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으로서 생생히 살아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누가 말했더라.)
나는 일부러 저 못을 뽑지 않는다. 지금은 별로 쓸모가 없고, 흉하기도 하지만 저 못에는 나에게만 보이는 이야기가 걸려 있다. 자주 바라보게 되진 않지만. 간혹 우연히 저 못을 보게 될 때면, 심호흡을 깊게 내쉬며 “괜찮아.”, 나에게 마음속으로 말해본다. 그러니까 마치 국민의례라도 하듯이. 나에게는 특별하고 경건한 의미가 있는 못이다.
괜찮아. 천천히 해. 못해도 돼. 망쳐도 돼.
사진 속의, 저 못의 역사는 유구하다. 원래 저 자리에는 작은 시계가 걸려 있었다. 색깔은 검은색이었고, 덮개가 왼쪽 축으로 열리는 플라스틱 괘종시계였다. 시계의 아래쪽에는 금색 칠이 되어있는 동그란 추가 매달려 있었는데, 그 추는 어느 순간에 보더라도 늘 빠르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다소 어지럽고, 경박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쉼 없이 진자 운동을 했다. 시간을 나타내는 위쪽 본체에는 얇은 알루미늄으로 된, 고딕풍 디자인의 시침과 분침, 초침이 있었다. 시침과 분침은 검은색이었고, 초침은 잔인하리만치 새빨간 색이었다. 초침은 움직일 때마다 제법 큰 소리를 냈다. 째깍. 째깍. 째깍.
초침이 째깍째깍 흘러가는 소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초조하다. 그 시절의 초조함이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아직까지 나의 영혼에 살아 숨 쉬고 있다니. 너무나 놀랍고 오싹한 이야기다.
열일곱. 순수했던 소년을 지나 예민한 감수성이 꽃피는 청년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그 몇 달, 몇 해는 인생에서 두고 두고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매주 토요일마다 이제 고등학교에 막 입학한 파릇파릇한 1학년 학생들에게 국영수 과목을 돌아가며 시험을 보게 했었다. 그 시험은 특색고사라고 불렸다. 정말 특색 있는 학교였다. 작은 비율이었지만 특색고사 시험 결과는 고스란히 내신성적으로 반영되었다. 나는 늘 신경증적으로 스트레스를 느꼈다. 그러니까, 특색고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초조했다.
공부를 해도, 하지 않아도 불안했다. 늘 미세 플라스틱 같은 죄책감 조각이 이물감을 일으키며 나의 내면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1학년 정도까지는 그 미세 플라스틱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더이상 이런 공부, 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용감하게 하지 않아서 그런 작은 시험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 것 같지만, 사실 언제나 나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겉으로는 세상을 다 짊어진 반항아 같은 눈빛을 하고, 온 몸에서 다크한 기운을 봄 아지랑이처럼 뿜으며 다녔지만 나도 그저 세상이 두려운, 순진한 한 명의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그 스트레스는 아마 졸업식이 끝나고 몇몇 친했던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흔들리는 필름카메라 사진을 찍고, 뒤돌아 교문을 나설 때까지도 계속 되었을 것이다.
나는 첫 번째 특색고사에서 만점을 받았었던 것 같다. 물론 쉬운 난이도의 수학 문제 몇 문제를 푸는 간단한 쪽지 시험 같은 것이었지만 동기생 모두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일제히 처음으로 본 시험이었고, 의외로 만점을 받은 학생이 반에서 몇 명 안 되었기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과연 이 학교에 온 친구들의 머리 수준이 어느 정도일까. 모두 내심 궁금해 하던 차에 본 첫 시험이었다. 서로의 공부 실력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도 감을 잡을 수 없는 백지 상태의 긴장감이 있었다. 친구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새로 생긴 사립 고등학교에 들어왔다는 기쁨과 설렘, 기대감, 두려움이 옅은 추상 수채화처럼 뒤섞여 채색되고 있던 시기였다. 이런 맥락에서 첫 특색고사의 결과를 발표하던 순간은 확실히 나에게도 프림미엄 각인 효과가 있어 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이 3월이니까. 딱 이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20년도 훨씬 넘은 어느 봄날. 아직 겨울의 냉기가 남아 있는 초봄이었지만 그 날은 교실 창가, 긴 커튼 넘어 유리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하고 눈부셨다.
다 맞은 사람 일어나.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모두 박수. 짝짝짝짝짝. 앉아. 한 개 틀린 사람 일어나. 조금만 더 열심히 하자. 앉아. 두 개 틀린 사람. 이런 시험을 두 개씩이나 틀리면 어쩌자는 거냐. 휴.... 세 개 틀린 사람 밑으로 다 일어나. 너넨 손바닥 한 대씩 맞아야겠다. 다 앞으로 나와. 짝. 짝. 짝. 짝. 6반은 만점자가 열명도 넘었다는데. 분발하자. 약간의 픽션과 각색을 더 해 첫 특색고사의 시험 결과를 발표하던 분위기는 이런 식이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어쩌다가 좋은 사립 고등학교에 들어왔는데 첫 시험부터 만점으로 시작하다니. 그 날 하교하는 길, 1호선 역사 야외 플랫폼을 향해 내려가면서 나는 정말 무척 설레고 신이 났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신나게 리듬을 타며 계단을 내려갔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다음 특색고사였던가, 얼마 뒤의 특색고사였던가. 다음 날 영어 특색고사가 있었던 어느 금요일 밤. 나는 친구와 함께 저 사진 속의 못이 박혀있는,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방에서 함께 잤었다. 그 친구의 집이 학교에서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금호동이어서 시험공부에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 함께 잔 것이다.
