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한범 Mar 02. 2016

신선생의 쿰부 트레킹14

14. 신들의 길목, '고쿄리'

호숫가에 자리 잡은 마을은 호수와 설산이 어우러져 장관입니다. 해발 5천 미터에 있는 드넓은 호수와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설산 모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얼음과 눈으로 덮여 있는 호수 곁에는 예닐곱 정도의 롯지가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아름답다’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합니다. 눈으로 보고 있지만 믿기지 않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설사가...   

 

숙소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을 바라봅니다. 창을 통해 투영되는 마을과 호수와 설산 모습은 한 폭의 산수화입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자연이 빚어낸 ‘경이’에 여행자는 말을 잊습니다. 단지 숨을 죽이고 바라볼 뿐입니다.      

 

저녁을 끝내고 난로를 쬐며 시간을 보내는데 갑자기 변의가 느껴졌습니다. 설사입니다.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에 달려갔지만 문이 잠겨있습니다. 몇 번을 흔들어도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참을 수 없는 순간, 화장실 입구에서 바지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라 저 자신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손쓸 틈도 없이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지사제를 복용하고 양동이에 물을 떠서 배설물을 처리하였습니다.    

 

‘그때의 난감함이란!’  


마지막 목적지 고쿄리를 향해  


아침 6시 경, 고쿄리(5320m) 등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고쿄리는 ‘아름다운 봉우리’라는 의미입니다. 고쿄(4750m)와 고도의 차이가 크지 않은 야트막한 봉우리지만 정상에 오르면 히말라야 고봉들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는 이 길을 ‘신들의 길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정상에 다녀온 후, 아침 식사를 하고 하산할 계획이었습니다. 실개천을 건너 능선을 오르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암벽 등반을 하는 느낌입니다. 걸음을 옮겨 보지만 제 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해발 5천 미터 봉우리를 오르는 것은 인내와 고통을 요구합니다.

    

산을 오를수록 새로운 세상이 전개됩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짙푸른 하늘, 상상을 초월하는 빙하와 호수, 동심원을 만들며 병풍처럼 버티고 있는 설산의 모습까지. 어휘와 상상을 뛰어넘는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꿈을 꾸는 느낌입니다.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황홀합니다.  

     

팀 리드인 지인이 쳐지면서 가끔씩 보이지 않습니다. 설사 때문입니다. 마라톤과 등산으로 다져진 강철 체력인데. 히말라야에서는 저잣거리의 경험은 소용없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행 모두가 하루씩 시차를 두고 설사를 경험하였습니다. 긴장이 풀어지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한 발 걷는 것도 힘든 트레커와 달리 가이드는 다람쥐처럼 산을 오릅니다. 심폐 기능이 뛰어난 셰르파족인 그는 기진맥진한 우리와 대조적입니다. 지친 우리를 대신하여 사진을 찍어주고 새로운 풍경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그는 다섯  번째 고쿄리 등정인데도 즐거운 모습입니다.   

 

두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다는 계획과 달리, 두 시간 만에 고쿄리 정상에 도착하였습니다. 고쿄와 고도 차이가 불과 600미터이며 1킬로미터 남짓 거리인데. 예상외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정상은 세찬 바람 때문에 잠시도 있기 힘들었던 칼라파타르와 달리 고요한 정적만이 감돕니다. 우리도 말을 잊고 앉아 새로운 세상을 바라봅니다.    

    


고쿄리 정상에서 바라보는 세상    


정상에는 네팔리의 염원이 담긴 소박한 돌탑과 타르초가 트레커를 맞고 있습니다. 보름간의 고생이 한 순간에 행복으로 바뀌었습니다. 계획하였던 칼라파타르(5550m)와 고쿄리(5320m) 모두 등정하였습니다. 일행 모두 서로 손을 맞잡고 무사하게 등정을 하락한 히말라야 신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히말라야 8천 미터 봉우리 네 개가 보입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비롯하여  4,5,6번째 봉우리인 로체(8511m). 마칼루(8463m). 초오유(8511m)입니다. 8천 미터 봉우리 14좌(座) 중에서 네 개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눈 아래에는 아름다운 고쿄 호수와 소담스러운 마을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초오유에서 흘러내려 물줄기는 고줌바 빙하와 호수를 만들었습니다. 고쿄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담수호를 가진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겨울이라 호수가 얼어서 푸른 물결은 볼 수 없지만 새하얀 눈과 짙푸른 하늘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짐을 정리하는데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고쿄리를 오를 때  힘들어했던 지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식사를 거르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합니다. 히말라야 4,5천 고지를 보름 이상 걸었기에 몸과 마음이 지친 것 같습니다. 휴식이 필요한 때입니다.       


고쿄에서 하루 더 묵기로 하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선생의 쿰부 트레킹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