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공부는 ‘관심과 질문’이다.
국어에서 가장 어려운건 역시, ‘시’였다. 듣기엔 너무 좋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김영랑 시인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다. 가만히 읽으면 너무 좋다. 그냥 졸졸 흐르는 냇물이 떠오르고 하늘이 떠오른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속삭이는 햇발같이’는 우선 의인법이다. ‘~같이’의 반복은 대구에 해당된다. 운율형성을 위한 구절이다. 1행과 2행의 대구법이 적용되었다. 3행의 ‘봄’은 계절적, 공간적 배경을 의미한다. 이 시의 주제행은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리고 싶다는 행이다. 화자가 동경하는 대상인 하늘이고, 시상이 집중된 시어인 하늘은, 부드러움을 나타내는 울림소리다.
핵심정리하면, 갈래는 서정시, 자유시에 해당된다. 성격은 감각적, 음악적, 서정적, 낭만적이다. 운율은 내재율이고, 계절적인 배경은 봄이고, 공간적 배경은 길이다. 시의 제제는 봄과 하늘이고, 주제는 봄 하늘에 대한 동경이다. 표현상의 특징으로 우리말을 잘 다듬어 사용하여 시어가 밝고 운율감이 잘 느껴진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의인법, 직유법, 대구법, 반복법, 은유법 등 다양한 표현기법이 포함되어 있다. 끝으로 시어의 상징성이 가장 중요하다. ‘시의 가슴’의 함축적 의미는 곱고 순수한 감정이 담긴 마음, 시의 정서가 가득한 마음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 즉 봄하늘의 이미지와 유사하다.
정말 좋아하는 시였다. 교과서를 한번 읽으면서 가장 좋아했던 시였다. 많이 읽었다. 그런데, 1학년 때 송규흠 선생님은 이 시를 외우지 못하면 많이 혼내셨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는 그렇게 잘 외우면서 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을 외우지 못하냐고 타박하셨다. 2학년때 김미화 선생님은 그보다 나았다. 좋아하는 시 한두가지는 꼭 외우고 다니는게 정말 멋진 학생이라고 하셨다. 3학년 김동완 선생님은 밑줄긋기의 제왕이셨다. 참고표시와 암기표시를 구분하시는 분이셨다. 세분의 각기 다른 선생님들과의 국어수업은 대체로 즐거웠다. 송규흠 선생님은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황순원의 소나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흥미진진한 수업시간에 넋놓고 들으면서 무의식중에 ‘볼펜 똑딱, 똑딱, 똑딱 소리’를 내는 바람에 볼펜을 압수당한 적이 여러번 있다.
의인법, 직유법, 대구법, 반복법, 은유법이 일상생활에 필요한지를 떠나 단어가 너무 어려웠다. 한문 수업이 같이 있긴 했지만, 쉬운 말이 아니고 그말이 그말 같았다. 읽기 능력이 탁월하지 않아서 ‘문제 - 답, 문제 - 답’에 익숙한 나로서는 긴 글을 읽고 푸는 국어 수업이 특히 어려웠다.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의 시와 유사한 시를 펼쳐놓고 차이점과 공통점을 찾으라는 문제는 정말 ‘그냥 틀리고 말자’고 생각했다. 그치만, 소설과 기행문, 연설문, 띄워쓰기 등은 중학교 국어수업이 아니면 배울수 없는 것들이다. 구할수만 있다면 그때 교과서를 다시 읽고 싶다.
국어 공부를 쉽게 하는 방법은 없다. 하루에 100글자를 쓰고, 1000글자를 읽으라는 주문이 적당하겠다. 일기와 편지 쓰는 것도 중요하다. 중학교에서 국어 공부는 한글을 익히는 수준 이상의 교과성적과 관련이 있다. 국어 수업의 특성상 영향을 미치는 과목이 상당하다.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을 때, 영유아 혹은 어린이 시절의 단어를 사용하는 버릇이 있다면 바꿔야 한다. 단어의 범위가 사고의 범위가 되므로, ‘치카치카’보다는 ‘양치질’이라고 해야 한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면 누구나 작가가 될수 있다. 중학교 국어 공부는 작가의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에게 국어(문학, 작문, 언어영역, 논술, 자기소개서 등) 관련 과목의 연결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영어는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문법으로 끝나는데, 2학년과 3학년 교과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중요한 문장들을 암기해둔다면 고등학교와 대학은 물론, 영어를 가르치는 직업,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직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영어 단어 외우는 방법’을 참조하기 바란다) 교과서를 위주로 좀 더 공부하고 싶다. 국어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구할수만 있다면 그 당시 교과서를 다시 구해서 공부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교과서 수준을 믿으면 도움이 된다.
