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The last letter - 인어공주의 편지

다시쓰는 안데르센 세계명작: 인어공주, 그 200년 후의 이야기

기획의도


욕심은 행복과 아주 비슷하게 생겨서, 잘못 들어서기에 참 좋습니다.


자신이 사랑한다 믿은 아름다운 공주와 오래 꿈꾸었던 결혼을 하면서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인어공주도 곁에 두고 싶었던 왕자.

왕자는 몰랐습니다. 

그 욕심이 인어공주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하지만 그가 몰랐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한줄 알았던 그녀의 사랑이 사라지고서야,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잔뜩 기울어 진 상대가 누구인지를 깨달았거든요.

그것은 순간적인 감정의 동요나 기쁨과는 다른 차원의 감정이었습니다.

사랑이란건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어 자신의 전부가 되어버리는,

두렵지만 찬란한 감정이니까요. 


신들이 보기에도 그들이 안타까웠던 모양입니다.

덕분인지 때문엔지 200년 후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과연 두 사람, 서로를 다시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


<The last letter - 인어공주의 편지>


'언니, 막내예요.' 


 한 노부인이 편지지에 밀어낸 첫번째 문장이었다. 그녀는 그의 남편이 쓰던 서재, 낡은 책상 앞에 앉아 이 편지를 시작했다. 창가로 스민 오후 2시의 햇빛이 그녀의 말라버린 손등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었다.


'제 남편이 세상을 떠났단 소식이 바다 속 궁전에도 닿았군요. 먼저 위로의 편지를 보내주어 고맙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괜찮습니다. 하루의 끝에 어김없이 어둠이 내리듯, 약속처럼 헤어진 것 뿐이니까요. 어느덧 저도 인간으로서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하지만 겨우 첫번째 생이랍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으시겠지요. 언니들이 바보 같다 할까봐 못다했던 이야기를 더 늦기 전에 들려드리려 합니다.

 

 언니 사실 제 남편이었던 이는 제가 사랑했던 왕자님의 환생이랍니다. 할머니는 인간의 영혼이 별이 된다 하셨죠. 아니었어요. 제가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고 거품처럼 사라졌을 때, 그때 만나게 된 신은 인간에게는 네번의 생이 있다고 하더군요. 신은 제게 바람이 되어 떠돌며 세상을 이롭게 한다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영혼을 주겠다 약속 했지요. 그렇게 세어도 세어지지 않는 까마득한 시간이 지났어요. 200년쯤 뒤, 드디어 신은 제게 인간으로써의 첫번째 생을 주셨어요. 그리고는 벌인지 상인지 모를 모든 기억도 남겨주셨지요. 


 인간으로써 스무해를 지나보내던 어느 겨울의 끝자락이었습니다. 저는 제 남편을 처음 만났고, 또 그가 왕자님의 환생이라는걸 한눈에 알아보았답니다. 얼마나 신의 예쁨을 받는 영혼인지, 이번 생에서도 그는 반짝반짝 빛나며 많은 사람들의 곁에 둘러싸여 있더군요. 우리는 눈이 마주쳤지만, 저는 애써 모른척 지나갔습니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거든요. 맞아요. 저는 사랑이 무서웠어요. 

 

 그 후 저는 대학교 영화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매월 세번째 목요일은 동아리방에서 친구들과 만화 영화를 보는 날이었는데, 그날 친구가 가져온 만화 영화 제목이 신기하게도 '인어공주'라더군요. 우리의 존재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그건 놀랄 일도 아니었어요. 동아리방에 그가 와있던 거예요. 신입 회원이라더군요. 우리는 조금 멀찍이 떨어져 앉아 만화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그의 존재가 조금 신경쓰였지만, 제 이야기를 닮은 이야기에 전 어느새 화면 밖의 세상은 잊은 듯 빠져들었어요. 


