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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슴뿔 Jul 22. 2023

15. 시급 6300원의 편의점 알바생

나의 영도 정착기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나는 최저시급에 한참 못 미치는 6300원의 편의점 알바생이 되었다.

 편의점일은 생각보다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바코드를 찍어 계산을 해주는 것이 편의점 일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극히 일부분이 불과하다.

 물건 받기, 검수하기, 정리하기, 택배 받기, 공병 처리, 청소하기, 폐기물 스티커 관리, 종량제 봉투 재고 확인 및 접기, 담배 재고 확인, 즉석식품 조리하기 등 수많은 일들이 펼쳐져 있다. 계산하기도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게 바코드를 찍고 카드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권으로 계산하기, 기프티콘으로 계산하기, 무슨무슨 머니로 계산하기, 거기에 더해 적립하기, 할인하기, 앱에 상품 저장하기 등 대체로 복잡했다. 이 복잡함을 모두 다룰 줄 알아야 편의점에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편의점에 일하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정말 멋져 보이고 존경스러웠다.


  칼각으로 제품을 쌓고 모두 정면을 바라보게 음료를 진열하고 나면 뿌듯한 기분이 느껴져 적성에 맞나 싶다가도 냉동제품이 들어와 녹기 전에 진열해야 하는데 때마침 손님들이 밀려오고 갑자기 배달 요청까지 줄줄이 울려대면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했다. 진땀 나는 상황들을 처리해 가며 업무 자체는 조금씩 익숙해졌으나 사람 상대하는 일은 늘 어려웠다. 특히나 취객이나 막무가내인 노인들 또는 정신적 장애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오면  항상 긴장되었다.

 그중에서도 날 가장 긴장하고 예민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편의점 알바들 사이에서 ‘고백공격’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고백이라고 하니 알바생을 남몰래 짝사랑한 소년이 수줍게 맘을 전하는 그런 장면을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고백공격자들은 소년이 아니고 아저씨도 넘어선 영감님들인 데다 대부분 난닝구 차림으로 막걸리나 담배를 사러 와 소름 끼치는 플러팅 후 뜬금없는 고백을 하는데 알바생의 멘탈을 탈탈 털어버린다는 점에서 가히 공격이라 부를만한 것이었다.

 어쩌다 한 번 있는 일 아니냐고? 그런 사람은 보통 근처에 사는 데다 시도 때도 없이 방문해 이 짓을 하기 때문에 한 사람만 있어도 하루가 대체로 고달파진다.

 나는 이 편의점 알바를 생각보다 일찍 그만두었다. 그 이유는 이 고백공격과 더불어 소름 끼치는 점주의 언행 때문이었다. 점주는 혼자 사는 50대의 이혼남이었는데 교대하고 가려고 할 때마다 할 말이 있다느니 가지 말라느니 계속 옆에 잡아두려 했다. 처음 두어 번은 뭣도 모르고 옆에 있었지만 시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쓸데없는 잡담만 하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시간 맞춰 쌩하니 도망갔다. 일하지 않는 날에도 자주 전화를 했는데 급한 일일까 봐 받아보면 그냥 심심하고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했단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쌓여 점점 마음이 불편했다. 어느 날은 술박스를 나르고 허리가 뻐근해 두드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점주가 뒤에서 손바닥으로 내 허리를 같이 두드리는 게 아닌가!


-나: 뭐 하시는 거예요? (정색)


-점주: 안쓰럽게 허리가 아파서 어째요. 제가 마사지를 엄청 잘하는데 좀 해드릴까요?


-나: 마사지라니요. 불편하니 제 허리에 손대지 마세요.


-점주: 혹시 절 남자라고 느끼세요?


-나: 네??? (뭔 뜬금포..)


-점주: 그냥 편하게 생각해요 남자가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이 양반이 아버지뻘 되는 나이라 자기를 진짜 아버지라 생각했나. 정말 안쓰러우면 술박스나 들어줄 것이지 기분 찝찝하게…

 더 결정적인 사건은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운동화가 젖어 양말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 내 발을 점주가 계속 쳐다보는 것이 느껴져서


-니: 제 발에 뭐 묻었어요?


-점주: 발 사이즈가 꽤 큰 거 같네 몇이에요?  


-나: 250인데요.


-점주: 발이 크네. 그래도 발가락이 진짜 예쁘게 생겼네요


-나: 네?


-점주: 매니큐어 색깔도 맛있어 보이는 색으로 칠했네. 쩝... (맛있...? 입맛은 왜 다시는데?)



 그 순간의 소름이란... 물론 의도 없는 칭찬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순수하게 받아들이기엔 이미 온갖 더러운 상상으로 뇌가 오염된 나는 그런 찝찝함을 가지고 더 일할수는 없었다. 이 정도면 그만둬야 한다. 어차피 다른 일이 예정되어 있는 상태라 그걸 핑계 대며 그만두었지만

’‘네놈의 변태 같은 짓거리 때문에 그만둔다!!!‘라고 속시원히 말하지 못한 건 두고두고 후회했다.   






 덧, 1년 후에 알게 된 사실.


 점주는 나를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자로 신고했다며 쥐꼬리 만한 급여에서 3.3퍼센트 세금을 떼고 지급했었는데 (4대 보험 내는 것을 아까워하는 알바들도 있어서 합의 하에 흔하게 있는 일이지만 불법이다) 다음 해 소득 확인을 해보니 개인사업자가 아닌 일용직으로 신고되어 있었다.  3.3 퍼센트 나에겐 고작 몇 만 원이지만 모든 알바생들을 그렇게 신고했다면 제법 큰돈을 꿀꺽했을 것이다.  꼼수도 참으로 가지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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