중학교 시절 가장 재밌던 과목은 사회와 국사였다. 중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이 있었다. 1주일정도 시간을 두고 면담 일정을 알려주셨다. 담임선생님이셨던 김정옥 선생님은 면담할때는 ‘장래희망’을 생각하고 오라고 하셨다. 장래희망은 유치원때부터 있었다. 대통령, 선생님, 의사, 판사 등 지금도 유행하는 장래희망들이 있었지만, 나는 유치원때부터 꿈은 ‘국군’이었다. 친척 아재 결혼식이 결정적인 계기였던듯하다. 내 나이 6살때, 부산에서 결혼한 ‘기영이 아재’는 학군단 ROTC였다. 그분 결혼식 때 예도단의 멋진 갈 길 아래로 입장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나는 ‘국군’이 되고 싶었다. 직업군인, 장교, 부사관, 일반 장병 등 구분은 모호했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모두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을 위해서 나는 장래희망을 결정해야 하는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1992년에 누나도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다양한 동아리(당시엔 써클) 모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던 누나에게 ‘환경운동가’라는 것을 들었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당시엔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었고, 5년차였던 노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심했던 시기다. 그만큼 민주화 움직임이 컸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된 누나에게 학생운동이나 환경운동의 관심은 컸다. 그런 누나 의견은 공무원인 아버지와 반하는 경우도 잦았다. 하지만, 누나로부터 들은 민주화운동이나 ‘환경운동’은 나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드디어 선생님과 면담하는 날, ‘저는 환경운동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금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는 엄청난 말을 해버렸다. 소득과 세금도 모르는 중학교 1학년이 세금 없는 곳에 사는 환경운동가가 장래희망이라고 하니 선생님 입장에서는 황당할수도 있다. 사회 과목 역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한국지리, 세계지리 등의 과목으로 이어진다. 김정옥 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저런 비전을 이야기해주셨다. 강릉출신의 정옥 선생님은 대학시절 있었던 일, 고등학교 때 있었던 일, 중학교 때 있었던 일, 가족과의 에피소드 등을 재미있게 이야기해주셨다. 답답하고 지루한 과목들이고 암기과목 위주였지만 사회현상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컸다. 뉴스도 많이 보고 신문도 많이 봤다. 1992년에는 북한이 핵확산 금지조약 NPT, 국제 원자력 기구 IAEA 등의 가입과 탈퇴를 저울질 하던 시기였다. 수업시간에 신문과 뉴스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아무도 NPT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선생님 조차 입안에 맴도는 3글자의 영어줄임말이 말씀하지 못하셨는데, 용케도 내가 얘기해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눈찡긋’하면서 보내주는 미소에 사회는 ‘인생과목’으로 변했다.
사실 남자 중학생들에게 사회과목은 재미없다. 농구규칙도 알아야하고,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 정보도 알아야하고, 연예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기인데, ‘사회’를 외우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사회는 말그대로 ‘사회’였다. ‘왜 그럴까? 왜 그랬을까? 어떻게 될까?’라는 3가지 질문이 바로 사회과목의 관심이다. 중학교 1학년때는 ‘버스타고 등교 걸어서 귀가’, 2학년때부터는 ‘자전거타고 등하교’, 3학년때는 ‘오히려 기억안남’인데, 버스를 많이 타지 않았다. 버스를 타면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왜 좌회전을 하고 나면 신호에 걸리는지, 버스 기사는 얼마의 월급을 받는지, 택시는 왜 손님을 태우지 않고 돌아다니는지, 공중전화에 전화를 받는 기능을 넣으면 안되는건지, 도서관의 운영은 어떻게 하는건지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른들이 알아서 할이다. 그럼 어떤 어른들이 결정을 하는가? 정치? 여소야대? 환율?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중학생인데도 세상에 대해서 모르는게 너무 많았다. 이렇듯 사회현상에 관심을 가지는 습관을 가지면 사회과목의 재미는 기대 이상이다. 특히,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알아가는 한국지리, 세계 각국의 기후와 특징을 알아가는 세계지리 과목도 흥미로웠다.
