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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한범 Feb 29. 2016

신선생의 쿰부 트레킹10

10. 7년 동안, 세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해발 5천 미터 고도와 추위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침낭에서 몸을 뒤척대다 시계를 보니 자정을 겨우 넘긴 시간입니다. 일어나서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과 함께 별빛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황급히 창을 닫지만 마음은 히말라야를 넘어 세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잠은 멀리 사라지고 마음은 저잣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해발 5,550 미터, 칼라파타르로    


모든 것이 얼어 있습니다. 물, 치약, 물티슈, 그리고 무려 1000루피(10$)를 주고 충전한 카메라 건전지도 한 눈금만 남고 모두 방전되었습니다. 창은 성에가  껴서 밖이 보이지 않습니다. 온기가 남아있는 침낭에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습니다. 객실은 난방이 되지 않으며 벽은 판자와 돌로 만들어져 허술합니다. 날진 물병에 뜨거운 물을 채워 품고 자는 것이 유일한 난방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은 식어가고 아침은 멀기만 합니다. 

    

일정을 변경하였습니다. 칼라파타르(5,550m)를 등정하고 고락셉(5,140m) 대신 원점회귀하여 로부제에서 숙박하기로 하였습니다. 고소를 고려한 판단입니다. 고도의 차이가 200미터 남짓이지만 고소 때문에 가급적 수면 고도를 낮추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포터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짐을 옮길 필요가 없기에 하루의 휴가가 주어졌습니다.       


칼라파타르로 출발하였습니다. 겨울 비수기인데도 많은 트레커들이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일행 중 한 분이 지인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여행사에서 주관한 패키지 팀의 일원입니다. 16명의 고객과 30여 명의 스태프가  군 작전처럼 이동하고 있습니다. 패키지 팀의 스태프는 짐을 운반하는 포터와 한식을 제공하는 요리사 팀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대바구니에 음식 재료와 가스통을 메고 해발 5천 미터를 오르는 모습은 경이롭습니다.

    

로부제 패스(5,110m)까지는 황량하지만 평탄한 길입니다. 고소에 적응이 되어서인지 걷는 걸음이 가볍습니다. 심장 박동과 호흡이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으로 반복됩니다. 들숨과 날숨을 조율하며 천천히 걷습니다. 푸모리, 에베레스트, 눞체 등 7,8천 미터의 고봉이 도열해있지만 동네 앞산처럼 편안합니다.     

 

박영석의 히말라야    


로부제 패스 초입에 ‘그대 더 높은 눈으로, 더 높은 산 위에서 바라보기 위해 함께 왔던 악우(岳友), 남원우 안진섭 여기 히말라야의 하늘에 영혼으로 남다.’라는 동판이 바위에 있습니다.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박영석과 함께 산을 올랐던 고인을 위한 추모비입니다. 박영석은 2007년에는 오희준과 이현조를 그리고 2011년에는 안나푸르나에서 신동민, 강동석과 함께 자신도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정상 등정과 새로운 루터를 개척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위험을 감수한 박영석에게 “당신에게 히말라야는 무엇인가?”라고 묻고 싶습니다.   

 

 

로부제 패스는 크고 작은 바위로 이루어진 너덜지대입니다. 불과 100미터 남짓한 언덕이지만 고도이기에 걸음은 제자리를 맴돕니다. 언덕을 오르자 쿰부 빙하가 눈에 들어옵니다. 내가 걷고 있는 트레일도 과거에는 빙하지대였지만 지금은 황량한 바윗길로 바뀌었습니다. 곳곳에 빙하의 흔적이 있습니다.

   

 

로부제를 출발한지 세 시간 쯤 지나 고락셉(5,140m)에 도착하였습니다. 칼파파타르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가기 위한 마지막 마을입니다. 사막 같은 넓은 모래밭 가장자리에 세 채의 롯지가 있습니다. 식당에는 트레커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였지만 모래알을 씹는 느낌입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칼라파타르(5,550m)는 작고 소박한 모습입니다. 웅장한 푸모리(7,165m)가 품고 있는 병아리 같은 모습입니다. 검은색의 작은 봉우리는 7,8천 미터 고봉이 즐비한 쿰부 히말라야에서 존재감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칼라파타르는 세상에서 트레킹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입니다.  

  

모래밭을 건너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일행뿐입니다. 오후에는 거센 바람 때문에 사람들이 회피합니다. 안면 마스크까지 하였지만 모래 바람 때문에 걸음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길은 끊어질 듯 이어져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언덕이 정상이라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올라보지만 또 다른 언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몇 번을 반복하여 체력이 고갈될 무렵 정상에 도착하였습니다.   

  

7년 동안 세 번의 시도    


정상에는 작은 돌 무더기와 타르초만이 힘들게 오른 트레커를 반기고 있습니다. 정상에 서는 순간 허무해지며 머릿속이  텅 비워집니다. 이곳에 오기 위해 7년 동안 세 번을 시도 시도하였고 8일을 걸어 도착하였는데. 헛헛한 마음만 가득합니다. 저는 무엇을 위해 이곳까지 왔을까요?  

  

 

심한 바람과 추위 때문에 서둘러 하산하였습니다.  중턱쯤 내려오자 추위와 바람이 가시면서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눕체(7,861m) 뒤편에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가 수줍어하면 머리를 치켜들고 있습니다. 눞체가 눈으로 덮여 있으며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반면 에베레스트는 검은색 민얼굴로 눞체 뒤편에 숨어 있습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는 고은의 시처럼  내려갈 때 만나는 세상은 올라올 때와는 다른 모습니다. 에베레스트부터 타보체까지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보았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늦은 오후가 되자 설산 중턱에서 안개가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자연을 겸허한 마음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새로운 감동으로 충만한 마음과 달리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해발 5천 미터 고도를 10시간 남짓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만나도  인사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서로의 상태를 알고 있기에 엷은 미소를 주고받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저 멀리 로부제 마을이 보입니다. 기나긴 하루가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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