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00
대학 병원으로 옮겨 간 지 2주쯤 되었을까. 원무과에서 전화가 왔다.
“혹시 환자분 병원비를 감당할 여력이 되시나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내 경제력을 노골적으로 물을 줄 몰랐던 탓이기도 하고 그간 아예 생각을 하지 않았던 부분은 아니지만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준일까 봐.
갖고 있는 몇 개의 적금을 떠올리며 대강 ‘에, 뭐…….’ 하면서 얼버무렸더니 사무적인 목소리가 돌아왔다.
“긴급 의료 지원비라고 있거든요. 시청에 관련 과 가시면 자세히 안내해 주실 거예요. 도움 꼭 받으세요. 가능하면 오늘 안으로 처리해 주시면 좋고요.”
전화를 끊자마자 휴대폰으로 긴급 의료 지원비를 검색했다. 준비해야 할 서류가 꽤 많았다. 생애 단 한 번, 300만 원 지원. 지난번에 엄마가 한 번 받았다는 얘길 했던가. 일단 원무과 직원의 말대로 시청에 전화를 넣었다. 거기서부터 난관이 시작됐다.
“어머니 보험 내역을 알아야 하거든요. 집에 약관 계약서가 있는지 잘 찾아보시고 연락 주세요.”
엄마가 든 보험 중 보장 내역이 있다면 신청이 안 되기에 우선 그걸 알아야 한다고 한다. 엄마가 든 보험? 자세히 알 리가 없었다. 집을 샅샅이 확인했지만 보험 계약서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시청에 다시 전화해 그렇게 말했더니 네 개 정도 검색되는 듯하다며 보험사에 일일이 연락해 약관을 전송받아 오라고 했다.
보험사 전화 연결은 왜 그렇게 힘든지. 어렵게 연결이 돼도 본인 확인이 안 되면 약관을 보내 줄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상황 설명을 해 봤지만 죄송하다는 사과만 들을 수 있었다. 속이 뒤집힐 것 같았지만 상담원도 나도 안 되는 일을 되게 할 수는 없었다.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준비할 수 있는 서류부터 떼자 싶어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소견서와 엄마 사인 혹은 지장이 담긴 확인 서류를 받기 위해서였다. 의사 소견서는 별문제 없이 받을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간호사는 엄마 지장을 부탁하며 내민 서류를 들고 곤란한 표정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만에 나왔다. 다행히 지장은 찍혀 있었다.
그놈의 보험 약관이 문제였다. 본인 확인……. 번뜩 내가 갖고 있는 엄마 휴대폰이 생각났다. 보험사 사이트에 들어가면 약관을 다운받을 수 있다. 엄마 휴대폰으로 인증하니 쉽게 진행됐다. 몇 시간 만에 얻은 수확이었다. 서류를 들고 시청에 가서 담당자와 잠시 면담했다. 담당자는 보험사 약관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엄마 병명이 보장되는지 확인해 주었다.
“고생하셨어요. 병원에 가셔서 제출하시고 며칠 기다리시면 지급 여부 연락 갈 거예요.”
그때가 저녁 다섯 시였나.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때였다. 다급히 병원으로 갔다. 막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던 직원이 내 서류를 받아 주었다. 온종일 메뚜기처럼 뛰어다닌 보람이 있었다. 이때는 몰랐다. 적다면 적은 그 돈이 얼마나 큰일을 해 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