중학교 3학년 때 강신훈 선생님은 국사에 대한 개념을 정립해주셨다. 여섯살, 일곱살, 늦게는 열살까지 어린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코딱지와 똥꼬’다. 어떤 순간이라도 어색해진 분위기를 웃음바다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단어다. 중학생들에게도 그런 단어는 있다. 선생님은 그 단어를 정확히 알고 계셨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어린이도 아닌, 고등학생도 아닌’ 이들에게는 당연 비속어였다. 국민학교 포함해서 7년이상 학교 수업에는 전혀 들을수 없는 어른들의 구수한 ‘은어, 욕, 사투리, 생리현상 등’을 다채롭게 펼쳐주셨다. 2020년에서 유사한 강의방식을 찾자면 ‘설민석 강사의 19금 버전’이었다. 국사 교사셨지만, 순 우리말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해주셨다. 그에 반해 순우리말이 표현해주지 못하는 혹은 이미 한자어로 간결해진 단어, 역사적 사건 등을 해석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물론 아주 재미있었다. ‘3.1운동은 몇년도? 1919? 왜? I9I9 = 아이구, 아이구 슬퍼라’ 이런 식의 암기법과 관심법은 아마도 수백가지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재밌었고, 관용구로 외울게 너무 많아졌구나, 결국엔 이번엔 또 어디다 갖다 붙이실까? 하는 기대감이 국사 수업의 관전 포인트였다. 너무나 즐겁게 한국사에 대해서 알려주셨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국사성적은 별로였지만, 너무 재밌었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과는 다르게 사회와 국사 과목은 체육시간만큼이나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당연히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나에게 수학은 애증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문과였다. 국어와 영어를 잘하면 문과, 수학과 과학을 잘하면 이과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 성적을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국어 못함’, ‘영어 잘함’, ‘수학 잘함’, ‘과학 못함’, ‘사회 잘함’, ‘암기 과목 못함’, ‘체육 잘함’, ‘음악 미술 못함 - 내신성적은 나쁘지 않음’이었다. 문과와 이과를 결정하기 참 애매한 상황이다. 나의 결정은, (내 나름대로) 수학을 잘하니까 문과에 가면 더 유리하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게 웬걸~ 국어를 못하는 사람이 문과를 선택했던 것이 고등학교 전공 선택의 실수였던 것이다. 수학을 잘하고 문과를 선택하는 여유로움과 국어를 못하고 문과를 선택한 불안감의 승부가 시작되었다. 여유로움과 불안감의 승부는 정정당당하지 못했다. 수업시간의 비중자체가 수학보다는 국어계열 수업이 많았다. 단순히 국어와 수학을 비교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국어는 문학과 작문, 특히 언어영역은 전체 수업의 25%가량은 되는듯했다. 반면 관심있었던 영어와 수학은 그 둘을 합해야만 국어 계열과 비슷한 느낌. 가금 이과 친구들을 만나면 이과의 수학I, 수학II는 흥미와 재미, 성적 상승의 기회, 난이도에 따른 변별력 증대 등 짧은 시간 집중적인 노력에 의해 성적 향상이 가능한 과목으로 소개했다. 정작 내가 수학을 잘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반면 언어영역 성적 향상을 위해서 만화책, 소설책, 수필집, 시사잡지, 신문을 읽을 여유는 없던 내가 언어영역에 올인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늘 계획을 세운다고 생각했지만, 계획 세우는 그 자체만을 즐겼을뿐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좀 더 긴 호흡으로 내다보았다면 좋았을텐데 가끔 후회도 된다.
그때도 많은 혼란이 있었다. 누군가 나를 잡아주었으면 좋겠는데, 누나와 형이라도 잡아주었으면 좋았을텐데, 부모님께는 이런 고민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실례인데, 친구들이 과연 제대로 알려줄까? 그렇게 고민을 시간을 보냈다. 정작 내 마음은 꽁꽁 숨긴채 누군가 내 어려움을 알아주길 바랬던 것이다. 누군가로 인해서, 누군가가 잡아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고집불통인 내가 만들어낸 일이다.
