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여자 주인공은 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는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아침에는 지옥철을 탔고, 회사에 늦어서 달리고, 회의 시간에 늦지 않게 커피 심부름을 하느라 달리고, 선배한테 결과물을 교묘하게 빼앗기고, 혼나고. 아직은 사회 경험도 부족한데 성격마저 온순하고 내성적이었다. 지쳐버린 어느 날,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결국 사표를 내고 무작정 연고도 없는 어느 시골에 정착한다. 그녀는 그곳에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낮에는 매일 도서관에 가서 책만 읽기 시작한다. 책을 읽다 낮잠을 자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을 알게 되고, 여러 사건에 얽히다가 천천히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최근 내 마음속에도 비슷한 욕망이 종종 솟구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하루 종일 조용한 곳에서 책만 읽고 싶다.’ 읽다 자다 읽다 자다만 했으면 좋겠다. 자기 계발서, 마케팅 서적, 일상에 도움이 되는 책 말고 그냥 소설책이나 시시껍절한 내용에 내 눈과 머리와 마음을 맡기고 싶다. 하, 참 쓰면서도 한심하다.
난 끊임없이 회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오만가지 이유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 퇴사를 꿈꾸는 모든 자들의 마음인데, 나는 대강 이 두 가지로 요약이 됐다. 첫 번째, 나는 프로젝트를 내가 온전히 키를 잡고 책임을 지도록 해줘야 열성적으로 일을 하는 타입인데 그게 매번 쉽지는 않았다. 두 번째, 욕심은 많지만 정신적 강단과 능력은 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타이밍을 잘 잡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지도. 그러다 보니 종종 괴로워지기 일쑤였고 좌절감, 우울감에 자주 빠졌다. SNS를 보면 누군가는 마음의 평안을 위해 요가나 명상을 했고, 누군가는 달리기를 해서 극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엄청난 의지와 결단,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다양한 수단으로 규칙적인 탈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찌 보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실 계속 써 내려간, 아니 헛소리처럼 토해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은 또 반대로 ‘정말 뭐라고 좀 제대로 하고 싶다’의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뱉는 말일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 주인공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하고 책과 시골로 도피했지만, 결국 그래서 글과 연결된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고, 한동안은 계속 살고 싶은 마을을 찾았다. 나 역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 결국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아무렇게라도 끄적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