늦은 밤. 아직 새 옷 티가 나는 깨끗한 교복을 입은 우리는 내 방에 들어와 누워버렸다. 과연 책상에 앉기는 했을까. 어쨌든 방에 들어와 얼마 못가 누웠을 것이다. 너무나 피곤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등교해서 야간 자율학습까지 하고 집에 왔으니 피곤한 것이 당연했다. 눈은 너무나 무겁고 몸은 노곤했다. 우리 조금만 쉬었다 공부하자. 그럴까. 벽 높은 곳, 못에 걸려 있는 검은색 미니 괘종시계를 수시로 보면서, 두려워 떨며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었다.
자냐? - 드르렁. - 자네. 아 모르겠다. 조금만 쉬자. - 야. 일어나 열두 시야. - 아.. 나 너무 피곤해. 조금만 더 자자. - 야 이러다 우리 밤새 자는 거 아냐? - 우리 인간적으로 두시에는 일어나자. - 그래. 두시까지다. - 째깍. 째깍. 째깍.
야! 일어나. 세시야. - 아 진짜? 나 너무 피곤해. 잠깐만. 알았어. 잠깐만. - 야? 네신데? 우리 어떡하냐. - 아 진짜. 아.. 미치겠다. - 야! 여섯 시 반이야..... - 아 진짜? 아 @#$@# - 째깍. 째깍. 째깍.
그날 우리는 이러했다. 나는 계속 긴장한 채 그렇게 깼다 잠들었다를 반복했다. 정말 느낌에는 거의 30분마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던 것 같다. 옷도 아마 교복을 입은 채였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불편하고 긴 선잠이었다. 밤이 새도록 잠도 제대로 못 잤고, 공부도 안 했다.
그 날 아침 시험 시간은 잠과의 사투였다. 너무도. 너무나도 졸렸다. 거의 비몽사몽 간에 시험을 봤던 것 같다. 스트레스 상태였고 너무 긴장도 많이 했었다. 시험 보는 동안 몸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초조해했었다. 지문도 오래 보는 타입이어서 문제도 다 못 풀었던 것 같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잘못은, 시간에 쫓기며 급하게 마킹하다가 답을 다 기입하지도 못했던가, OMR 카드를 밀려 썼던가.
내가 답을 몰랐던 게 아니라 시간에 쫓기며 마킹하느라 너무 긴장해서 밀려 썼노라, 시험지에는 답을 썼는데 OMR 카드에는 시간이 없어서 못 적었노라. 그 시험의 감독자이자 채점자이자 옆반 담임이기도 했던 영어 선생님께 사정을 말해 보았지만, 사람 좋아 보이셨던 선생님은 의외로 너무나 단호하고 엄격하셨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때는 더욱 맹렬히,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깊고 깊게 절망했었다. 그러한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무척 억울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작은 시험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처참했던 시험으로 각인되어 있다. 돌아보면 너무나 작은 시험이었고, 사실 인생 전체를 조망해 보았을 때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리고 수십 년 후.
내일은 스터디 모임에서 발제를 해야 한다. 저명한 학자의 영어 원서의 한 챕터를 읽고 요약해서 읽어나가며 진행해야 하는 발제다. 다소 전문적인 배경지식도 필요한 책을 읽어나가는 스터디라서 그리 쉬운 발제는 아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난 준비를 하지 않았다. 초조하다. 이제 더 이상 째깍째깍째깍 초침 소리가 나지 않지만, 그것은 이제 내면화되었다.
이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떨리고, 초조하고, 불안하고, 걱정되고, 이런 자신이 싫고, 한심하고, 이 세상이 두렵다. 내 인생에는 다양한 억압이 존재한다. 정말 난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지 않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겨 버릴 수 있는 하루하루다. 한 사람이 자신을 꽃피우기까지는 수많은 양상과 자신 안팎의 억압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속에서 떨며 두려워하는 자신에게 따스한 포옹을 해 줄 필요가 있다. 쫓기지 말자, 쫓기지 말자. 내가 되자. 자유롭자.
자아를 꽃피운다는 것은 꿈과 희망과 같은 것보다 오히려 내 안과 밖의 억압과 폭력, 두려움과 절망과 같은 것들과 더욱 깊고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 억압을 이기고 가장 자신다운 자신이 되는 것, 그처럼 용감하고 아름다운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어느 초록빛 언덕에, 만개한 나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물론 미래 어느 날 내가 꼭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그보다 오늘 자유롭고 싶다. 용기 내 나를 짓누르는 두려움을 이김으로써 오늘, 바로 오늘 자유롭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니 좀 공부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되었다. 아직 다섯 시간은 공부할 수 있다. 알 수 없는 이 두려움들을 이기고 공부 그 자체와 의미에 몰입하면 잠을 안 자도 안 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오랫동안 그 자리에 박혀 있는 못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말을 건다.
너 왜 공부하고 싶어 하니.
왜 공부하고 있니.
왜 그렇게 가고 있니.
자유롭자.
아름답자.
에필로그.
글을 쓰니 다시 피곤하군. 잠깐만 쉬었다 하자.
째깍. 째깍. 째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