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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an 19. 2023

7. 채식도전 두 달의 현주소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뜬금없이 무심코 어쩌다 아무 생각 없이 영혼 없이 되는대로 직감적으로 때가 됐다고 해서 시작한 채식. 그 어떤 음식에도 순수한 야채식만을 찾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 나게 한 시간들. 스스로에게 가혹해보려 했으나 여전히 물러터진 자신을 발견하고는 실망과 함께 그래도 잘해왔다는 격려로 끝나는 시간을 갖는다. 그동안 나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말로만 떠들 일이 아니기에 찬찬히 생활 속의 변화를 되새겨 본다.


내 육신의 상태는 이 시리즈 글을 처음 시작하면서 처절하게 무너져 내린 몹쓸 상태였다는 것을 알린 바 있으니 다시 반복하지는 않고자 한다. 다만 그동안의 생활패턴 변화를 겪으면서 느껴졌거나 실제로 변화된 모습을 찾아보는 일을 해보고자 한다. 대외적인 거창한 계기나 의미를 찾는 것보다 내가 나 자신을 색다르게 돌아보는 일들이다 보니 어디서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 맞을까 머뭇거리게 된다.


모든 변화의 첫 시작은 매일같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 체중이 아닐까 한다. 지난해 후반 무렵 각종 스트레스와 폭식 혹은 먹는 음식을 제대로 가리지 않은 이유로 80대 초반의 체중까지 기록하는 나름의 참사를 겪었다. 평생 그런 체중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특별히 애를 쓰지도 않고 있는데 몸이 점점 불어나는 현상을 인정할 수 없었다. 누구 말마따나 물만 마셔도 체중이 불어나는 느낌. 나보다 많은 체중을 가진 분들은 이까짓 수치가 뭐가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로서는 처음 겪는 수치와 그 속도감에 사뭇 당혹스러웠다. 암튼 채식을 시작하면서 매일같이 조금씩 줄어들더니 요즘 아침에는 77kg 밑으로 기록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75까지도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지만 사실 아직도 많이 먹고 있기에 현실적으로 지금이 한계점에 달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거의 6kg에 달하는 자연감량이 이루어진 상황은 나 자신에게는 매우 고무적이다. 먹는 것 하나가 사람을 꽤나 바뀌게 해 준다. 많은 이들로부터 얼굴빛이 훨씬 맑아지고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얼굴선이 조금씩 살아난다는 지적을 가장 많이 받았다. 기분 좋은 일이다.

 다음의 변화는 혈당수치의 변화다. 지난해 말 터무니없는 관리 미비로 내 당 수치는 폭발적으로 올라갔고 무엇보다도 중성지방이 정상치의 12배가 나오는 상황이었기에 꽤나 커다란 충격을 주곤 했다. 아직 중성지방의 수치는 확인할 수 없다. 병원에 갈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고 몇 개월간의 채식이 중성지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고 싶기에 중간에 간이로 측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당 수치는 평근 20 정도가 내려갔다. 아니다. 그보다 더 내려가서 30 정도가 내려간 셈이다. 매일 아침 당뇨약을 먹고 있는 나로서는 평균 수치가 130대 후반이 기본이었다. 135~140 사이의 어느 수치를 기록했다. 어느 순간 공복혈당 수치가 125를 기록하더니 118, 111까지 내려갔다. 사실 이런 수치는 당뇨 초기에 급등한 당 수치를 잡기 위해 바늘로 내 배에 직접 주사를 놓던 시기에만 잠깐 경험했던 수치였던 터라 놀라운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며칠 전부터 105와 108 등 110 밑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가장 고무적인 것은 아직 하루밖에 없었지만 95라는 100 이하의 수치가 처음으로 등장한 점이었다. 사실 당뇨에 걸려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수치가 주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일반적인 건강한 사람들은 80대 나오는 경우도 흔하고 어떤 음식을 먹어도 혈당수치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당뇨환자에게는 당이 높은 음식은 곧 혈당수치와 직결되기에 불안 불안하다. 비록 병원약을 꾸준히 먹고 있지만 100 이하의 숫자가 당측정기에 뜨던 날은 하루종일 나름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얼마 만에 보던 수치이던가.