중학교 수업에서 공통점은 관심에 따른 성적의 차이가 크다. 관심을 갖고, 수업시간에 집중하면 성적을 올리는데 큰 지장이 없는 시기다. 고등학교 이전에 과목의 분화가 심하지 않을 때였으므로 수업시간 집중으로도 해결이 가능하다. 가능하면 예습보다는 복습을 통해 수업시간 내용을 정리하면 훨씬 도움이 된다. 중학교 때는 수업이 끝나면 할일이 참 많다. 주번이라도 되는 날에는 분필지우개로 선생님이 판서해 놓은 칠판을 닦아야 했고, 화장실도 다녀와야 했다. 배고플땐 도시락에 손을 대야 했지만, 냄새 때문에 피했다. 짧은 10분동안 교실 천장을 점프해서 닿기, 체육복 갈아입기, 우유 팩 농구, 우유 팩 축구 등 할일이 너무나 많다. 체육시간보다 더 빠르고 집약적인 체육시간인 셈이다. 그 시간을 쪼개 복습하는 것보다는 ‘복습’이라는 할일은 꼭 실천하게끔 알림장이나 개인 스케쥴표에 적는 것이 좋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담임선생님이 대부분 과목을 혼자 수업하셨다. 체육이나 미술, 음악 수업 정도는 ‘축구부 감독, 미술선생님, 음악선생님’이 따로 있는 정도였다. 이에 반해 중학교때부터 ‘담임선생님’은 조회때 잠깐, 청소검사 할 때 이외에는 만난일이 많지 않았다. 다양한 과목만큼이나 다양한 선생님들이 계셨다. 예체능이라고 하는 ‘음악, 미술, 체육’과 비인기과목 ‘기술, 공업’, 그리고 고등학교 입시에도 반영되지 않던 ‘한문’ 선생님들 (수능에 반영되지 않은 ‘독일어’선생님들) 세계 4대 스포츠 행사는 ‘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 축구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 이다. 4년에 한번씩 열리는 올림픽중계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비인기종목의 선전’일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을때마다 ‘사회를 좋아하는 학생’으로서 ‘왜’라는 질문을 한다. 왜 그 선수들은 그 종목에 평생을 바칠까? 야구, 농구, 축구, 배구 같은 인기종목에 뛰어들던지, 골프와 바둑은 선수수명이 엄청 긴데, 왜 비인기 종목을 선택했을까 생각을 했다. 생각이 아니라 걱정을 했다. 아시안게임 복싱에서 메달을 땄지만, 올림픽, 프로무대에 서보지도 못하고 선수생활을 은퇴한 복서들의 이야기, 20대후반이면 은퇴해야하는 격투기 선수들을 보면서 ‘인생은 참 긴데’ 은퇴하고 나면 어떻하나? 자신과 같은 입장의 선수들을 뽑아야 하나? 대한민국에서 투포환선수로 살아간다는것? 대한민국 창던지기 국가대표가 올림픽에 참여한다? 스키선수는? 결론 내릴수도 없는 일이지만,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은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다. 남들이 뭐라해도, 운동, 공부 나아가 인생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에서 나타난 김연아, 수영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박태환, 테니스의 정현, 스켈레톤 윤성빈, 그리고 그외 수많은 이름모를, 지금 이순간에도 나와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음악, 미술, 체육, 기술, 공업, 한문, 독일어 선생님들을 뵜을때 이런 느낌이었다. 왜 음악을 하셨어요? 왜 미술선생님이세요? 한문 선생님이 좋으세요? 체육선생님은요? 걱정할 것이 아닌데, 걱정이 됐다. 중학교 3학년 2학기때 음악, 미술, 체육, 기술, 공업, 한문 선생님 중에 몇몇분은 ‘영어 공부하고 싶으면 영어공부해~ 수학 모르는거 있으면 물어보고~’식이었다. 물론 오죽 답답하셨으면 그랬겠냐 싶지만, 말그대로 비인기 과목의 설움이 느껴졌다. 나는 음악시간 오숙자 선생님의 피아노 연주만으로도 너무 즐거웠다. 황해규 선생님의 미술시간에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법’. 전병철 선생님의 ‘한문 쓰기’. 황일환 공업 선생님의 ‘자동차 엔진 작동원리’는 너무너무 좋았지만, 인기 과목에 밀려 수업의 기회가 적었다. ‘선생님’은 모두 같은 ‘선생님’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비인기종목의 설움과 비슷한 비인기과목이겠거니 생각했을 뿐이다. (친구들 중에도 교사가 있다. 수업이 적으면 힘들지 않으니까 좋다고 하는 친구들도 ‘물론’ 존재한다)
최근에 도미나가 유스케 작가의 ‘남자 아이의 학습을 길러주는 방법’이라는 책을 접했다. 우리집에도 남자아이가 있고, 나도 남자아이였기 때문에 많이 와 닿았다.
