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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Oct 04. 2023

느닷없는 일기 2

일주일간 육체노동만 했다

일주일간 육체노동만 했다. 정확히는 6일 동안이다. 시간을 보내고 보니 추석이 끼어 있었고 국군의 날과 개천절이 포함된 연휴였던 것이 생각난다. 맞아. 그랬었다. 기나긴 6일간의 연휴 동안 집안에서 빈둥빈둥 사색이나 한답시고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일들을 향해 끝없는 걱정의 수레바퀴를 돌렸을 것이고 계속되는 번민이라는 이름하에 수면제를 먹고 오전 늦게까지 빈둥거리다 집 주변을 서성이거나 한 번쯤 바닷가에 나가 애꿎은 바다에 대고 속앓이를 했을 것이다. 왜 이리 바다는 아름다운데 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을지에 대해 한탄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래서 노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어쩌다 보니 운영을 맡게 된  카페(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당근과 깻잎)에 나무로 지어놓은 온실 같지도 않은 공간을 바꾸는 일과 칡넝쿨과 볼품없는 볼레낭(보리수나무)와  온갖 잡초에 휩싸인 마당을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참에 코딱지만 한 집 안마당에 수풀처럼 우거진 풀들도 베어낼 겸 작심을 했다. 모든 일은 다가올 수많은 일들을 일주일 내내 걱정하기 싫어서였다. 몸을 혹사하기로 했고 그로 인해 내 몸이 조금은 건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고 계속해서 늘어나는 살을 제어해 볼 요량도 함께 품었다. 물론 3년이 된 카페를 방치해 놓았던 장본인 중 한 명으로서 방관자가 아닌 운영자로서 가게에 정을 붙일 생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카페는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온실이라는 이름으로 지어놓은 나무로 된 공간은 형편없는 쓰임새를 자랑했다. 아무 쓸모가 없는 공간을 조금이나마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기로 했다. 벽돌로 쌓아 올린 담안에 흙을 잔뜩 담아놓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키우지 않고 최근에 심어놓았다는 바질만이 짙은 향을 내뱉고 있었다. 혹시나 살릴 수 있을까 바깥 마당의 모래 가득한 터에 옮겨 심었지만 여지없이 죽어버려 결국 오늘 다 뽑아 버리고 말았다. 그곳에 공간구획을 위해 쌓았던 벽돌을 들어내고 안쪽을 가득 채웠던 흙을 퍼내기로 했다. 일단 벽돌을 옮기는 일부터 시작이다. 눈에 보기에는 몇 개 안 돼 보이는 벽돌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몇 백개는 족히 되는 숫자였다. 나의 노동력이 이토록 쓸모없다는 사실에 놀랄 일이 벌어졌다. 아무리 꺼내서 옮겨도 벽돌의 수가 줄지 않는다.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10분 일하면 5분을 쉬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수준이다. 첫날을 벽돌 옮기는 것으로 온실에서의 일을 마치기로 했다. 물론 바깥 마당에 볼품없이 쓰러져 있던 나무를 톱으로 잘라내 한 곳에 모으고 이름 모를 사람이 두고 간 덩치 큰 개인 돌담이의 울타리를 고치고 온실과 담장의 나무를 칭칭 감아올린 넝쿨의 일부를 잘라내는 일에 하루의 시간이 덤으로 빨리 지나갔다. 온몸이 아파 죽을 듯 괴롭다. 얼음물만 5잔 이상 마신 느낌이다. 실제로 그 정도 마시지 않았나 싶다.



