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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한범 Mar 15. 2016

신선생의 안나푸르나 트레킹5

5. 히말라야에서 보는 일출

한밤중 몇 번이나 밖에 나가 봅니다. 2004년 처음 이곳에 인연을 맺었을 당시 바닷가 모래알 보다 더 많은 별의 향연이 저를 반겼는데 고라파니의 불빛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때의 감동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수도인 카트만두는 하루 14시간 정전인데 해발 2800m 고라파니의 불빛은 꺼질 줄을 모릅니다.  

     

고라파니를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푼힐(3198m)에서 일출을 보기 위함입니다. 어젯밤 오늘 일출 시간을 확인하였기에 오전 5시 헤드랜턴과 복장을 갖추고 숙소를 나섭니다. 롯지(숙소)에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트레커들이 푼힐로 향하는 길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대부분 트레커들이 같은 시간에 산을 오르기에 능선 위로 향하는 불빛이 가로등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푼힐은 해발 3000m를 넘어선 곳에 자리 잡고 있기에 자칫 고소가 올 수도 있습니다. 천천히 걷는 것이 고소 예방에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모두들 수도승처럼 침묵한 가운데 최대한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산을 오르는 트레커들의 절반은 우리나라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 안나푸르나이고 짧은 일정 때문에 안나푸르나를 찾는 사람들의 절반은 푼힐 트레킹을 선택합니다. 푼힐 트레킹은 1주일 이내의 짧은 기간에 트레킹이 가능하고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마차푸차레 등 만년설로 뒤덮인 설산들을 한눈에 즐길 수 있으니까요.   

     

햇살에 흰 속살을 드러내는 산 보는 '푼힐 일출'

     

푼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들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애물단지처럼 버티고 있는 전망대를 오르내리며 추위를 쫓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크게 이야기하거나 웃는 사람이 없습니다. 조금 후 있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경외심과 기대감으로 긴장된 모습입니다.

     

마침내 여명이 밝아오면서 설산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푼힐의 일출은 해가 뜨는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편 다울라기리 정상부터 햇살에 흰 속살을 내 보인 빛이 안나푸르나, 히운출리를 거쳐 산 아래로 내려옵니다. 순간 푼힐에는 환호성이 터지면서 사진 찍기에 분주합니다. 히말라야의 일출은 정지 되거나 반복되지 않기에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트레커들은 분주하게 사진을 찍고 또 찍습니다.

     

날이 밝자 트레커들은 현지 주민들이 운영하는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일출의 여운을 달래 봅니다. 일출만큼이나 밝은 표정과 활달한 목소리가 푼힐을 가득 채웁니다.  

     

푼힐 전망대는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개 중, 다울라기리(8167m)과 안나푸르나(8091m)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다울라기리 연봉부터 안나푸르나를 지나 마차푸차레까지 이어지는 설산의 모습은 사람을 몽환적으로 만듭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곳은 없을 것 같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고라파니로 내려 올 때도 자주 돌아 봐야 합니다.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은 또 다른 모습이 소리없이 지나가기에 긴장을 늦추면 안됩니다. 이제 우리는 안나푸르나베이스 캠프(ABC)를 가기 위해 오늘 목적지인 타다파니(2721m)로 출발합니다. 타다파니는 고라파니에서 구릉힐(3200m)을 넘어 가야 합니다.

     

한 시간을 울창한 랄리구라스 숲을 걷자 능선위에 구릉힐이 보입니다. 푼힐과 거의 같은 고도인 구릉힐은 푼힐 못지않은 좋은 전망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과 대비되는 설산의 파노라마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푼힐에서는 안나푸르나 연봉이 구릉힐에서는 다울라기리 연봉이 백미입니다. 같은 사물이라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면 다른 것처럼 푼힐과 구릉힐은 비슷한 고도와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 줍니다.

     

구릉힐을 지나면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전나무 숲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으며  데우랄리까지 완만한 내리막이 계속됩니다. 데우랄리를 지나면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이 있습니다. 내려간다는 것은 또 올라야 할 곳이 있음을 의미하겠지요.

     

데우랄리에서 반탄티까지 해발을 거의 1000m를 내렸기에 계곡을 건너 타다파니까지 오르막이 계속됩니다. 세상이나 히말라야나 쉬운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 걸어야 할 거리와 시간이 지나야 목적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타다파니의 추억

     

타다파니는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푸차레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거대한 두 개의 봉우리를 품고 있는 타다파니는 일출과 일몰 모두를 즐길 수 있습니다. 여유가 있다면 이곳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싶습니다.

   


2004년 겨울, 타다파니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당시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18명이 이곳에서 트레킹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식당에 둘러 앉아 트레킹을 끝내는 느낌을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던 중 갑자기 여기저기서 훌쩍이기 시작합니다. 적당한 음주, 히말라야가 주는 감상 그리고 난생 처음 걸어보는 몇 일간의 산행 등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식당은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숙소를 정리하고 마을을 돌아봅니다. 5~6개의 롯지만이 존재하는 타다파니는 안나푸르나 사우스, 마차푸차레 뿐만 아니라 내일 가야 할 촘롱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전망 좋은 포인트에 중국인 사진작가(?) 두 명이 몇 시간 째 카메라를 세팅을 해놓고 있습니다. 좋은 작품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땀과 열정 그리고 기다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한 없이 두 봉우리를 마주합니다. 소주를 마시며 김광석과 양희은의 감미로운 노래를 듣습니다. 설산을 마주하고 마시는 소주와 음악은 제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이미 감성적인 나이는 지났지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행복'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저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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