내 개인의 의학적 수치와 체중을 제외하고 가장 큰 차이는 밥을 무지하게 많이 먹는데 엄청 배고 금방 고파진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끼니를 굶은 사람처럼 먹고 나면 금방 배가 고파진다. 그렇다고 식사시간에 적게 먹는 것도 아닌데. 밥도 한 공기 이상 먹을 때도 많고 반찬도 많이 먹는다. 현상적으로 탄수화물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탄수화물을 멀리할 것이 아니라 탄수화물을 익혀먹는 튀김의 종류와 멀리하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히 하니 먹을 것이 밥이나 구황작물(고구마나 감자) 밖에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리 채소를 간식으로 먹는다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입맛이다. 그래서 현미밥을 중심으로 된장찌개나 청국장, 다양한 채소 중심의 국류가 내 식단의 주요한 구성요소로 자리 잡았고 맛있고 푸짐하게 먹고 나니 배는 느낌상 들어가기보다는 더 나오는 기분이 든다. 체중은 줄어들었지만 더 이상 한계에 달하는 이유는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먹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탄수화물 공포증에서 벗어나고 나니 먹을 것이 나름 많아졌다. 국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무런 국수가 아닌 튀기지 않은 생면과 야채육수의 건면 등을 찾게 되고 만두도 무늬만 야채만두가 아닌 구성성분이 전부 야채인 만두를 찾고 나니 먹을게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조금씩 옅어졌다.


아직까지 길거리에 나서면 먹거리를 사 먹는 일은 여전히 문제다. 전문적으로 채식식당을 찾아다니는데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제주의 길거리에는 돼지고기 집 말고는 음식점이 없나 싶을 정도로 온통 거리가 돼지고기와 국밥집 그리고 고기국숫집이 전부인 듯싶다. 거기에 부수적인 중국집, 돈가스, 회집 등등 내가 나름 멀리하고픈 간판만이 눈에 더 자주 들어온다. 어쩔 수 없이 두부집을 자주 찾게 되고 집과 밖에서 먹는 두부의 양이 많이 늘었다.


사람의 마음은 많은 도전을 받는다. 두 달이지만 한두 번의 고기는 괜찮지 않겠느냐는 의혹, 생선은 괜찮지 않을까. 어패류는 어떻게 하지, 달걀은? 육수 국물은 조개국물은, 젓갈은 등등... 생각지도 못했던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가 매일같이 생긴다. 단 하나 탄산음료나 단 음료들은 아직까지 나의 선택에서 멀어졌다는 점에서 설탕과 멀리하겠다는 결심은 굳건히 지키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마실 수 있는 게 커피와 각종 차, 그리고 탄산수 정도만 남는 듯하다. 물론 전통차도 마시지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설탕의 단맛은 매번 고민의 지점이다. 


집사람의 계속되는 요청과 어쩔 수 없는 제공으로 요즘은 간간히 계란은 먹기로 했다. 적극적으로 찾아 먹지는 않지만 계란찜이나 계란말이 등의 유혹은 사실 너무 벗어나기 힘들다. 기회가 있을 때 간간히 결심을 무너뜨리는데서 스스로와 타협을 하게 됐다.


겨울이 되면 제주에서는 감귤이 늘 문제다. 나처럼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과일은 당 수치를 높이는 주범이기도 한데 겨울철 내내 귤이 집안은 물론 외부에서도 떨어질 날이 없다. 11월 정도부터 시작해서 3월 정도까지는 언제난 귤에 쌓여서 살아가는 나날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마구마구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고개를 외면하고 멀리하기에는 귤의 색깔과 맛에서 벗어나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주 먹게 된다. 더구나 한라봉과 레드향 같은 더욱 맛있는 귤이 나오는 시기가 되면 고민의 폭이 더욱 깊어지기만 한다.


두 달의 기간이지만 아직까지는 나름 원칙을 고수하면서 조금씩 먹거리에 적응하고 산다. 대외적으로 채식을 하겠노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천명하고 나서니 주변에서도 조금씩 인정하는 분위기다. 내 건강상태를 아는 사람들은 더 이상 다른 음식을 권하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채식을 선언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내 식생활습관 중 튀김과 같은 식용유가 잔뜩 들어간 음식과 단과자와 음료를 배제한 것이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느끼는 바이지만 탄수화물에는 죄가 없다는 생각이다. 탄수화물을 먹는 방법에 튀기고 설탕과 버터등이 듬뿍 처발린 음식들이 문제이지. 그렇다고 탄수화물을 그렇게 먹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이제 기회가 되면 다양한 요리를 생각하면서 채식에 대해 접근을 해보고픈 생각이 든다. 어찌 먹으면 잘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 번씩 노력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다 요리 소개하는 글 쓰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채식식당을 소개하거나. 뭐든 어찌 될 것이니 하던 일 계속해보면 될 것이다. 두 달 정도 있다가 내 생활의 변화를 다시 한번 체크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면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나리라 확신한다.


역시 먹고사는 게 가장 힘든 일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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