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도 정착기
태종대 나들이를 갔다. 태종대를 둘러보는 길은 도보로 1시간 조금 넘는 거리이고 관광열차도 운행해서 걷기 힘든 사람은 편하게 구경하며 이동할 수 있었다. 입구에 붙은 팻말을 보니 도보가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차로 이동할 수 있게 입구를 열어주는 것 같았다.
수국이 피는 계절이라 가는 길 곳곳 색색의 수국들이 피어있었다.
수국은 한 뿌리에서 여러 가지 색깔의 꽃들이 피어나서 신기한 식물이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꽃이 피기 시작한 초기에는 녹색이 약간 들어간 흰 꽃이었다가 점차로 밝은 청색으로 변하여 나중엔 붉은 기운이 도는 자색으로 바뀐다고 한다. 토양이 강한 산성일 때는 청색을 많이 띠게 되고, 알칼리 토양에서는 붉은색을 많이 띠는 재미있는 생리적 특성이 있어서 토양에 첨가제를 넣어 꽃색을 원하는 색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 한다. 알고 나니 더 신기한 식물이다.
이맘때쯤에 내가 살던 제주에도 해안 도로를 따라 수국이 끝없이 피었었는데.
여러모로 영도는 제주도와 닮았다.
태종대에 있는 핑크색 담벼락을 가진 이 집은 sns에서 꽤 유명한 곳이다. 유명세를 타서 집 앞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성가실 법도 한데 주인은 방문객들에게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친절하고 넉넉한 웃음을 주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집으로 가기 아쉬워진 나는 근처에 있는 동네 산책을 했는데 낮은 담의 집들 사이에서 분홍집만큼이나 인상 깊은 집을 발견했다.
동글동글하게 다듬어진 아주 귀여운 나무 문패가 붙어있는 집으로 문패에는 ‘000의 집’이라 적혀 있었다. (한문이라 못 읽음) 대문 옆에는 ‘남편 000과 아내 000’라고 한글로 이름이 나란히 적힌 작은 문패가 달려있다. 문 너머로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가 보이고 평상에 나물을 다듬는 할머니가 계신 걸 봐선 문패의 주인공은 이 집 할머니 할아버지인 것 같았다.
나는 문패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집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본인 집에 문패를 붙이는 건 어디 부잣집 회장님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감히 시도해보지 못했었는데 오늘 이 귀여운 문패를 보고 나니 나도 영도집에 이름을 주고 싶어졌다. 문패까지 내걸진 않더라도 나 혼자 괜히 불러보고 기분 좋아질 만한 이름으로 하나 지어야겠다.