 만화 영화 속에서는 왕자와 인어공주의 사랑이 이뤄지더군요. 아름다운 해피엔딩 앞에 모두가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 저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어요. 아무도 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저 역시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죠. 한참 울고 둘러본 방안에는 이상하게 그가 없었어요. 울적해진 기분에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학교를 나섰는데, 왠걸, 제가 돌아가는 길목에 그가 꽃 한송이를 들고 서 있었어요. 그리고는 제게 다가와 저를 기다렸다며 그 꽃을 건네는 거예요. 아직도 그때 그의 표정을 잊지 못해요. 붉게 물든 코 끝과 젖어있던 두 눈. 마치 방금 울고난 아이같은 표정 말이예요. 왜였을까요? 물어볼걸. 지금은 대답해 줄 이가 없네요. 


 아무튼 저는 그의 꽃을 받아주지 않았어요. 이번 생의 그는 아무 잘못이 없지만, 왕자님의 영혼을 품고 있다는걸 알고 있었기에 괜히 원망스러웠거든요. 우린 결코 헤어지지 않을거라던 왕자님의 그 달콤한 말도, 제 마음을 다 아는듯 했던 다정한 웃음도, 함께했던 수많은 시간들까지도 사랑이 아니라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잖아요. 


 그는 그 날 이후 매일 저를 찾아와 한송이의 꽃을 선물해 주었어요. 그리고는 제게 사랑한다, 말했어요. 곁에 있어달라는 말도, 헤어지지 않을거라는 말도 아니었어요.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저를 사랑한다는 거예요. 이번 생에서 저는 그의 생명을 구해준 여자도 아니고, 빼어나게 아름다운 모습도 아닌데 말이에요. 왜냐고 묻는 제 물음에 그냥 제가 저라서, 그 이상의 이유는 없다고 하더라구요. 


 언니, 그토록 마음 먹었건만 사랑은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니었어요. 열여덟번 째 꽃을 화병에 꽂던 날, 바보처럼 저는 또다시 사랑에 빠지고 말았답니다. 다행히 이번 생에서는 이웃나라 공주님도 마녀도 없이 우린 정말 행복한 부부로 살아갈 수 있었어요. 가끔 이 사람이 나를 버렸던 이의 영혼을 품고 있다는 생각에 잠 못드는 밤도 있었지만요.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무엇도 터놓고 말할 수 없었어요. 이 행복이 또다시 거품처럼 사라질까 나는 너무 두려웠거든요. 


 언니, 그는 마지막까지 제 손을 꼭 잡고 떠나갔어요. 나는 이제 더 바랄것이 없습니다. 이번 생에는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요. 언젠가 그와 함께 넋을 놓고 바라보았던 저녁 하늘이 그랬듯, 저는 제가 지나온 시간이 그저 아름답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막내 드림'

 

 그녀는 편지를 맺고 서재 서랍을 열어 편지를 넣을만한 봉투를 찾았다. 가장 아래쪽 서랍을 열었을 때였다. 남편의 낡은 일기장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그녀는 천천히 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뭐 이런걸 다 적어놨대, 싶을 정도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에 웃음짓기도, 중간중간 끼어있는 빛바랜 사진에 글썽이기도 하던 중이었다. 작은 쪽지 하나가 툭, 떨어져 나온 것은. 


 쪽지에 적힌 글씨는 떨리는 손으로 한자 한자 꾹꾹 눌러쓴 그의 필체였다. 그녀는 그가 남긴 문장들을 찬찬히 두 눈에 담았다. 


"당신이 사라지고서야 사랑인줄 알았습니다. 어리석었던 내게 신은 두번째 생에서조차 당신을 허락하지 않더군요. 긴 기다림 끝에 얻은 세번째 생,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어떤 모습이어도 좋습니다. 다시는 위험하게 무모해지지 마세요. 무모한건 내가 합니다. 다음 생에서도 당신은, 그저 당신으로 살아가주세요. 나는 반드시 당신을 알아볼테니. 


P.S. 사랑합니다. 해피엔딩이 늦어 미안합니다."



/ 끝.


◆◆◆◆◆



오늘은 절대 

내일의 숙취 따위 걱정하지 말 것


그런 마음으로 취하고

그런 마음으로 사랑할 것


지금 당신 앞의 그를.


작가의 이전글 샤넬백 하나 없거나 있어도 던지지 못하는 서른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