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도정착기
영도다리를 넘어가면 마치 갯바위에 붙은 따개비 같은 집들이 나오는데 흰여울 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나는 부산의 풍경 중 이곳을 가장 좋아한다. 부산 토박이인 어르신들은 이곳에 산다고 하면 일단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이송도? 그 똥물 흐르는 곳?’
이라 대답하곤 하는데 이송도라는 말에 미묘하게 녹아있는 멸시가 느껴졌다. (이송도는 제2의 송도라는 말인데 왜 그렇게 부르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송도라 불리는 이 흰여울 마을은 6.25 피란민들이 밀려 내려와 영도 대교를 건너 가파른 절벽 위에 판잣집을 지어 삶의 터전을 일구었던 곳이다. 많은 곳들이 아직 무허가 상태로 남아있는데 땅의 소유 없이 건물만 소유하고 있는 이런 곳을 '뚜껑집'이라 부른다. 피란민들의 판자촌이던 이 뚜껑집들에 지금은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훗날 나도 뚜껑집에 작은 가게를 얻으려다 꽤 복잡한 법적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역시 주식이고 부동산이고 잘 모르는 것은 손대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부산 토박이들이 이곳을 싫어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세대가 그렇게 끊어내려 몸부림쳤던, 자식세대에겐 절대 물려주지 않으려던 그 가난을 대표하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겐 가난으로 대표되는 마을 일지언정 내 눈에는 이 하얗고 몽글몽글한 느낌의 마을이 참 예쁘다. 바다를 따라 난 좁은 골목골목에서 만나게 되는 고양이들은 느리고 평화롭다. 척박한 곳에 살며 미움을 받은 고양이들은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성질부리기 바쁜데 이곳 고양이는 그저 스쳐가는 인간에게도 따뜻한 온정을 베풀어준다.
흰여울마을은 부산의 산토리니라 불리기도 하는데 나는 흰여울길을 걸을 때마다 모로코의 작은 마을 쉐프샤우엔이 생각난다. 쉐프샤우엔은 온통 몽글몽글하게 푸른색으로 칠해진 정감 있는 마을로 푸근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영도 골목길과 똑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