저녁시간이 되자 막걸리가 당긴다. 한잔을 먹으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몸이 아픈 이후로 술을 멀리 하지만 힘든 육체노동 후에는 습관처럼 술이 당긴다. 물론 그것도 딱 한 모금이 최대치이긴 하지만. 암튼 그 느낌을 가지고 저녁자리를 맞이하는 일은 나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침의 내 육신은 전날 얻어맞은 듯 온몸이 쑤시기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생각이 났다. 추석 당일이다. 추석날 아침은 마당의 잔디와 잡초제거를 하기로 했다. 이웃에게서 빌린 예초기를 들고 마당으로 나섰다. 올해 들어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으니 잔디와 잡초가 수풀처럼 길과 강아지가 지내는 공간과 한 뼘 수준의 텃밭을 뒤덮었다. 풀을 깎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종일 해야 할 모양인데 집사람은 집 앞 잡초를 뽑으며 추가적인 일을 계속 주문한다. 추석 당일은 가게에 가지 않기로 했지만 결국 예초기의 충전기가 금세 방전되면서 작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 어제의 약속을 살짝 뒤로 하고 다시 가게로 향한다. 어제 일의 연속. 남은 벽돌을 옮기고 삽질을 시작했다. 세상에 빠게스라 불리는 양동이에 흙을 나르기 시작하면서 내 저질 체력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른다. 흙을 옮기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힘이 드는 일이다. 처음 봤을 때는 이틀정도면 흙을 걷어내고 그 바닥을 판석으로 깔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연휴가 끝나는 마지막날 작업을 마칠 생각이었지만 내 삽질과 흙 옮기기의 속도는 하루종일 일을 한다고 해도 몇 번 이루어지지 않는다. 몸의 힘을 다 쥐어짜도 속도는 나지 않고 내가 옮긴 흙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 양을 쏟아부으면 티도 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양이다. 결국  휴일의 마지막 날인 오늘이 되도록 나는 흙 퍼내는 일의 반도 못 끝냈고 가게 매니저와 나에게 넉넉한 약속을 한다. 


"어차피 안 쓰는 공간인데 천천히 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일은 없지요. 매주 시간 날 때마다 와서 조금씩 나르지요 그리고 그때 시간 봐서 판석을 깔면 되지 싶네요"


엄청난 후퇴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6일간의 휴일이 끝을 맞았다. 오늘을 자고 나면 다시 사무실에 나가야 한다. 솔직히 사무실에 가기 싫다. 모든 것을 다 잊고 단순노동으로 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지금의 시간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세상은 나에게 다른 일을 하도록 길을 열어 두었고 나는 그것이 내 정신건강 혹은 미래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생각도 안한채 그 선택을 덥석 물었다. 내가 허툰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안 그랬지만 나이가 먹고 나니 일이 벅찬 느낌이다. 이제 그만해도 좋을 듯싶은데 일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몸은 지쳐만 간다. 나이가 들면 왜 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하고 밭일 혹은 텃밭 가꾸기 등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의 효율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인간이 살아간다는 게 아주 커다란 소모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소모전을 얼마나 오랫동안 더 해야 할 런지는 모르겠으나 기회가 올 때마다 정신노동의 횟수는 빨리 줄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회가 오면 단순노동의 세계로 갈아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거의 일주일간의 시간을 보내며 최근 들어 가장 길었던 연휴를 가장 단순하게 보내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피폐한 시간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잠시후면 다시 복잡한 소용돌이 속으로 돌아갈 테지만 그래도 그 소용돌이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휴식을 보낸 것이 아닐까 싶다. 


다시 원초적인 질문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걱정이 된다. 육체노동을 계속하는 사이 한시도 몸에서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던 노트북을 잊었다. 가방에서 꺼내는 것을 잊었다. 아니 가방을 차에 놔두고 집에 들어왔다.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며칠이  지나갔다. 몸이 아픈데 그 아픔이 오히려 다른 감각을 마비되게 놔두니 다행이다 싶다. 아무래도 두고두고 허리가 고생을 할 텐데 그 고생은 눈에 보듯 뻔한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수많은 생각이 이제야 천천히 머릿속으로 되돌아온다. 집 나가 가출했던 걱정이 슬며시 찾아든다. 


더불어 글이 힘들다. 힘을 들일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 다시 천천히 시작해야 하는데 글보다 더 어려운 숙제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글의 길을 잃었다. 몸에 다른 걱정을 다 넘겨주다 보니 글도 제갈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길을 하나씩 열어야겠다. 방향은 정해졌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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