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한범 Mar 22. 2016

신선생의 안나푸르나 트레킹9

9. 고소 때문에 불면의 밤이 되다.

어젯밤 고소 때문에 모두 사연 하나 씩은 남긴 것 같습니다. 아침 식당에서 만난 일행들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에 나왔는데 숨을 쉴 수 없었다.", 

"두통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냈다."  

   

등 모두 초췌한 모습입니다. 어제 오후부터 고소가 온 후배는 얼굴이 물에 불린 것  처럼 부풀어 있습니다.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어젯밤 얼마나 힘든 밤을 보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면의 밤    


저도 불면의 밤이었습니다.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책을 읽고 음악을 들어도 시간은 제자리였습니다. 결국 스마트 폰에 담아 온 "맘마미아", "본 레거시", "강철대오" 세 편의 영화를 모두 보았지만 새벽은 아스라이 멀기만 하였습니다.   

  

어제, ABC에서 자지 않고 MBC에서 잔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히말라야 호텔이 해발 2,873m이고 ABC가 해발 4,130m이니 하루에 1,200m 정도 고도를 높인 것 같습니다. 하루에 고도를 500-600m 이상 높이지 않는 것이 상식인 만큼 어제는 무리를 한 것 같습니다. 최대 고도 보다 수면 고도를 낮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오늘은 시누와(2,300m)까지 하산 하고자 합니다. 아침을 끝내자마자 고소가 심한 후배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서둘러 길을 떠난 것 같습니다. 고소는 산소 부족으로 오는 것이기에 고도를 낮추는 것 보다 좋은 방법은 없겠지요.  

 

  

우리의 삶도 자신의 욕심과 탐욕으로 높은 곳을 바라볼 때 마음의 고소가 오겠지요.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낮은 곳으로 향할 때 마음의 평화와 안정 찾을 수 있다고 히말라야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산을 그리워 하지만 산에서는 세상이 그리운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몸도 세상으로 가는 발걸음을 아는 것 같습니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즐기면서 걸어야 하는데 세상으로 가는 발걸음은 제 의지와 관계없이 빨라지기만 합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매력    


이번까지 안나푸르나 트레킹만 네 번 째 입니다. ABC, 푼힐, 안나푸르나 라운딩 그리고 다시 ABC 트레킹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경험을 이야기 하면 사람들은 어디가 가장 좋은 곳인지를 묻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많은 것들은 이분법으로 판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히말라야는 ‘좋다’와 ‘나쁘다’로 판단할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히말라야는 나의 나이, 나의 상태, 걷는 계절 등이 복합적으로 조화되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같은 곳을 다시 가도 같은 곳은 아닙니다. 나의 눈높이에 따라 산은 제각기 다른 의미로 저에게 다가 오니까요. 안나푸르나 라운딩과 푼힐 그리고 ABC는 산의 높이만큼이나 서로 다른 감동으로 저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은 15일 이상을 걷어야 하기에 마라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조급하거나 빠른 시간에 끝낸다는 생각보다는 천천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5,413m 쏘롱라를 넘어야 하니까요. 초반 오버 페이스를 하게 되면 걸어 간 길을 되돌아 갈 수도 있습니다.   

  

푼힐은 4-5일이면 끝낼 수 있는 단거리입니다. 비록 짧은 거리지만 푼힐과 구릉힐에서 볼 수 있는 다울라기리와 안나푸르나의 연봉은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합니다. 더구나 타다파니에서 보너스로 주어지는 일출과 일몰은 사람을 애잔하게 만듭니다.    

ABC는 9∼10일이 소요되는 중거리인 것 같습니다. 개발로 인해 거리가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푼힐의 아름다움, ABC에서의 몽환적인 일출과 일몰 모두를 즐길 수 있으며 해발 4,000m를 넘어 서기에 각종 장비와 고소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가 소홀하면 큰 대가를 지불할 수도 있습니다. 가끔씩 히말라야가 허락하지 않으면 폭설로 인해 발걸음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내려가고 또 올라오고    


8시 경, 하산을 시작합니다. 어제 내린 눈이 얼어 있습니다. 빙판길을 조심해서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내려가는 길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루 시차를 두고 어제 올라 온 길을 내려가고 있지만 잔설이 얼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기에 처음 가는 길 같습니다.   

 

오늘도 많은 트레커들이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과 중국인의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최근 중국 사람들을 동남아 배낭여행이나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력과 비례하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이 점점 많아지겠지요.  

   

해발 3,800m MBC(마차푸차레베이스 캠프)에서 해발 2,300m 시누와로 내려오는 길이지만 내리막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타성에 젖을 만한 시간이 되면 적당한 난이도의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나 산길을 걷는 것이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될 때 감사함과 고마움을 깨닫게 되겠지요.     


지인과의 만남  

  

시누와에 도착하니 네이버 "네팔히말라야 트레킹" 카페지기님이 저를 반겨 줍니다. 카페지기님과는 2001년 히말라야 트레킹이 끝난 뒤 방콕 카오산 로드에서 처음 만남 후, 2006년 히말라야 랑탕, 2010년 미얀마에서 인연인 듯 우연히 만났습니다. 이번 트레킹에서 다시 만났으니 인연은 인연입니다. 히말라야를 함께 바라보고 있기에 예상하지 못은 만남이 반복되나 봅니다.     


“의도하지 않은 인연과의 의도하지 않은 만남”   

  

이것이 여행인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만 하여도 며칠 간 씻지 않은 얼굴, 두통과 불면으로 지샌 밤 때문에 모두 초췌한 모습이었는데 시누와에 도착하여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니 사람이 달라 보입니다. 행복이란 사소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생겨날 때 찾아오나 봅니다.   

  

지인과의 의도하지 않은 만남, 급격히 낮아진 고도 그리고 이틀 후면 세상으로 간다는 해방감이 과음으로 이어졌습니다. 트레킹은 극기 훈련이나 극한 체험 활동이 아니라 산을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인데 너무나 쉽게 마음을 놓아 버린 저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그동안 마시지 않은 술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술독에 묻혀 하루가 지나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선생의 안나프르나 트레킹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