨 노력을 했냐는 거다. 도로를 만든 것도, 멀티플렉스를 짓는 것도 다 당신이 한 일이 아니다. 땅 값이 올라서 당신이 돈을 번 건, 한 마디로 '운'이 좋아서다. 때문에 토지공개념은, '아무런 노력도 안하고 땅 값이 올랐으면, 최소한의 세금으로 좀 내라'는 얘기다. 한 마디로, 땅에 대한 불로소득을 때려잡는 법이다. 그 동안은 목 좋은 곳 하나 잡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사고 밑바탕에서는 불로소득에 대한 기대가 잔뜩 깔려있다. 그렇다면 이제 토지공개념이 싫은 사람들의 정체를 알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토지 공개념을 반대하는 이들은 첫 번째, 잘몰라서 반대하는 사람들. 두 번째는 앞으로도 계속 불로소득으로 골프치러 다니고 싶은 사람들이다.
4. 불로소득이 거대화되면 될 수록, 자본주의는 퇴보한다.
TV에서 한 연예인이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뜨려도 약 40% 정도가 세금으로 떼인다는 말을 들었다. 도박도 제 나름의 노력을 해서 딴 돈에도 세금이 들어가는데, 하물며 내가 내 나름의 안목으로 땅을 사서 차익 좀 보겠다는데, 불로소득이 왜 잘못됬냐고?
과거 봉건시대에는 영주(양반)들이 땅을 가지고 있고, 소작농들이 땅을 빌려서 일구고 거름주고 봄이되어 물을 대고 모내기를 하면 가을에 땀 흘려 수확을 한다. 이렇게 번 돈으로 임대료를 낸다. 땅을 많~이 가진 양반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돈을 벌어서 그 옆에 땅을 더 산다.
이런 사회상이 양반입장에서 나빠보이지는 않는데,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바람직한 사회상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의 부동산시장을 내버려두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저렇게 된다. 소수의 건물주들은 더 건물을 사고, 땅을 사며,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나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건물에 살면서 임대료를 지불한다. 그렇게 임금의 대부분을 임대료로 지불하고나면 조선시대 소작농과 무엇이 다른가. 과연, '내일도 활기차게 일을 하자!'고 마음을 먹을 수 있을까. 자본주의는 정당한 노동과 이에 대한 대가(돈)로 굴러가는 체제다. 토지공개념을 통해 불로소득을 최소화하는 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노동을 장려하는 것이고, 자본주의체제의 유지에 힘 쓰겠다는 계획의 일환이다.
개헌안은 발의되었고, 의회를 거쳐, 필요하다면 국민투표로, 그리고 큰 이상이 없다면 40여년만에 개헌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번 개헌에서 토지공개념이 들어가는 것은, 자본주의체제를 끝까지 유지하겠다는 우파 정부의 아주 치밀한 속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