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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Nov 17. 2024

On a Saturday



F/W은 알러지성 비염의 시즌이다. 물러설 줄 모르며 기세등등한 콧물과 재채기. 휴지통은 문자 그대로 휴지로 가득찬다. 말간 콧물이 온몸의 진을 빼면 밥을 차려 먹을 힘도 없어 컵라면과 주전부리로 급히 허기만 채우고 만다.


거울을 보니 눈 안쪽까지 빨갛게 부었다. 어른이 되고부터는 걸린 적이 거의 없던 눈병이었는데. 엊그제부터는 두통도 있었다. 누가 왼쪽 두개골에 작은 드라이버를 꽂아 놓고는 몇 초마다 반 바뀌씩 돌리는 것 같았다.


한 번에 확 아픈 것도 아니고, 불규칙적으로 느껴지는 작은 고통. 그렇게 이삼일 간 지속되니, 모종의 저항할 수 없는 커튼 뒤의 존재로부터 골림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심리적으로도 지쳐갔다. 비염-편두통-건조해지는피부-눈병및각종가려움-안좋은식사-면역력저하-비염. 그야말로 연쇄적 악순환이었다.


그렇게 기력이 쇠해가며 오늘도 기진맥진 누워만 있다 늦은 오후 쯤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캄캄한 암흑이었다. 휴대폰을 찾아 집어들어보니 9시 5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어? 교회 가야하는데. 큰일 났다. 다시 제대로 보니, 밤 9시 50분이었다. 아.. 아직 토요일이구나.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무엇에 그렇게 쫓기고 있었는지.



그러도고 여전히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응차. 겨우 몸을 일으켜 형광등을 켰다. 잠깐 해야 하는 연락을 확인하고 짧은 메시지들을 보냈다. 그리고는 다시 허리를 펴 누웠다. 방안은 형광 빛이 멀쩡하게 감돌았지만 또 암흑이었다. 울렁거리는 영혼은 차치하고 머릿속을 찌르는 듯한 두통에 절로 새어나오는 욕설을 꾹 삼키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핸드드립 필터지를 사야했다. 이 버거운 전장에서 무형의 적군을 날려 버릴 아이스 커피를 내리기 위해서는 원두 기름을 끌어안고 내려오는 에스프레소가 아니라 깔끔한 핸드드립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킬 힘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의 힘이 없어 괴로워 하고만 있었다.



한동안 냄비에 눌러붙은 누룽지처럼 바닥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러다가 짧은 영상 하나를 보았다. 어떤 젊은 유럽인이 피아노맨을 연주하더니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까. 기운이 생기기 시작한 게.


이츠 나인 어클락 온 어 세러데이~


목에 매단 하모니카를 불고, 손으로는 피아노를 치면서, 시와 같은 가사를 외워서 힘차게 부르는 저 여자. 시간을 보니 10시 48분. 마트까지는 자전거로 7-8분. 불현듯 나도 하모니카를 불고 싶어졌다.


일어나 남방을 찾아 입고, 얇은 군청색 트렌치 코트를 입고 현관문을 열고 뛰어 내려갔다. 땅- 자전거 거치대를 발로 걷어차고 올라타 발을 굴렀다.



Son, Can you play me a memory?~

 

이 익숙한 동네. 유년시절, 용진이랑 팽이도 치고, 종만이랑 축구공을 걷어차다가 슈퍼 유리창을 깼던 나의 동네.


대충 자전거를 세워놓고 은행강도처럼 마트에 뛰어들어갔다. 원두 커피 내리는 필터 있나요? / 아 고맙습니다. / 다른 카드 없으세요? 카드사에 확인해 보라고 하는데요? / 아.. 죄송합니다. 왜 그런지 몰라서 다음에 살게요.


재발급한 카드의 사용 미등록 이슈였다. 혹시 큰 편의점에서 필터를 팔까, 다시 천천히 자전거를 굴렀다. 필터는 없었고, 1+1 하는 누네띠네 두 개만 집어들었다.


집을 향해 선선히 달리는데, 비 온 뒤의 가을 공기가 너무나 상쾌했다. 두통조차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석이랑 갔던 3Dol 후라이드 치킨집은 아직도 건재하구나. 대여섯 팀의 사람들이 가게 앞 야외 테이블에서 가을 공기와 함께 주말의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누네띠네와 함께 에스프레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콕콕 찌르는 두통을 참아가며 쓰고 있다. 무한 재생되고 있는 피아노맨과 함께.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워낙 좋아했던 노래였다. 그 익숙하게 달콤하고 힘있는 멜로디가 힘이 되기도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정확히 힘을 얻었던 지점은, 가녀리게 느껴지는 떨림이었다.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한 소절 한 소절 가사를 외워 부르는 작은 대목에서, 인생의 창의성으로 나아가는 용기와 힘을 얻었다. 저렇게 가녀린 여자도 힘차게 하모니카를 불며 노래를 부르는데. 나는 이 말 같은 허벅지를 가지고도 이렇게 빌빌거리다니. 죽도록 부끄럽고 자신이 미웠다.


인생의 의미는 보전이 아니라 다 태워버리고 창조하는 일에 있을 것이다. 갈망하는 쉼조차 창조성 안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방탕과 파멸을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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