수학 문제를 풀 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풀이 과정이 다르다. 여자아이는 지우개를 많이 써 프린트물이 너덜너덜해지는 것을 싫어해 우선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풀이 방향을 생각한 후 ‘그러니까 대략 이렇게 하면 된다.’라는 것이 보인 후 깔끔히 적는다. 반면, 남자아이는 일단 손을 움직여 ‘앗, 틀렸다’라며 여러 번 썼다가 지우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정답을 찾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좀 생각한 후에 손을 움직여보라고 충고해주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남자아이에게는 잘못을 즉시 지적하지 말고 본인이 알아차렸을 때 다시 생각해보도록 지도해야 한다. 가능하면 틀린 증거를 남겨두는 것이 좋다. 계산에서 틀렸다면 틀린 식을 지워버리지 말고 프린트물의 다른 여백에 다시 계산시키면 틀린 부분이 명확해진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과정을 눈으로 보는 것이니 자신감으로도 연결된다. 도중에 강사나 부모의 충고가 있었더라도 남자아이는 자기 힘으로 해내고 싶어 하는 존재이므로 그 문제가 풀렸다는 증거는 남겨두는 것이 좋다. 어쨌든 남자아이는 요령이 없으므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려면 이런 촌스러운 작전도 필요하다. 그래서 남자아이의 잘못은 도중에 지적하지 않는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계획 세우는 법이 완전히 다르다. 여자아이는 스스로 야무지게 계획을 세우지만 남자아이는 그렇지 않다. 스스로 계획을 짜보라고 남자아이에게 시켜보면 정말 이상하게 해온다. 그 이상한 계획에 휘둘린다. 그러므로 남자아이에게는 계획이라고 부를 정도의 거창한 것을 요구하지 말고 대략 첫째 달의 목표를 눈앞의 미션을 하나씩 해내 매일 열심히 노력하는 정도면 된다. 너무 세세한 계획을 세우게 하면 성장 잠재력을 망칠 수 있다. 여자아이와 달리 남자아이는 1~2주 단위나 1~2일 단위로 했더니 괄목할 만큼 성장한 경우도 있다. 계획을 크게 상회하는 자신과 크게 하회하는 자신, 양쪽 모두 가진 존재가 남자아이니 세세한 계획은 무의미하다. 그런데 부모는 이런 행동을 한다. 방학이 되면 부모가 빽빽한 계획을 세워놓고 ‘이대로 해!’라며 아이에게 명령한다. 남자아이는 가만 놔두면 좋아하는 것만 하려 하므로 부모의 컨트롤은 필요하다. 하지만 제시하는 방식은 아이를 계획에 칭칭 얽어매지는 않지만 매달 지향하는 목표를 제시하거나 매일 공부 시간을 약속하는 정도로 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한다. 그래서, 너무 세세한 계획은 남자아이의 성장 잠재력을 망친다.
나는 ‘도중에 지적받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세세한 계획’이 발목을 잡은 것 같다. 남들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는 고집스런 성격과 설령 피해를 받을지언정 피해주고 싶지 않다는 성격이 섞여있다. 이미 중학교를 입학한지 30년가량이 지났다. 기록은 기억을 앞선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의 기록물과 기억을 갖고 이야기하다보니 ‘중학교 공부법’으로서 충분하지 않다. 교육과정도 바뀌었다. 중학생 조카인 용재에게 물어보니 과목도 많이 바뀌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도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있었지만, 요즘 특수목적고를 비롯한 고등학교 입시는 초등학교때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학교때부터 영어를 배운 나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영어를 배우는 우리의 아이들이 같을수 없다. 학창시절이 어른들의 비지니스 무대가 되면 안된다. 30년전 중학시절을 떠올리며 내가 생각하는 중학생 시절에 알아야할 것을 중학교 졸업한지 30년이 지난 사람으로서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고 존중, 나눔, 배려의 심성을 키워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과정을 익히는 곳이다.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줄 아는 사람으로서의 가능성을 키우고 개성 넘치고 지성적으로 생각할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곳이 중학생이다. 가장 기본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강한 몸과 마음’을 기르는 곳이어야 한다. 십대 초반 중학교 공부는 ‘관심과 질문’이다. 질문의 범위와 대상은 정해지지 않는다. 선생님, 친구들, 부모님, 인터넷, 책, 동영상, 직관 등 해답을 찾는 범위를 제한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선생님이 모든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책이나 동영상 조차도 제한적이다. 다채로운 꿈을 가져라. 다양한 장소에 가봐라. 가능하면 여러 선생님들을 만나라. 그리고 ‘내안의 나’를 만나라. 1시간 단위의 계획이 아니라 한달 단위의 계획을 세워라. 실패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