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도 정착기
지금껏 스쳐지나 온 곳들의 기억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사람이 만들어 주는 것. 그래서 어디서든 사람이 문제인데 유난히 부산에서는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에 머물렀던 기간이 짧아 이 동네를 깊게 알거나 사람들을 많이 만나볼 기회가 없었던 탓으로 해두자.
타지에서 왔고 영도에 정착했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그 특유의 부산 억양으로
‘영도? 영도오오?’
라고 되묻는다. 마지막에 따라오는 영도오오?의 음률은
‘어디 모지리도 아니고 뭐 그 딴데를 들어갔노?’
라는 의미를 아주 함축적으로 전달해 주었다.
자가나 전세냐 월세냐 묻는 사람들에게 (할머니들과의 대화에 익숙해서 이런 질문이 무례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집을 샀다고 하면 어쩜 죄다 그렇게 영도할매귀신이야기를 꺼내는 건지…
이들이 말하는 영도할매귀신 전설이란 영도에 살다 이사 나가면 영도할매귀신의 질투로 집안이 망한다는 전설이다. 그래서 영도에는 일단 들어가지도 말아야 하는데 혹시라도 들어갔다면 나올 땐 할매귀신이 잠든 한밤 중에 몰래 조금 조금씩 짐을 옮긴 후 조용히 도망치듯 이사를 나가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할매귀신의 눈에 보이는 곳에 있으면 화를 입으니 절대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할매 귀신이 시력이 얼마나 되나 물어보니 정확한 대답을 한 사람은 없지만 뉘앙스로는 대충 경상남도를 넘어가면 되는 것 같다 )
도대체 왜 이런 전설이 생겼을까? 섬마을엔 대부분 전해 내려 오는 미신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섬인 제주도에도 그다음 큰 섬인 거제도에도 할매귀신전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들은 섬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그럼 영도에만 왜 유독 이런 심술궂은 할매귀신이 있는 걸까.
그 뿌리를 좀 더 파헤쳐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